망 사용료는 인터넷을 통해 동영상 등 용량이 큰 콘텐츠를 서비스하는 콘텐츠사업자(CP)가 KT, SK브로드밴드, LG유플러스와 같은 인터넷망 서비스기업(ISP)에 내는 대가를 말한다.
29일 SK브로드밴드, KT, LG유플러스 관계자의 말을 종합해보면 SK브로드밴드가 페이스북과 2년 넘게 진행해온 협상에서 망 사용료를 받아낸 것은 다른 글로벌 콘텐츠사업자들과의 협상에서 제시할 선례가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SK브로드밴드에 이어 현재 KT와 LG유플러스도 페이스북과 망 사용료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KT는 2016년 페이스북으로부터 망 사용료를 받기 시작했지만 지난해 7월 계약이 만료된 뒤 다시 끊겼고 현재 다시 협상을 진행 중이다. LG유플러스 역시 페이스북과 국내 가입자의 이용에 불편함이 없도록 한다는 점에 공감해 협상을 펼치고 있다.
이통3사는 넷플릭스에도 망 사용료를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넷플릭스가 유료사업자인 만큼 망 사용료를 내는 게 너무도 당연하다는 게 이통3사의 주장이다.
SK브로드밴드 관계자는 “넷플릭스는 돈을 받고 국내 넷플릭스 가입자들에게 콘텐츠를 제공하는 사업자이기 때문에 양질의 시청 환경을 제공해야 할 의무가 통신사에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SK브로드밴드도 오래 전부터 망 사용료과 관련해 넷플릭스에 서신을 보내놓은 상태”라고 말했다.
LG유플러스 관계자는 “넷플릭스는 LG유플러스와 사업 파트너 관계에 있기 때문에 비밀조약에 따라 망 사용료 관련 내용은 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
구글과는 통신3사 모두 망 사용료와 관련해 진전된 내용이 없다.
최근 국내에서 망중립성 완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어 이통3사의 협상력이 높아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한국도 미국처럼 망중립성이 폐지돼 인터넷 서비스를 놓고 통신사들의 속도 제한이 가능해진다면 국내 이통사들은 구글이나 넷플릭스 서버의 접속 속도를 인위적으로 낮출 수 있게 되는 만큼 망 사용료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게 된다.
해외 콘텐츠사업자가 국내 통신사의 망을 사용해 사업을 벌이는 대가를 적절히 쳐주지 않는다면 더 이상 무료로 좋은 네트워크 환경을 제공할 수 없다는 '압박'이 가능하게 된 셈이다.
실제로 최근 SK브로드밴드는 넷플릭스를 이용할 때 화질이 떨어진다는 인터넷 가입자들의 거센 항의에 해외망 가운데 넷플릭스 등에 쓰이는 회선의 용량을 2배로 증설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SK브로드밴드는 증설 비용을 고스란히 혼자 부담해야 하는 상황이다.
해외에서 통신사와 콘텐츠사업자 사이의 갈등에 통신사들이 네트워크 속도 조절로 대응을 한 사례도 있다.
지난해 9월 노스웨스턴대학과 매사추세츠 주립대 앰허스트은 버라이즌과 AT&T, T모바일 등이 구글의 유튜브, 넷플릭스, NBC스포츠 등의 속도를 인위적으로 낮췄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지난해 프랑스 공정거래위원회는 비슷한 사례를 놓고 “트래픽 교환 비율의 불균형이 있을 때 대가를 지급하는 통상적 관행을 고려해본다면 프랑스텔레콤이 구글에 네트워크 할당을 중단한 것은 위법하지 않다”며 프랑스텔레콤의 손을 들어줬다.
사회 인프라 기능을 하는 통신망이 특정 통신사의 이해관계에 따라 좌우돼서는 안 되는 만큼 인위적 속도 저하와 같은 극단적 상황까지 가지 않을 가능성이 높지만 국내 통신사가 협상 카드로 내밀 가능성은 있다.
통신3사들은 그동안 글로벌 콘텐츠사업자들의 힘이 워낙 막강한 데다 망 이용대가와 관련한 명확한 법규정이 없어 애만 끓였다.
페이스북과 구글(유튜브), 넷플릭스 등 글로벌 콘텐츠사업자들은 국내에서 막대한 트래픽을 일으키는 데다 국내에서 챙기는 매출 규모도 상당하지만 통신사들에 어떠한 비용도 지불하지 않고 있었다.
이효성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은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방통위에 와서 처음부터 지금까지 줄곧 고민하고 있는 것이 글로벌 업체들의 망 사용료”라며 “국제 공조가 필요하고 워낙 글로벌 콘텐츠사업자들이 우월적 위치에서 갑질을 하니 통신사들이 어찌할 수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콘텐트사업자들이 국내 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통신망 사업자들과 망 사용료와 관련한 분쟁을 일으키고 있는 만큼 망 사용료와 관련한 협상에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며 “다만 대부분 글로벌 콘텐츠사업자들이 고객의 ‘사용자 경험’을 최고의 가치로 두기 때문에 기존의 태도를 바꿀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현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