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한 연구원이 2011년 4월29일 중국 장쑤성에 위치한 난징대학교 실험실에서 약품을 제조하고 있다. <연합뉴스> |
[비즈니스포스트] 중국 바이오기업이 글로벌 제약사의 신약 공급처로 부상하고 있다. 미국 정치권에서 국가안보 우려를 제기할 정도로 영향력을 확대하는 모양새다.
삼성그룹의 바이오 분야 투자지주사인 삼성에피스홀딩스도 중국 베이징에 최근 연구개발 거점을 구축하며 차세대 신약 경쟁력 확대를 통한 사업 확대 기회를 엿보고 있다.
◆ 미국 제약사, 중국 바이오 기술 확보에 혈안
5월31일(현지시각) 파이낸셜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코로나19 백신 개발사인 미국 화이자는 중국 이노벤트바이오로직스와 항암제 12종을 공동개발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이 계약에 따라 화이자는 선수금으로 6억5천만 달러(약 9840억 원)를 이노벤트바이오로직스에 지불한다. 상업 성과를 달성하면 최대 98억5천만 달러(약 15조 원)를 추가로 낸다.
미국 제약사인 브리스톨마이어스스퀴브(BMS) 또한 지난 5월12일 중국 헝루이제약의 기술을 활용해 5가지 치료법을 공동 개발하는 계약을 맺었다고 발표했다.
이에 BMS는 헝루이제약에 최대 9억5천만 달러(약 1조4400억 원)를 지급할 예정이다. 아울러 두 회사는 각자 보유한 혈액질환 치료제와 항암제의 독점 판매권을 상대국 시장에 제공하기로 했다.
미국 제약사가 중국 기업에게 막대한 선금을 지급하고 신약을 개발하거나 중국측 기술을 확보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조사업체 이밸류에이트에 따르면 올해 들어 5월까지 아스트라제네카와 일라이릴리 등 글로벌 제약사가 중국 기업에 지급한 선급금만 25억 달러(약 3조8천억 원)에 달한다.
미국 존스홉킨스대학교의 오티스 브롤리 종양학과 교수는 뉴욕타임스를 통해 “중국 생명공학 산업이 상당한 수준에 도달했다”고 평가했다.
| ▲ 올해 세계 제약사와 중국 바이오 기업간 라이선스 계약 상위 7개 목록. <그래픽 챗GPT로 제작> |
◆ 중국 바이오 분야 영향력 확대에 정부 지원 한몫
중국 바이오 기업이 글로벌 제약사에서 받는 ‘러브콜’ 뒤에는 자국 정부의 지원이 한몫한 것으로 여겨진다. 중국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가 신약 개발 기업에 공격적으로 자금을 투입한 효과가 기술 발전으로 이어진 것으로 분석된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 따르면 중국 항저우 소재 메티스테크바이오는 지난해 베이징 의료건강산업투자펀드와 다싱산업투자펀드 등 국유투자회사 자금을 중심으로 5790만 달러(약 877억 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항암제 후보물질을 개발하는 베이징 소재 DP테크놀로지도 지난해 지방정부 투자기금의 주도로 1억1400만 달러(약 1720억 원)를 조달했다.
앞서 중국 당국은 2015년에 ‘제조 2025’ 계획에 따라 생명과학을 전략 산업으로 지정한 뒤 대규모 투자를 해왔다. 이러한 투자가 최근 들어 결실을 맺은 것이다.
미국 씽크탱크 경제정책연구센터(CEPR)가 올해 4월1일 펴낸 보고서를 보면 2020년 기준 연간 임상시험 건수에서 중국은 유럽과 미국을 모두 넘어섰다.
2020~2024년에 걸쳐 5년 동안 승인받은 신약 건수에서도 중국은 미국에 이어 2위에 올랐다.
뉴욕타임스는 “중국은 미래 의학의 중심지로 떠오르고 있다”며 “세계적인 제약사들이 다른 어느 곳보다 빠르고 저렴하게 의약품을 개발할 수 있는 허브가 조성됐다”고 평가했다.
| ▲ 녹색 배낭을 멘 생인이 5월11일 미국 뉴욕증권거래소 입구에 걸린 제약사 일라이릴리의 창립 150주년 기념 현수막을 바라보고 있다. <연합뉴스> |
◆ 미국 의회 견제에도 중국 경쟁력 부각, 삼성에피스홀딩스 베이징 진출로 기회 엿봐
이처럼 중국은 정부 지원과 풍부한 연구 인력 및 대규모 임상 환경을 기반으로 글로벌 바이오 혁신 거점으로 부상했다. 이에 미국 정부까지 나서 중국의 바이오 산업 성장을 견제하기 시작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12월18일 중국계 생명과학 기업과 이들과 협력하는 기업에 새로운 규제 장벽을 세우는 생물보안법에 서명했다.
이 법에 따라 미국 정부 기관은 보안상 우려되는 중국의 생명공학 기업(BCC)과 생명공학 장비 또는 서비스를 이용하는 계약을 사실상 맺을 수 없게 됐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USITC)도 지난 5월27일부터 28일까지 중국 바이오산업의 국가 지원과 가격 관행이 미국 산업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하는 청문회를 열고 관세 등 통상 조치의 근거를 마련할 계획을 세웠다.
이러한 움직임에도 글로벌 제약사가 손잡는 사례가 다수 나올 정도로 중국 바이오 산업의 경쟁력이 갖춰진 것이다.
의약품의 안전성을 검증하는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로버트 칼리프 전 국장은 뉴욕타임스를 통해 “중국 바이오 기업의 성장을 향한 우려는 매우 타당하고 현실적이다”고 말했다.
한국의 대표적 바이오 기업 가운데 하나인 삼성에피스홀딩스도 최근 중국에 연구 거점을 꾸려 사업 확대 기회를 엿보고 있다.
삼성에피스홀딩스는 중국에 바이오의약품 연구개발 사업을 목적으로 한 100% 출자회사 ‘삼성생물과기 중국 유한공사’를 설립했다. 올해 6월 중으로 베이징 연구개발 거점을 정식 개소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삼성에피스홀딩스는 항체약물접합체 플랫폼과 차세대 신약 개발 역량 강화를 위해 현지 연구인력 확보에 나설 계획을 세웠다.
김경아 삼성에피스홀딩스 대표는 5월29일 보도자료를 통해 “중국의 우수한 인재와 기술 인프라를 적극 활용해 차세대 바이오의약품 개발 역량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세계 최고 수준의 미국 제약사까지 중국에서 기술 확보 경쟁에 뛰어든 만큼 삼성에피스홀딩스의 베이징 연구소도 신약 개발과 기술 확보에 유리한 입지를 확보할 지 주목된다.
중국 의약품 위탁개발생산(CDMO) 기업인 차임바이오로직스는 지난 4월9일 한국 바이오업체와 교류회를 가진 뒤 내놓은 보고서에서 “중국 바이오제약 산업은 한국기업의 다양한 발전 단계에 필요한 핵심적인 요구 사항을 충족시킬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근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