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최인호 주택도시보증공사사장(HUG)이 2026년 5월7일 세종시에서 열린 취임 100일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 HUG > |
△취임 100일 맞아 ‘주택 공급·주거 금융 공공 플랫폼’으로 도약 선언
최인호는 취임 100일을 맞아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이 나아갈 길로 종합 플랫폼을 제시했다.
최인호는 2026년 5월7일 세종시에서 열린 취임 100일 기자간담회에서 “국민 주거 안정을 종합 지원하는 주택 공급 및 주거금용 공공 플랫폼으로 도약하겠다”고 말했다고 HUG는 전했다.
최인호는 이날 공공 플랫폼으로 도약하기 위핸 세부 계획으로 ‘든든전세주택’ 공급물량의 확대 , 연내 비아파트 주택의 시세를 공개하는 ‘안심빌라 시세’ 서비스 도입, 연내 4대 신규 보증 상품 출시 등을 제시하기도 했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HUG는 든든전세주택 공급물량을 올해 3천 세대로 늘린다.
든든전세주택은 전세 사기 등에 따라 경매에 나온 주택을 HUG가 낙찰해 임대 주택으로 공급하는 제도다. 시세 90% 수준에 최대 8년 동안 살 수 있고 HUG가 집주인인 만큼 보증금을 떼일 염려도 없다.
최인호는 “지난해 서울에 1800세대 규모로 공급된 든든전세주택을 올해는 3천 세대 가량 공급함으로써 양질의 임대주택을 직접 공급하겠다”며 “든든전세주택의 입주 비율은 2030세대가 약 90%로 청년 및 신혼부부 주거 안정을 돕고 있다”고 바라봤다.
또한 최인호는 이날 ‘전세 사기의 사각지대’로 꼽힌 빌라 및 다세대 등 비아파트 등의 시세 정보 제공도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내보였다.
아파트는 실거래가 공개시스템 등 각종 표준화된 시세 자료가 많지만 비아파트는 그렇지 못하다. 그만큼 전세 사기에 휘말릴 위험이 많았던 만큼 HUG가 보유한 자료를 활용해 전세사기를 차단한다는 것이다.
최인호는 “HUG가 지닌 감정평가 데이터와 실거래 정보 등을 결합하면 지역이나 연식별 시세를 산출할 수 있을 것이다”며 “이를 지도 기반으로 시각화해 제공함으로써 국민 실생활에 온기를 더하는 체감형 서비스를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최인호는 2026년 안에 주거재생 이주비·분담금, 공공정비 사업비대출, 노인복지주택용 임대보증금, 신탁 비용상환청구권 유동화 등을 대상으로 한 보증상품을 신규로 내놓겠다고 밝혔다.
최인호는 “올해는 HUG 혁신의 원년으로 삼겠다”며 “현재 태스크포스(TF) 네 개를 새로 만들었고 이를 통해 인공지능(AI) 기반 업무 체계를 구축하고 보증위험 관리를 강화해 안정적 재무구조를 확립하겠다”고 말했다.
| ▲ 최인호 HUG 사장이 부산광역시 연제구 전세 피해 지원센터를 방문해 전세사기 피해지원과 예방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 HUG > |
△취임 이후 활발한 현장행보
최인호는 HUG 사장에 취임한 뒤 활발한 현장 행보로 관련 업계와 소통을 강화하고 있다.
최인호는 2026년 5월26일 대구 CR리츠 사업 현장을 찾았다. 최인호는 대구에서는 HUG의 모기지보증 지원과 CR리츠를 통한 미분양 문제 해결에 나선 현장을 직접 둘러봤다.
그는 “대구는 전국에서도 미분양 물량 비중이 높은 지역 가운데 하나로 지역 주택시장의 안정을 회복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방문 사업장은 지역 주택시장 회복을 위한 의미 있는 사례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앞서 최인호는 같은 해 5월20일 ‘릴레이 현장 소통경영’의 일환으로 대한건설협회를 방문했다. 그는 이번 방문에서 공사비 상승과 부동산 경기 침체, 프로젝트파이낸싱(PF) 시장 경색에 어려움을 겪는 건설업계 현장 목소리를 직접 들었다.
대한건설협회는 HUG에 PF 특별보증 지속공급 등을 건의했다. HUG는 건설업계 자금시장 상황과 현장 수요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PF 특별보증 공급을 지속 추진하겠다는 의견을 내놨다.
최인호는 2026년 1월28일 취임했는데, 취임식 당일에도 부산시 연제구에 위치한 전세피해지원센터를 찾았다.
이후 충남 아산 온천동 삼일파라뷰 임대보증 이행 상담소 방문, 한국리츠협회 간담회, 대한주택건설협회 간담회, 부산시 소재 HUG 미분양 안심환매 신청 사업장 방문, 한국디벨로퍼협회 간담회, 한국주택협회 간담회, 서울시 청년 안심주택 ‘에드가 개봉’ 사업장 방문, 대한주택건설협회 광주·전담도회 방문, 강원도 원주 PF보증 사업장 방문 경기도 고양 협동조합형 공공지원민간임대주택 현장 방문 등을 이어갔다.
최인호는 2026년 5월7일 취임 100일 기자간담회에서 “현장에 답이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며 “직접 현장을 찾아 국민과 사업자의 목소리를 듣고 제도 개선으로 이어왔다”고 말했다.
| ▲ 최인호 HUG 사장(왼쪽 두 번째)이 2026년 3월3일 취임 뒤 첫 외부 공식 행보로 보증사고가 발생한 임대아파트 현장을 찾아 입주민들을 만나고 있다. < HUG > |
△주택도시보증공사 4년 만의 흑자전환
HUG는 2025년 4년 만에 순이익을 내며 흑자로 돌아섰다.
공공기관 경영정보 시스템 알리오에 따르면 HUG는 2025년 순이익 1조5749억 원을 거뒀다. 2021년 3620억 원 규모 순이익 흑자를 낸 뒤 4년 만의 흑자 전환이다. 순손실 2조5198억 원을 낸 2024년과 비교하면 약 4조 1천억 원 가량이 개선됐다.
HUG는 2025년 영업이익으로 1조5765억 원을 거뒀다. 2022년(영업손실 2428억 원)과 2023년(영업손실 3조9962억 원)과 2024년(영업손실 2조1924억 원) 이어진 적자 터널을 빠져나온 것이다.
흑자전환 핵심 배경으로는 보증사고 감소가 꼽혔다.
HUG는 “전세보증과 임대보증 등 임대차 보증군을 포함한 전체 보증 사고가 약 4조 원 감소했다”며 “반면 채권 회수 실적은 같은 기간 6천억 원 늘어난 2조2천억 원으로 기록됐다”고 설명했다.
자산 규모도 크게 불어났다.
2025년말 기준 자산은 9조1천억 원 가량으로 2024년 말(6조4875억 원)보다 2조6125억 원 가량이 늘었다.
부채는 1조6282억 원으로 816억 원 늘어나는 데 그쳤지만 자기자본은 7조4718억 원으로 같은 기간 2조5309억 원이 증가했다.
자기자본이 급증 배경에는 1조5749억 원 가량의 순이익 증가와 함께 9590억 원 가량의 정부 출자도 작용했다.
정부는 HUG 자본확충을 위해 2021년부터 2025년까지 약 6조4천억 원을 투입했다. 2025년에는 현물 5650억 원과 현금 4천억 원을 수혈했다.
HUG에 따르면 보증사고는 2026년에도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2026년 1월부터 4월까지 기록된 전세보증금반환보증 보증사고 규모는 2693억 원으로 집계됐다. 2025년 같은 기간 대비 53.1% 줄어든 것이다. 건수 기준으로도 1450건으로 2025년 같은 기간(2994건)과 비교해 51.6% 감소했다.
| ▲ 주택도시보증공사의 실적 그래프 <비즈니스포스트> |
△주택도시보증공사 사장 낙점과 취임
최인호는 2026년 1월28일 주택도시보증공사 제10대 사장으로 취임했다.
최인호는 20대와 21개 국회의원 시절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간사로 활동하면서 주택·부동산 정책 분야에서 경험을 쌓은 이력이 선임 주요 배경으로 꼽혔다. 복수 후보 가운데 최인호가 최종 낙점을 받았고 국토교통부 장관의 임명 제청을 거쳐
이재명 대통령이 재가했다.
최인호가 취임하면서 HUG는 약 6달 동안의 리더십 공백을 끝냈다.
HUG는 전임 유병태 사장이 2025년 7월 사의를 표명한 뒤 6달 동안 직무대행 체제로 운영돼 왔다. 유병태 전 사장은 HUG가 공공기관 경영평가에서 2년 연속 ‘D등급(미흡)’ 평가를 받아 해임 건의 대상에 오르자 사의를 표명했다.
최인호는 취임식에서 새 비전으로 ‘국민 주거 안정을 종합적으로 지원하는 주택 공급·주거금융 공공플랫폼 기관으로의 도약’을 선포했다.
세부적으로는 신사업 발굴, AX(AI 전환)를 통한 기관 경쟁력 강화, 대국민 공공서비스 품격 향상 등을 제시했다.
최인호는 임직원에게는 소통형 리더십을 실천하겠다는 뜻을 내놨다. 그는 “임기가 끝나는 날까지 임직원을 믿고 최선을 다하겠다”며 “그동안 국회와 정부, 현장에서 쌓은 모든 경험과 역량을 HUG를 위해 쏟아붓겠다”고 강조했다.
취임 뒤 첫 일정으로는 부산 연제구 전세피해지원센터를 방문했다. HUG는 취임식 당일부터 전세사기 피해 지원에 대한 의지를 강조했다고 설명했다.
| ▲ 최인호 HUG 사장(가운데)이 2026년 1월28일 취임 뒤 첫 행보로 전세피해지원센터를 찾아 임직원을 격려하고 있다. < HUG > |
△ 제21대 국회에서 수석대변인·국토위 간사 역임
최인호는 제21대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간사 등으로 일했다.
최인호는 2020년 4월15일 열린 21대 총선에서 부산 사하구갑에서 재선에 성공했다. 상대 김척수 후보와 치열한 접전 끝에 득표율 50% 대 49.13%, 득표차 697표로 당선됐다. 당시 부산 사하구갑 선거구에서 민주당 계열 의원이 재선에 성공한 것은 처음이었다.
최인호는 이후 21대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2020년 8월~2021년 5월)을 맡으며 당의 공식 입장을 대변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이낙연 대표 취임 이후 발탁됐다.
최인호는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도 계속 몸담으며 주택·부동산 정책 분야의 전문성을 이어갔다. 국토위 간사로도 활동하며 주택 공급과 전세사기 관련 입법에 관여했다. 제21대 국회 임기 중 가덕도신공항 특별법 본회의 통과를 견인하는 데 기여했다. 국가균형발전 특별법 개정안, 산업위기대응 특별법 제정안 등을 대표발의하며 지역균형발전 관련 입법 활동도 펼쳤다.
부산시 국비 예산 확보를 위해서도 노력했다. 국회 예결산특별위원회 부간사로 활동하며 부산시 국비 7조원 시대를 여는 데 기여했다고 평가를 받았다.
헌법개정특별위원회와 정치개혁특별위원회에서도 활동했다. 권력구조 개편과 선거구제 개혁 논의에도 참여했다.
2030 부산세계박람회 유치지원 특별위원회 위원으로도 활동했다. 2030 부산엑스포 유치를 위한 의회 외교에도 참여했다.
| ▲ 최인호 더불어민주당 의원(맨 왼쪽)이 2021년 1월21일 이낙연 당대표(왼쪽 세 번째) 등과 함께 가덕도를 찾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최인호 블로그> |
△제20대 국회의원 당선, ‘독수리 5형제’ 탄생
최인호는 제20대 총선에서 2002년 첫 도전 이후 14년 만에 국회에 입성하는 데 성공했다.
최인호는 2016년 4월13일 열린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득표율 49.36% 대 45.41%, 2730표 차로 새누리당 김척수 후보를 꺾었다.
최인호가 그동안 얻었던 ‘출구조사 재선의원’이란 별명을 깨는 순간이기도 했다. 최인호는 17대와 19개 총선에 도전해 출구조사에서는 앞서거나 초박빙 우세를 보였지만 본개표에서는 석패했다.
당시 최인호와 함께 북구강서갑 전재수, 부산진구갑 김영춘, 연제구 김해영, 남구을 박재호 후보가 나란히 당선됐다.
부산에서는 기본적으로 보수정당 지지세가 강한 만큼 이변으로 평가됐다. 민주당 계열 정당이 26년 만에 1990년 3당 합당 이후 26년 만에 가장 많은 의석을 확보했다. 이들 5명은 이에 따라 ‘독수리 5형제’란 별명을 얻었다. 스스로는 ‘갈매기 5형제’라고 자칭하기도 했다.
최인호는 제20대 국회에서 국토교통위원회에서 활동했다.
2016년에는 원내부대표를 지내기도 했다. 같은 해 8월에는 전당대회에서 영남권 몫의 최고위원으로 당선돼 2017년 2월까지 2기 지도부 최고위원을 역임했다.
더불어민주당 부산광역시당 위원장(2016년 8월~2018년 8월)도 맡았다. 당의 부산 기반을 강화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원자력 안전대책 특별위원회 위원장도 지냈다. 경주 지진 이후 원전 안전 문제가 부각되던 시기였다.
20대 국회 임기 중에는 2019년 예결산특별위원회 부간사(더불어민주당 조정소위 위원)로 활동하며 부산 지역 예산 확대에 크게 기여했다.
또한 이때 다져놓은 국토교통위원회에서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향후 21대 국회에 이르러 가덕도신공항 특별법 발의와 본회의 통과를 견인하는 발판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 ▲ 최인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오른쪽 세 번째)이 2016년 6월 부산역 광장에서 열린 '가덕도신공항유치 비상대책본부' 출범식에서 발언하고 있다. <최인호 의원 블로그> |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과 정계 복귀
최인호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사망한 뒤 정계에 다시 복귀했다.
노 전 대통령은 2009년 5월23일 사망했다. 이는 정치권에서 친노계 인사의 결집을 이끄는 계기가 됐고 최인호도 이같은 흐름 속에서 정계에 다시 발을 들였다.
최인호는 노 전 대통령 사망 직후인 2009년 민주당에 복당했다. 18대 국회의원 선거에는 출마하지 않고 한동안 정계와 거리를 두던 상황이었다.
이듬해인 2010년 부산시당 위원장 선거에서 당시 부산 유일의 현역 국회의원이었던 조경태 의원을 꺾고 당선됐다. 최인호는 이후 지역구를 해운대·기장군 갑에서 낙동강 벨트인 사하구갑으로 옮겼다. 직접 살면서 지역밀착 행보를 이어갔다.
이후 2012년 19대 총선에서 사하구갑으로 출마했다. 다만 문대성 새누리당 후보에게 패배했다.
당초 문대성 후보가 논문 표절 논란에 휘말리면서 당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평가됐다. 출구조사에서도 최인호의 우세가 점쳐졌다. 그러나 최인호는 득표율 41.61%로 본개표에서 2380표차로 낙선했다. 당시 결과로 최인호에는 ‘출구조사 재선의원’이란 별명이 따라 붙게 됐다.
△참여정부 청와대 부대변인·국내언론비서관 활동
최인호는 노무현 정부 출범 뒤 청와대에 들어갔다. 부대변인을 거쳐 국내언론비서관으로 활동했다.
청와대 부대변인은 대통령의 국내 일정과 메시지를 언론에 전달하는 역할을 맡았다. 노무현 대통령의 소통 방식이 이전 정부와 달리 직접성을 강조했던 만큼 부대변인 역할도 중요했다.
2006년에는 대통령비서실 국내언론비서관으로 근무했다. 언론 관계 총괄과 청와대·언론 간 소통을 담당하는 직책이었다.
노무현 대통령 비서로 처음 정계에 입문한 이후 참여정부 시절까지 노 대통령과의 인연이 이어졌다. 2002년 16대 대선 때도 노무현 캠프 보좌역으로 함께했다.
참여정부 출범과 함께 대통령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자문위원(2003년)으로도 활동했다. 지역균형발전 의제에 일찍부터 관여했던 셈이다.
청와대 경험 이후 18대 총선에는 불출마를 선언했다. 한동안 정치 현장에서 물러났다가 2009년 노 전 대통령의 사망을 계기로 다시 정계로 돌아왔다.
| ▲ 최인호 당시 부산 해운대 기장갑 선거 후보(오른쪽)가 2002년 8월 부산에서 노무현 민주당 대통령 후보와 함께 유세활동을 펼치고 있다. <연합뉴스> |
△20대 총선 이전까지 수 차례 낙선
최인호는 2016년 20대 총선에서 당선 이전까지 모두 세 번 낙선했다.
최인호가 처음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한 것은 2002년 부산 해운대·기장 갑 재선거다. 당시 전임자 손태인 의원 사망에 따라 재선거가 치러졌다.
당시 최인호는 새천년민주당(현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나섰지만 득표율 20%로 서병수 한나라당 후보(69.5%)에 크게 밀렸다.
이후 최인호는 2004년 17대 총선에서도 해운대구·기장군갑에 출마했다. 당시에는 출구조사에서는 앞선 것으로 나왔지만 본 개표 결과 득표율 44.44%로 서병수 한나라당 후보(55.49%)에 밀려 낙선했다.
2008년 18대 총선에는 출마하지 않았다.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망 이후 정계에 복귀했다.
2012년 19대 총선에서는 지역구를 사하구갑으로 옮겼다. 다만 문대성 새누리당 후보가 논문 표절 논란으로 불리한 상황에서도 2380표 차이로 패배했다. 당시에도 출구조사에서는 앞서는 것으로 나왔지만 본 개표에서 밀렸다.
최인호는 세 번의 낙선 뒤 2016년 4번째 도전인 20대 총선에서 마침내 당선됐다. 2002년 첫 출마부터 14년이 걸렸다.
20대에서 49.36%를 얻어 당선됐고, 21대에서는 50.00% 대 49.13%, 697표 차의 박빙으로 재선에 성공했다. 21대 선거는 개표 과정 내내 엎치락뒤치락하는 극적인 양상이 연출됐다.
사하구갑 선거구에서 민주당 계열 의원이 재선에 성공한 것은 최 의원이 처음이었다. 지역색이 짙은 부산에서 이룬 재선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부각됐다.
△노무현 국회의원 비서로 정계 입문, 2002년 대선 캠프 활동
최인호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서로 정계에 처음 발을 들였다.
최인호는 1988년 부산대학교 총학생회장 임기를 마치고 노무현 국회의원의 비서로 정계에 입문했다. 노무현 의원은 당시 인권 변호사 출신 정치인으로 주목받고 있었다.
두 사람의 인연 시작을 두고 최인호는 학생운동을 하면서 시국 변호사를 지낸 노무현 전 대통령을 알게 됐다고 회고했다.
최인호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정치적 부침을 겪는 과정에서도 곁을 지켰고 1990년대 노 전 대통령의 여러 낙선 과정을 함께 했다.
2002년 16대 대선에서는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후보 보좌역으로 활동했다.
참여정부 출범 이후에는 대통령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자문위원(2003년)을 거쳐 청와대에 입성했다. 부대변인과 국내언론비서관으로 활동했다. 2004년 열린우리당 부산광역시당 대변인도 맡았다. 부산 지역에서 열린우리당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역할이었다.
노무현과의 인연을 통해 정계에 입문했고,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근무까지 이어졌다. 이 인연은 노무현 사망 이후 최인호의 정계 복귀를 결정짓는 계기로도 작용했다.
| ▲ 노무현 전 대통령(왼쪽)과 최인호. <최인호 사장 페이스북> |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 특별사면복권
최인호는 부산대 총학생회장으로 활동하던 시절 학생운동과 민주화운동에 깊이 관여했다. 당시 부산·울산지역총학생협의회 의장을 맡으며 지역 학생운동의 핵심 인물이 됐다.
부산 금정경찰서는 1989년 11월18일 경찰 170여 명을 부산대학교에 투입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이 발부돼 있던 최인호를 구속했다.
최인호는 이후 1990년 9월12일 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 중감금치상,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 집회·시위에 관한 법률위반, 화염병 사용 등의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 노동쟁의조정법위반, 국가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로 징역 2년, 자격정지 2년을 선고받았다.
1993년 3월6일 특별사면·복권됐다. 사면복권 이후 다시 정치 활동을 시작했다.
최인호가 부산대학교에 입학한 1985년 무렵에는 민주화를 향한 열기가 강했던 영향이 있었다. 부산대학교 자체가 1979년 부마민주항쟁의 발원지이기도 했다.
최인호는 이후 이같은 민주화 운동 등에 관한 노력을 인정받았다.
부산대학교는 2023년 최인호에게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하면서 “586세대 정치인으로서 민주주의 역사에서 힘겨운 현장을 지키며 의(義)의 편에 서고자 애쓴 분”이라고 평가했다.
재학 시절 총학생회장을 지내며 학생운동과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다가 구속된 것이 이후 정치 이력의 출발점이 됐다. 학생운동 경험이 노무현과의 인연으로 이어졌고, 정계 입문의 배경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