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총괄 수석부회장이 삼성그룹의 순환출자 고리 해소 결정에 따라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안을 내놓는 데 다시 ‘무언의 압박’을 받게 됐다.
재벌기업들이
문재인 정부의 재벌 개혁 기조에 동참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정 수석부회장의 고민이 더욱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23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전기와 삼성화재가 21일자로 보유하고 있던 삼성물산 지분을 처분하면서 현대차그룹이 서둘러 순환출자 고리를 해소하겠다는 의지를 보이지 않겠냐는 목소리가 나온다.
8월 중순까지만 해도 10대 대기업집단에서 순환출자 고리를 지닌 곳은 삼성그룹, 현대차그룹, 현대중공업그룹 등 3곳이었다.
현대미포조선이 8월22일 보유하고 있던 현대중공업 지분을 현대중공업지주로 넘기면서 현대중공업그룹의 순환출자는 완전히 해소됐다.
이어 삼성그룹까지 순환출자 고리 해소 움직임에 동참하면서 현대차그룹만 10대 대기업집단 가운데 유일한 순환출자 고리를 보유하고 있는 그룹으로 남게 됐다.
정 수석부회장이 지배구조 개편안을 내놓는 데 더욱 다급해질 것으로 보인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꾸준히 대기업집단의 편법적 지배력 강화(순환출자 구조)를 차단하는 데 관심을 두고 있다.
행정력을 동원하는 방법을 쓰기보다 대기업집단의 자발적 개혁을 유도하면서 지금까지 지배구조 개편을 계속 이끌어냈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2017년 대기업집단(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 및 공시대상 기업집단 포함)에 지정된 57개 집단이 보유하고 있던 282개의 순환출자 고리 가운데 현재 약 90%가량의 순환출자 고리가 끊어졌다.
대다수의 대기업집단이 공정거래위원회의 지배구조 개편 유도에 호응하는 상황에서 현대차그룹만 유독 더딘 행보를 보이고 있는 점은 정 수석부회장에게 부담일 수밖에 없다.
정 수석부회장이 지배구조 개편 시도를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3월에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의 합병법인을 그룹의 지배회사로 두면서 자연스럽게 순환출자 고리를 해소하는 방안을 포함한 지배구조 개편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시장의 반발에 직면하면서 5월에 개편안을 철회했다.
이후 넉 달이 지났지만 지배구조 개편과 관련한 일정은 여전히 나오지 않고 있다.
정 수석부회장이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를 개편하려면 오너일가의 지배력 등을 염두에 두면서 시장의 반발을 사지 않고 순환출자도 해소해야 하기 때문에 신중한 모습을 보이는 것으로 재계는 바라본다.
현대차그룹은 현재 ‘현대제철→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차→현대제철’ ‘현대제철→현대모비스→현대차→현대제철’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 ‘현대글로비스→현대모비스→현대차→현대글로비스’ 등 4개의 순환출자 고리를 들고 있다.
단순히 순환출자 고리 해소의 관점에서만 바라보면 현대차그룹은 기아차와 현대차가 보유한 현대체절, 현대모비스, 현대글로비스의 주식을 팔면 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자칫 계열사 지배력이 약화할 수 있기 때문에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과
정의선 수석부회장의 지배력을 높이는 방안도 함께 마련해야 한다.
현대차그룹은 현재 해외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시장을 설득할 수 있는 지배구조 개편안을 내놓기 위해 노력을 계속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글로벌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은 최근 현대차그룹의 해외 기관투자자 설명회에서 현대차그룹에 기업가치를 올려 중장기적으로 주가 상승을 이끌 수 있는 방향으로 지배구조 개편안을 내놓을 것을 요구했다.
미국 행동주의 투자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는 8월 중순에 현대차그룹에 현대모비스를 둘로 쪼갠 뒤 각각을 현대글로비스, 현대차와 합병하는 방향으로 지배구조를 개편할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비즈니스포스트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