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지난달 12일부터 탄소배출권 거래제도가 시행됨에 따라 온실가스를 많이 방출하는 산업이 타격을 입을 것으로 전망된다. |
올해부터 시행된 탄소배출 거래제도를 놓고 업계와 정부가 티격태격하고 있다.
업계는 정부가 할당한 온실가스 배출량이 너무 적다고 불만을 나타낸다. 정부는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려는 국제사회의 움직임에 우리도 동참해야 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처럼 정부와 업계의 이견이 노출되자 탄소배출권 거래제도를 조기에 정착하기 위해 기업과 정부가 서로 협조체제를 갖춰야 된다는 지적이 많다.
◆ 업계 “할당량 너무 적어”
9일 전국경제인연합회와 한국철강협회에 따르면 탄소배출권 거래제도의 영향을 받는 전국 525개의 기업들이 입을 금전적 피해가 최대 12조7천억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부족한 배출량을 채우기 위해 배출권을 구입하는 비용과 이보다 3배 가량 비싼 초과배출 벌금을 고려한 수치다.
산업계는 정부가 기업에게 할당한 배출량이 터무니없이 적다고 볼멘 소리를 낸다. 기업들은 정부에게 총 20억2100만 톤의 할당량을 요구했는데 정부는 이보다 20% 가량 적은 15억9800톤만 할당했다는 것이다.
탄소배출권 거래제도 시행으로 가장 큰 피해가 예상되는 철강산업과 발전에너지산업 등의 반발이 특히 심하다.
철강산업은 최근 값싼 중국산 철강이 대량으로 공급되는 상황에서 탄소배출권 거래제도 때문에 추가로 부담해야 할 비용만 늘었다며 아우성이다.
권오준 한국철강협회 회장과 장세주 동국제강 회장은 지난달 5일 철강협회 신년 인사회에서 정부가 기업에 할당한 탄소배출량이 현실을 반영하지 못했다는 입장을 밝혔다.
발전에너지산업도 기업이 배출량을 스스로 조절할 수 없고 정부의 발전대책에 따라야만 하는 데도 정부가 대안을 제시하지 않는다며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
◆ 배출량 줄이는 데 한계
업계 관계자들은 탄소배출권 거래제도가 몰고 올 후폭풍에 대해서도 걱정하고 있다.
기업들은 탄소배출권 거래제도가 시행되기 전부터 정부가 실시한 ‘목표감축량’제도를 맞추기 위해 노력해왔지만 비용과 기술적 한계 때문에 노력만으로 온실가스 배출량을 낮추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주장한다.
|
|
|
▲ 권오준 한국철강협회 회장은 정부가 할당한 탄소배출량이 업계의 현실을 반영하지 못했다고 비판한다. |
철강업계의 경우 업계 1위인 포스코와 2위 현대제철은 각각 신공법과 공정에서 발생하는 가스를 발전연료로 사용하는 방법 등을 고안했다.
하지만 2020년까지 탄소 발생량을 1990년보다 30% 줄이겠다는 정부방침을 달성하기에 역부족이다.
이런 상황에서 탄소배출권 거래제도가 시행되면 비용지출만 늘어난다는 게 기업들의 주장이다.
철강업계의 한 관계자는 “가뜩이나 불경기가 지속되고 있는데 이 제도가 시행됨에 따라 연구개발비나 마케팅비 등이 줄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 정부 “국제사회 흐름 준수해야”
정부의 입장은 단호하다. 온실가스를 줄이는 데 국제사회가 모두 동참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도 그 흐름에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은 1997년 채택된 ‘교토의정서’에서 온실가스 의무감축국으로 지정되지 않았다. 하지만 2012년 교토 의정서가 종료되기 전부터 다음 체제에서 한국도 온실가스 감축량을 늘리라는 국제사회의 압박을 받고 있다.
2009년 이명박 정부는 202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당시보다 30% 감축하겠다는 결의안을 UN기후협약에 제출했고 박근혜 정부도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목표감축량제도’를 운영하면서 선진국 수준에 준하는 온실가스 감축 기조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11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제’(APEC) 회의에서 그동안 교토의정서를 준수하지 않던 미국과 중국이 적극적으로 온실가스를 감축하기로 합의한 것도 우리 정부에게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국제사회에서 온실가스를 가장 많이 배출한 두 나라가 앞으로 적극적인 온실가스 감축 의지를 보이면서 그동안 유럽과 호주에서 침체됐던 글로벌 탄소배출권시장이 다시 활기를 띌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정부는 앞으로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국제사회의 흐름이 더 활발해질 것을 염두에 두고 탄소배출권 거래제도를 서둘러 도입했다.
◆ 탄소배출권 거래제도 조기정착 위해 협력 필요
탄소배출권 거래제도 시행 뒤 시장의 반응은 아직 무덤덤하다.
한국거래소(KRX)에 따르면 지난달 12일 제도 시행 이후 단 4일 동안만 거래가 이루어졌다. 하루 거래량도 1190톤이 거래 된 첫째 날을 제외하면 모두 100톤 이하의 소규모 거래만 이뤄졌다.
|
|
|
▲ 윤성규 환경부 장관 |
전문가들은 탄소배출권 거래제도 도입을 통해 온실가스를 감축하려는 국제사회의 흐름을 준수하고 점점 심화하는 국제사회의 감축압박에 적응하려면 탄소배출권 거래시장을 활성화해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온실가스 발생량을 줄이도록 유도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진단한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우리도 유럽처럼 배출권 거래시장에 개인이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여는 것이 시장을 활성화하는 한 가지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우리는 배출권을 할당받은 525개 기업과 3개의 은행만 거래시장 참여가 가능하다”며 “유럽처럼 펀드나 파생상품 등을 통해 개인참여를 허용하면 시장이 더 활기를 띌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과 정부가 할당량을 산정할 때 협력체계를 강화해야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기업의 경우 대규모로 배출권을 구입하거나 벌금을 물어서라도 매출과 직결되는 생산량을 유지할 수 있지만 중소기업의 경우 지금의 제도에서 자발적으로 생산량을 줄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철강업계의 한 관계자는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곳은 중소기업”이라며 “정부가 산업계와 소통을 강화해 다음 계획기간에 할당량 산정방법의 개선이 있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탄소배출권 거래제도 시행으로 수혜를 입을 것으로 보이는 기업들도 거래량이 활발해지기를 원하고 있다.
국내 기업 가운데 휴켐스, 한솔데코, 에코아이 등은 각각 배출권 판매와 중개사업 등으로 탄소배출권 거래시장에서 수익을 얻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서정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