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경기지표가 하반기에도 좀처럼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해지면서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정책 공조를 다짐했던 이 총재의 고심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 터키발 금융 불안에 고용 부진까지 덮쳐 한국은행 금리 인상 흐름 ‘제동’
20일 금융권에 따르면 터키발 신흥국 금융 위기가 불거진 데다 7월 국내 고용지표가 2008년 이후 최악으로 나타나면서 한국은행의 금리 인상 계획에 차질이 빚어졌다.
7월 고용 증가는 5천 명으로 나타났다. 예상치인 10만 명을 크게 밑돈 것은 물론이고 8년6개월 만에 1만 명대 마저 무너졌다.
8월 고용 증가폭은 7월보다는 반등하겠지만 하반기에 큰 폭의 고용 회복은 어려울 것으로 전망됐다.
문정희 KB증권 연구원은 “8월에는 7~8만 명 수준으로 신규 고용이 회복할 것”이라며 “다만 생산 가능인구가 감소하는 구조적 요인과 제조업 부진, 개인서비스업 고용감소 등을 감안하면 하반기에 큰 폭의 고용 회복을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내다봤다.
한국은행은 최근 금리 인상 신호를 꾸준히 시장에 보내고 있었지만 최근 소비와 투자가 부진한 데다 이번 ‘고용 쇼크’도 장기화될 것으로 점쳐지면서 통화정책 긴축 기조로 가는 금리인상을 단행하기 쉽지 않아졌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분쟁과 터키발 신흥국 금융 위기로 국내 경제를 향한 경각심이 높아진 상황에서 엎친 데 덮친 격이다.
국내 경기 상황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한국은행이 금리 인상 카드를 꺼내들면 경제가 더욱 얼어붙을 수 있다.
채권시장은 이미 한국은행의 8월 금리 인상이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17일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연 1.997%까지 떨어지며 10개월 만에 1%대로 주저앉았다. 일반적으로 금리 인상 가능성이 높으면 시장금리는 상승하고 금리 인상 가능성이 낮아지면 시장 금리는 하락하는 모습을 보인다.
정부의 경제정책을 향한 여론이 악화되고 있는 가운데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이 정책 방향을 놓고 시각차를 보이고 있는 점도 부담스러운 대목이다.
김 부총리는 “필요하면 관계부처, 당과 협의해 경제정책을 개선 또는 수정하는 방향도 검토하겠다”며 정책 변화를 시사했지만 반대로 장 실장은 “저소득층과 중산층 국민들이 정책 성과를 체감하고 고용 상황이 개선될 것으로 확신한다. 정부를 믿고 조금만 기달려달라”고 강행의 뜻을 내비쳤다.
정부의 경제정책을 주도하는 두 수장의 시각이 엇갈리면서 정책 방향이 명확하게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한국은행이 정책 공조를 위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기다림’뿐이다.
'신호 효과'는 한국은행이 외환시장이나 채권시장 등에 직접 개입하지 않고 시장 참여자들에게 가능성을 언급하는 것만으로 정책효과를 거둘 수 있는 유용한 수단이다.
이 총재가 통화정책 성패의 관건으로 시장의 신뢰를 들면서 “한국은행에서 통화정책을 어떻게 결정할 것인지 시장과 국민들에게 미리 신호를 줘야 한다”고 강조한 이유다.
미국과 한국의 금리 격차가 더 벌어지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도 한국은행에게 고민거리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9월에 기준금리를 올릴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미국이 9월에 기준금리를 인상하면 한국과 미국의 금리 차이는 0.75%포인트까지 확대된다.
아직까지는 금리 격차에 따른 자본 유출이 크게 나타나고 있지는 않지만 금리 차이와 신흥국 금융 불안이 맞물리면 외국인들이 한국 금융시장에서 급격하게 자금을 회수할 가능성도 있다.
올해 초 경기가 호조세를 이어가고 있을 때 금리를 높였어야 했다는 자조 섞인 말도 한국은행 안팎에서 나온다.
이 총재가 4월 한국은행 총재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하는 것과 맞물리면서 제때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는 것이다.
신동수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단기적으로 외국인의 자금 이탈 우려가 크지 않고 물가도 정책목표를 밑돌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은행의 통화정책은 소비 등 내수 부양에 치우칠 것”이라며 “다만 미국 연준의 추가 금리 인상 등을 감안하면 여전히 금리 인상 가능성은 남아있다“고 바라봤다. [비즈니스포스트 최석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