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일 혁신성장 관계장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
정부가 대기업의 벤처기업 인수합병을 촉진하기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혁신성장의 주요 동력이 벤처기업에 있다고 봤다. 하지만 벤처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는 출구(exit)가 마땅치 않아 벤처기업 생태계가 활성화되지 않는 측면이 컸다.
결국 대기업의 참여가 꼭 필요하다고 보고 대기업이 벤처기업 인수합병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도록 제도를 손보기로 했다. 이를 통해 투자와 회수, 재투자로 이어지는 벤처 투자의 선순환 고리를 구축하려는 의도로 파악된다.
3일 기획재정부 등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벤처기업 숫자는 2012년 2만8193개에서 2017년 3만5282개로 늘어났다.
하지만 국내총생산(GDP) 대비 벤처투자 규모는 2016년 기준 0.13%로 미국(0.37%), 중국(0.28%)은 물론 인도(0.15%)보다도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벤처기업은 보통 창업기-성장기-회수기의 생애주기를 거치는데 우리나라는 특히 회수 단계가 취약하다.
벤처기업은 인수합병(M&A)과 기업공개(IPO)로 주로 투자금을 회수하는데 우리나라는 특히 인수합병 비중이 매우 낮다.
2016년 미국의 벤처기업 투자 회수액 비중은 인수합병이 89%, 기업공개가 6%였는데 우리나라는 기업공개 27%, 인수합병은 고작 3%였다. 벤처기업이 성장해도 투자금을 회수할 기회를 얻기 힘들다는 말이 나온다.
정부는 국내 경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대기업집단이 벤처투자와 인수합병에 소극적인 점을 벤처기업 인수합병이 활발하게 이뤄지지 않는 원인으로 파악했다.
벤처기업이 대기업집단에 포함되면 세제와 금융 등 혜택을 잃어버리고 공정거래법상 규제를 받게 된다. 대기업집단이 벤처기업을 인수하는 데 부담을 느끼는 주요 이유다.
정부는 이런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기업이 벤처기업을 인수해도 10년 동안 계열 편입을 유예하고 중소기업 지위를 유지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기존에는 7년까지만 계열 편입이 유예됐다.
여기에 벤처 지주회사제도를 개선해 대기업의 벤처기업 인수합병을 촉진하기로 했다.
기업 규모가 작은 벤처기업을 인수해도 지주회사를 설립할 수 있도록 벤처지주회사의 자산총액 요건을 5천억 원에서 300억 원으로 대폭 축소했다.
현재 지주회사가 아닌 일반 대기업집단 소속 창업투자회사 일곱 곳의 평균 자산총액은 374억 원이다. 이 정도의 규모만 갖춰도 벤처 지주회사 설립이 가능해진다.
또 벤처 지주회사의 행위제한 규제도 완화했다. 지주회사는 비계열사의 지분을 5% 이내로만 보유할 수 있으나 벤처지주회사는 이러한 기준을 폐지했다.
또 기존 지주회사의 자회사나 손자회사로 벤처 지주회사를 설립할 때 지분 보유 특례를 적용한다.
일반적으로 지주회사의 자회사는 손자회사 지분을 100% 보유해야 하지만 벤처 지주회사 자회사일 때는 손자회사 지분을 20%만 보유해도 된다. 벤처 지주회사 손자회사일 때는 증손회사 지분을 50%만 보유해도 된다.
이 외에 벤처 자회사 범위를 연구개발(R&D) 비율 5% 이상 중소기업까지 확대하고 자회사 주식가액 중 벤처 자회사 주식가액 비중이 30%만 되도 벤처지주회사로 신청할 수 있도록 했다.
새로운 제도를 활용하면 자본금 100억 원만 출자해도 벤처 지주회사를 설립할 수 있다. 이 회사는 주식가액이 100억 원인 벤처기업을 최대 15개까지 자회사로 둘 수 있다.
지주회사 부채비율 200%를 적용하면 자본금 100억 원의 회사가 자산총액을 300억 원까지 확보할 수 있어 벤처 지주회사 요건을 갖출 수 있다.
벤처 지주회사가 주식가액 100억 원인 벤처기업을 자회사로 두려면 20억 원의 지분을 인수하면 되므로 모두 15개 자회사를 거느릴 수 있게 된다.
정부는 2017년 11월 혁신창업 생태계 조성방안을 마련해 벤처기업 육성의 큰 틀을 마련하고 2018년 1월에는 혁신모험펀드 조성·운영 계획을 발표해 투자자금 확충에 나섰다.
또 최근 발표한 세법 개정안에도 벤처기업의 성장을 돕도록 세제 혜택을 주는 내용이 포함됐다. 개인투자조합을 통해 취득한 주식에 양도차익을 비과세하고 연기금의 코스닥 관련 차익거래에 증권거래세를 면제하는 등이다.
벤처기업의 창업과 성장을 뒷받침하는 제도를 마련한 데 이어 이번에 벤처투자 회수를 위한 제도를 구축해 벤처기업 생태계를 완성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정부 관계자는 “대기업집단과 중견기업의 벤처기업 투자와 인수합병(M&A)이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된다”며 “투자→회수→재투자의 벤처업계 선순환 고리가 강화돼 역동적 벤처 생태계 구축이 가능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디모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