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수영 한국석유공사 사장과
정승일 한국가스공사 사장이 통합 위기는 넘겼지만 가야 할 구조조정의 길은 험난해 보인다.
27일 공기업계에 따르면 해외자원개발 혁신TF의 권고안에 석유공사와 가스공사의 기능조정 내용이 빠지면서 양 사장과 정 사장은 한숨 돌리게 됐다.
▲ 양수영 한국석유공사 사장(왼쪽)과 정승일 한국가스공사 사장. |
석유공사와 가스공사는 박근혜 정부 때부터 통합론이 제기됐는데 3월 해외자원개발 혁신TF의 권고에 따라 광물자원공사와 광해관리공단의 통합이 결정되면서 두 공기업의 통합 가능성이 더욱 부각됐다.
혁신TF는 두 공기업의 통합을 포함해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구조조정 방안을 검토했지만 결국 통합 대신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선택했다.
혁신TF는 자원 공기업을 따로 유지하는 데서 오는 경쟁 구도의 이점, 노조 반발 등 대내외적 공감대 없이 추진되는 통합의 부작용 등을 고려해 기능조정 대신 구조조정을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혁신TF의 이번 결정으로 당분간 두 공기업의 통합론은 수면 아래로 내려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양 사장과 정 사장이 가야 할 구조조정의 길도 험난해 보인다.
민간기업이 구조조정을 추진하면 크게 사업(자산)매각, 인력감축 등을 추진하는데 석유공사와 가스공사는 공기업인 만큼 양 사장과 정 사장이 인력 감축 카드를 사용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 있다.
혁신TF는 이번 권고안에 인력 감축 내용을 담지 않았다.
박기영 산업통상자원부 에너지자원정책관은 26일 혁신TF의 권고안을 발표하며 “인력 구조조정은 별도 언급이 없었다”며 “각 공기업이 인위적 구조조정은 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가 일자리정책을 제1의 국정과제로 추진하는 상황에서 양 사장과 정 사장이 구조조정을 위해 과감한 인력 감축을 시행하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해 보인다.
혁신TF는 이번 권고안에서 정부의 재정 지원 없는 구조조정 원칙을 명확히 했다.
양 사장과 정 사장은 결국 사업매각과 업무 효율성 향상 등의 방식으로 구조조정을 추진해야 하는 셈인데 사업 매각 역시 만만치 않아 보인다.
혁신TF는 두 공기업이 매각해야 할 사업을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고 각 공기업의 자율적 판단에 맡겼다. 동시에 매각 대상을 비공개하고 매각 기한을 정하지 않도록 해 헐값 매각을 방지할 것을 권고했다.
이에 따라 양 사장과 정 사장은 구조조정 과정에서 사업 매각의 정당성을 확보해야 하는 부담이 커졌다.
양 사장과 정 사장의 임기가 3년이라는 점도 구조조정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혁신TF는 각 공기업이 도전적 경영목표를 2년, 5년, 10년 단위로 설정하고 구조조정 목표 달성 여부를 사장 등 경영진 인사와 연동해 책임지도록 했는데 양 사장과 정 사장의 임기가 3년이라는 점은 이 권고사항을 무력하게 만들 수 있다.
다만 2년 전과 달리 양 사장과 정 사장이 해외 자원 개발사업을 털고 가는 데 적극적 의지를 보이는 점, 노조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점 등은 구조조정에 긍정적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양 사장과 정 사장은 전임 사장인 김정래 전 석유공사 사장, 이승훈 전 가스공사 사장과 달리 임기 초반부터 해외 자원 개발사업의 진상 규명을 약속하는 등 노조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석유공사는 김 전 사장 시절 자산 매각 등의 과정에서 노사가 극심하게 대립하며 구조조정에 어려움을 겪은 경험이 있다.
양 사장과 정 사장이 재무구조 개선 등 각 공기업의 실질적 변화를 이끌지 못하면 두 공기업은 다시 통합론을 마주할 가능성이 크다.
두 공기업은 2016년 박근혜 정부에서도 경영 정상화를 위한 진단을 받은 뒤 산업통상자원부 지휘 아래 구조조정을 추진했지만 좋은 성과를 내지 못했고 2년 뒤 문재인 정부에서 또다시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요구받았다.
석유공사와 가스공사는 26일 “과거의 부실한 사업관리로 국민들께 심려를 끼쳐 드린 점을 깊이 반성한다”며 전면적 시스템 개선과 비핵심 사업 매각 등을 통해 혁신TF의 권고안을 철저히 이행하겠다고 약속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이한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