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병준 자유한국당 혁신비대위원회 위원장이 1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당대표실에서 비상대책위원회 구성 방안에 관한 기자간담회를 열고 발언하고 있다. <자유한국당> |
“성공 확률은 반반이다.”
김병준 자유한국당 혁신비대위원회 위원장이 보수 재건 가능성을 놓고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김 위원장은 자유한국당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당 노선의 일부 수정이 불가피하다는 점도 앞세우고 있는데 당 내부에서 반발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김 위원장은 자유한국당에서도 비교적 ‘합리적’ 보수 노선을 지녔다고 평가 받는 인물을 주요 당직에 앉히며 체질 개선을 꾀하고 있다.
◆ 김병준, 비상대책위원회 구성 어떻게 할까
22일 정치권에 따르면 곧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의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은 혁신비대위 구성을 위한 상임전국위원회를 24일 열겠다는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 적어도 22일까지는 비대위원을 맡을 사람들에 대한 통보절차가 마무리될 것으로 전망된다.
비대위는 9명 혹은 11명으로 구성된다.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와 함진규 정책위의장이 당연직 2명으로 포함되고 초선, 재선의원 2명도 포함된다. 나머지 5~7명은 일반 시민이나 시민단체 인물들로 채우겠다는 방침이 정해져 있다.
당의 계파 갈등이 심한 상황에서 비대위원을 어떻게 선임할지 관심이 쏠린다. 자칫 계파 한 쪽에 힘을 싣는 모습이 보이면 김 위원장의 인선을 놓고 비판이 커질 수 있다.
김 위원장은 18일 기자간담회에서 “일단은 언론인이나 당원들께 꾸지람을 들을 수 있을 것 같지만 제가 생각하는 가치와 이념, 기치를 잘 아는 분을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임명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계파를 적당히 분배하는 데 치중했던 과거 비대위들과 달리 보수적 가치의 선명성을 중점에 두고 인물들을 발탁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김 위원장이 가치 중심적 인사에 방점을 둘 것이라는 점은 앞선 인사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김 위원장은 19일 취임 후 첫 인사에서 사무총장에 김용태 의원, 비서실장에 홍철호 의원을 발탁했다. 두 의원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시국에 자유한국당을 탈당해 바른정당에 몸 담았다가 다시 자유한국당에 복귀한 ‘복당파’ 의원들이다.
김용태 의원은 2016년 6월에 자유한국당 혁신위원장에 내정됐지만 강성 비박 성향 탓에 친박 의원들의 거센 반발을 받아 자리에서 3일 만에 사퇴한 이력이 있다. 친이계로 분류되지만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아 남경필 전 경기도지사와 원희룡 제주도지사를 잇는 자유한국당 소장파 의원으로 꼽힌다.
김 위원장은 당 사무총장에 개혁 성향의 김용태 의원을 뽑은 것을 놓고 “저는 국가 주도주의와 대중 영합주의(포퓰리즘), 패권주의가 한국정치의 레짐이자 큰 모순이라고 생각한다”며 “김용태 사무총장도 저와 같은 생각을 품고 있고 '탈 대중 영합주의'에 대한 책까지 쓰면서 제 글을 인용해 제 입장을 설명해주기도 했다”고 말했다.
홍철호 의원은 친박과 비박 어느 곳에도 포함되지 않는 무계파 중도 성향인 데다 닭 가공기업 사장을 지냈던 이력이 있어 합리적 대안을 찾는 데 능력을 갖춘 것으로 전해진다.|
자유한국당의 싱크탱크 역할을 하는 여의도연구원 원장에는 김선동 의원을 임명했다. 김선동 의원은 친박계로 분류되지만 비교적 온건한 성향을 지니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 위원장은 김선동 의원 임명과 관련해 “저와 아주 오래된 관계는 아니지만 지난 1년 동안 당 개혁과 국가 개혁과 관련해 적잖은 대화를 나눴고 저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 정책전문가로서 ‘가치와 이념 재정립’ 과제 풀어야
김 위원장은 최근 JTBC뉴스룸에 출연해 가치와 이념을 재정립해 ‘낡은 보수’ 이미지에서 벗어나겠다는 의지를 확고히 밝혔다. 보수가 국가 안보와 성장만을 외쳐서는 앞으로 국민들의 신뢰를 얻기 힘들다고 봤다.
김 위원장은 개인적 의견을 전제로 “국가의 보충적 역할로 복지 부분도 반대할게 아니라 찬성할 건 찬성해 줄 수 있다”며 “모든 국민이 평화를 원하는데 평화에 도움이 된다면 전통적 안보관보다는 평화를 확립하는 데 적극적 협력을 하고 오히려 더 평화적 체제가 더 정착할 수 있도록 더 노력할 수 있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자유한국당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1년 가까이
홍준표 전 대표체제를 지내며 복지 확대에 강하게 반대했다. 행정부를 견제하고 감시하는 차원에서 벗어나 적절한 대안을 제시하지 않고 무리한 발목잡기를 통해 야당의 존재감을 확인하려고만 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특히 올해 초부터 남북 관계에 훈풍이 부는 과정에서도 자유한국당은 정부의 움직임에 무조건적 반대 의견만을 냈다.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의 성과를 평가절하하는 논평만 내놓으면서 북한 문제 해결을 위한 국제사회의 흐름을 읽지 못하고 역주행한다는 비판도 받았다.
자유한국당은 결국 지방선거에서 소수의 유권자들에게만 선택 받는 처참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2020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지지를 회복하기 위해 당내 노선의 수정 전략이 절실해졌다고 김 위원장은 보고 있다.
진보 진영에 맞서 보수 진영의 새로운 노선을 정립하는 것이 최대 과제라고 볼 수 있다.
김 위원장은 노무현 정부의 브레인으로 2003년부터 2005년까지 2년 동안 정책실장을 맡아 국가 정책을 주도했던 경험이 있다. 종합부동산세 등 보유세 도입으로 국가적 아젠다를 제시하기도 했으며 2006년부터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임기가 끝날 때까지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그의 장기라고 내세울 수 있는 정책 기획력을 앞세운다면 보수 진영이 회생할 수 있는 대안의 길을 마련하는 데 김 위원장이 역할을 맡을 수 있다.
김 위원장은 “진보 진영은 인권이라든가 상생이라든가 환경이라든가 이런 가치를 점유하고 있지만 보수 진영은 이 부분에서 굉장히 부진했다”며 “보수 진영이 진보 진영의 가치와 비교되는 어떤 가치들을 가질 것이냐가 중요한데 지금 생각하고 있는 것 가운데 하나는 ‘공동체와 시장의 자율적 정신을 존중하고 국가는 보충적 역할을 하는 것’ 등이 있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당내 일부 의원들이 보수진영의 새 가치 정립에 반발할 가능성을 의식한 듯 독단적으로 움직이기보다 의원들과 충분한 토론을 통해 보수진영의 새 철학을 합의하겠다는 방침을 세워놓고 있다.
▲ 2007년 10월25일 김병준 당시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장이 청와대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함께 얘기하며 걸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
◆ 인적 청산 작업도 진행할까
자유한국당의 정책적 노선을 짜는 것 못지 않게 인적 청산 작업이 중요시돼야 한다는 의견도 정치권 안팎에서 나온다.
유시민 작가는 6월 JTBC ‘썰전’에 출연해 “역사의 정의는 인적 청산이 반드시 동반돼야 한다”며 “완전 구시대의 무능하고 경직된 보수, 반공주의 등에 사로잡힌 사람들, 최순실이 대통령 역할을 하고 있는데 그 밑에서 충성했던 사람을 쳐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유한국당이 추구하는 가치를 적은 새 팻말을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누가’ 그 팻말을 들 것인지가 당의 신뢰 회복에 절대적 영향을 줄 수 있다.
사법부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혐의가 대부분 유죄로 결론 나고 있지만 박 전 대통령 탄핵의 부당함을 주장하는 세력이 여전히 자유한국당 내부에 있다. 이들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발언권이 급격히 위축됐지만 당내에서 적지 않은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서청원 이정현 조원진 전 새누리당 의원들처럼 자발적으로 자유한국당에서 제 발로 걸어나간 의원들도 있지만 자유한국당이라는 울타리 안에 계속 남아 있는 친박 의원들의 청산 없이 제대로 된 개혁이 힘들다는 목소리가 만만치 않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최근 국회 원구성을 놓고도 불만을 품어 자유한국당 지도부를 향해 막말을 서슴지 않았던 의원들이 있었다”며 “여전히 친박계의 돌격대장임을 드러내는 의원들을 정리하지 않으면 김 위원장의 혁신 시도가 빛을 내기 어려울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도 인적 청산 요구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취임 인사에서 “현실 정치를 인정한다는 이름 아래 계파 논쟁과 진영 논리를 앞세우는 정치를 인정하고 적당히 넘어가지 않을 것이고 차라리 이와 싸우다 죽어 거름이 되면 영광일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방법론과 관련해서는 신중한 모습이 엿보인다.
김 위원장은 20일 CBS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에 출연해 “사람이 바뀐다고 해서 (변화)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사람이 바뀌기 전에 무엇을 기준으로 해서 사람이 바뀌어야 되느냐를 우리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어떤 가치와 당의 목적, 방향 등을 정해 놓고 그러한 가치나 기치에 충실한가 하지 않는가, 또는 그 가치와 기치에 얼마만큼 확신을 가지고 있는가 등을 척도로 평가해 그것과 어긋났을 때 우리가 청산을 이야기 하는 것”이라며 “과거만으로 청산을 하기 시작하면 다른 새로운 작업을 하지 못할 것 같아 일단 순서를 세울 것을 먼저 세우고 (인적 쇄신 작업을) 진행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