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 원내대표 선출
2017년 12월12일 자유한국당 의원총회에서 친박으로 분류되는 홍문종 의원과 중립을 자처한 한선교 의원을 꺾고 원내대표에 선출됐다.
김성태는 홍준표 대표와 바른정당 복당파 의원들의 지지를 받고 당선돼 당 내에서 홍 대표의 영향력이 강해진 것으로 평가된다.
김성태는 선출 전부터 강력한 대여투쟁을 예고했고 취임 후 여당 파트너인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를 처음 만난 자리에서도 “정치보복을 중단해달라”며 “자유한국당 패싱을 하지말라”고 경고했다.
원내대표 선출 뒤 첫 임시국회에서 헌법개정특별위원회 연장을 요구하며 여당에 맞섰다. 결국 여야는 본회의 개최에 합의하지 못하고 당초 예정된 날짜인 12월22일에 본회의가 열리지 않았다.
여당은 민생법안 처리를 주장하며 자유한국당이 민생을 볼모로 잡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연내 민생법안 처리를 위해 자유한국당의 주장을 수용해 개헌특위 활동기간을 6개월 연장했다.
김성태가 국회 운영위원장에 오르는 등 국회 원구성 문제도 자유한국당이 원하는대로 진행됐다. 2017년 마지막 국회이자 원내대표 선출 후 첫 국회에서 야당 원내대표로서 비교적 성공적 결과를 얻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17년 12월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이 문재인 대통령 특사로 아랍에미리트(UAE)를 다녀온 것과 관련해 매일 같이 의혹을 제기하며 정부여당을 향한 공세 전면에 나서고 있다.
12월26일에는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UAE 원전게이트 국정조사를 요구했고 2018년 1월2일에도 “망나니 같은 외교로 한국 비즈니스가 큰 위기를 맞았다”고 비판했다.
△자유한국당 탈당과 복당
2016년 12월27일 김무성·유승민 의원 등 27명의 의원과 새누리당을 집단탈당했다. 이후 2017년 1월24일 바른정당이 창당됐고 김성태는 2월2일 바른정당 사무총장에 임명됐다.
김성태는 “우리 당이 지향하는 정치에 바른 정당, 민생에 빠른 정당의 기틀을 세워 기필코 국민의 지지와 선택을 받을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 당내 경선을 거쳐 유승민 의원이 바른정당 대선후보로 결정되자 3월29일 사무총장 자리를 내려놓았다.
하지만 대선과정에서 유 의원을 지지하는 쪽과 그렇지 않은 쪽의 의견이 갈리면서 보수단일화를 기치로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를 지지하는 권성동·장제원 의원 등 12명과 함께 5월7일 자유한국당으로 복당했다.
이 때문에 복당의원들은 철새·박쥐라는 비판을 받았고 자유한국당에서도 탈당파 복당을 놓고 친박과 비박의 갈등이 빚어졌다.
김성태는 5월19일 페이스북에 “철새 비판을 겸허히 받아들인다”면서도 “새로운 보수가 진정한 보수로 거듭나기 위해 흙탕물을 정화하는 연꽃으로 피어나는 것이 김성태 정치의 소임”이라고 스스로를 변호했다.
△최순실 국조특위 위원장
2016년 11월16일 '최순실 국정농단사태의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위원장에 선임됐다. 결과적으로 최순실 국정농단사태에 정치권에서 가장 돋보인 인물로 떠올랐다.
김성태는 청문회에서 9대기업 총수를 증인으로 채택하고 최순실씨와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등 불출석증인에게 즉각 동행명령장을 발부하는 등 적극적으로 청문화를 이끌어 나갔다. 12월26일 최순실씨가 수감된 서울구치소를 방문해 현장청문회를 진행하기도 했다. 12월8일 TV조선에 출연해 우병우 전 민정수석 소재지를 제보하는 네티즌에게 사비로 100만 원을 사례하겠다고 약속했다.
청문회는 지상파 3사에서 생중계되면서 국민들의 관심이 많았는데 김성태는 청문회의 중심을 잘 잡으면서 호평을 받았다. 질의가 길어지는 경우 통제하고 표현이 분명치 않을 때는 재차 질의해 내용을 정리하는 등 진행자로서 역할을 잘 수행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우병우 전 민정수석 등 증인들의 태도가 불량할 때는 “자세를 똑바로 하고 대답하라”고 호통을 치는 등 원활한 청문회 진행에 기여했다.
김성태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 홍완선 전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장 등을 위증 혐의로 특검에 고발하기도 했다.
김성태는 2017년 1월17일 국조특위 활동을 마치고 기자간담회에서 “국민과 함께하는 청문회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고 평가하면서도 “불출석 증인 처발을 강화하고 동행명령에 강제권을 부여하는 등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의정활동
3선의원으로 새누리당 제4정책조정위원회 위원장,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간사, 국토교통위원회 간사, 환경노동위원회 간사, 새누리당 비정규직대책특별위원회 위원장 등을 지냈다.
노동계 출신답게 노동 관련한 입법활동을 활발히 했다. 2012년 8월 정년을 60세로 연장하는 내용의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대표발의해 2013년 4월 국회를 통과했다. 김성태는 “정년 연장은 중장년층 고용안정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며 “소외받는 사회적 약자와 취약계층을 위해 더 소신있게 의정활동을 벌일 것”이라고 밝혔다.
2014년 9월에는 현재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으로 정해져 공무원과 대기업 등 일부 근로자만 누리고 있는 대체휴일제를 모든 근로자에게 확대 적용하는 내용의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그러나 이 법은 19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폐기됐다.
2016년 20대 국회에서 1호법안으로 근로시간 단축과 통상임금 법적근거를 담은 근로기준법과 고용보험법 개정안 등 노동개혁법안을 대표발의했다. 김성태는 “일자리창출 희망을 담아 20대 국회 1호 법안으로 대표발의한다”며 “노동개혁을 뒷받침할 입법은 어느 정당도 혼자 힘으로 통과시킬 수 없어 여야가 진지한 대화와 협력으로 일자리 희망에 화답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사정위원회 참여
한국노총 사무총장 시절인 2002년부터 2004년까지 근로자위원으로 노사정위원회에 참여했다.
2002년부터 주5일 근무제 합의에 나서 2003년 8월까지 노사정위원회에서 여러 차례 논의했지만 민주노총과 경총의 반대로 최종 합의는 실패했다. 그러나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법안이 통과되며 주5일 근무제가 도입되는데 기여했다.
이 외에도 2004년 2월 일자리만들기 사회협약을 마련했다. 노동계는 임금안정에 협력하고 경영계는 인위적 구조조정을 최대한 자제하는 내용이다. 김성태는 “이번 합의를 통해 앞으로 노동운동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했다”고 평가했다.
2003년에는 제16차 한미재계회의에 노동계 대표로 참석하기도 했다. 김성태는 기조연설을 통해 한국 노사관계 현황을 설명하고 외국인들의 왜곡된 인식을 바로잡는 역할을 했다. 이를 놓고 청와대에서 “국민 경제활성화에 노사가 한뜻으로 나섰다”며 긍정적 평가를 내렸다.
김성태는 이데일리와 인터뷰에서 “일자리 창출을 위해 노동운동가로서 세계 어디든 못 갈 곳이 없다”며 “앉아서 운동을 하던 시대는 끝났으며 노동운동도 과거 관행을 벗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 ▲ 김성태 국정조사 특별위원장이 2016년 12월26일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에서 열린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 현장 청문회'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