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대기업 공익법인의 운영과 관련해 감시와 감독을 강화할 뜻을 보이면서 한진그룹이 정석인하학원 등 공익법인에서 보유한 계열사 지분을 정리하는 등 지배구조를 손볼 가능성이 떠오른다.
또 대한항공 등이 공익법인의 유상증자 등을 통해 자금 지원을 받는 일도 앞으로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2일 재계에 따르면 한진그룹이 앞으로 공정거래위원회에서 공익법인 운영제도를 개선하는 작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는 데 발맞춰 지배구조를 조정하는 방안을 검토할 가능성이 있다.
공정위는 대기업집단 소속 공익법인 165곳의 운영실태를 조사·분석한 결과를 내놓으면서 공익법인을 통해 계열사를 우회지원한 대기업집단 사례로 한진그룹을 들었다.
대기업집단이 소속 공익법인을 악용한 것으로 의심되는 사례로 공익법인을 통해 지배력을 유지하거나 계열사를 우회지원, 공익법인을 지배력 유지와 계열사 지원에 이용, 규제 회피수단으로 활용한 사례 등을 들었는데 한진그룹은 계열사를 통한 우회지원이 지적됐다.
공정위가 공익법인 운영제도를 개선하기 위해 이번 실태조사를 진행한 만큼 당장 공익법인들을 조사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정부가 이번 실태 조사 결과에 토대해 대기업집단의 공익법인을 관리·감독하는 방안을 추진할 가능성이 높다.
이에 따라 한진그룹 계열사들은 앞으로 공익법인 자금을 투자받기 어려워질 수 있다.
정석인하학원은 지난해 3월 대한항공에서 재무 건전성 확보를 목적으로 진행한 4500억 원 규모 유상증자에 참여해 52억 원을 출자했다. 출자금 가운데 45억 원을 그룹의 다른 계열사로부터 현금으로 받았는데 공익법인 성격상 증여세를 내지 않았다.
대한항공이 2016년까지 5년 동안 배당을 한 번도 하지 않았던 만큼 정석인하학원이 대한항공을 지원하기 위해 유상증자에 참여한 것으로 공정거래위원회는 바라봤다.
이에 대해 한진그룹 관계자는 “정석인하학원은 독자적 판단에 토대해 정상적 투자의 한 고리로서 대한항공의 유상증자에 참여했다”며 “대한항공 유상투자에 참여할 당시 대한항공이 5년 동안 배당을 실시하지 않았지만 각 기관에서 향후 항공업계의 호황을 예상했다”고 말했다.
공정위의 실태 조사 결과가 나온 만큼 국회 차원에서도 공익법인의 계열사 주식에 의결권을 제한하는 내용을 뼈대로 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 처리에 속도가 날 수 있다.
한진그룹은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핵심 계열사의 지배력이 약해진다.
한진그룹 공익법인은 대한항공 등 핵심계열사 지분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 이에 따라 공익법인을 설립 취지와 다르게 활용하고 있다는 지적을 꾸준히 받아왔다.
한진그룹은 정석인하학원과 일우재단, 정석물류학술재단 등 한진그룹 공익법인 3곳을 통해 한진칼과 대한항공, 한진 등 한진그룹 주력 계열사에 지배력을 강화하고 있다.
정석인하학원은 인하대학교를 운영하는 학교법인으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이사장을 맡고 있으며
조원태 대한항공 대표이사 사장과
석태수 대한항공 부회장이 비상임 이사로서 이사회에 이름을 올려놓고 있다.
일우재단은 최근까지 조 회장 부인인 이명희 전 일우재단 이사장이 이사장을 맡다가 최근 물러났다.
정석물류학술재단은 물류 연구와 이를 지원하는 것을 주로 하는 공익법인으로 대한항공이 4억 원을 출자했으며
석태수 부회장이 이사에 이름을 올려놓고 있다. 조 회장 어머니인 김정일씨도 정석물류학술재단에 110억 원을 출자했다.
정석인하학원은 한진칼 지분 2.14%와 대한항공 지분 2.73%, 한진 지분 3.97%를 보유하고 있다. 한국공항 지분도 소량 들고 있다.
정석물류학술재단은 한진칼 지분 1.08%와 대한항공 지분 0.42%를 소유하고 있다. 일우재단은 한진칼과 대한항공 지분을 각각 0.16%와 0.20% 보유하고 있다.
한진그룹 공익법인 3곳의 의결권이 제한되면 한진그룹의 특수관계인 지분율은 의결권 기준으로 한진칼이 28.95%에서 26.47%로, 대한항공이 33.34%에서 31.03%로, 한진이 34.59%에서 31.89%로 낮아진다. [비즈니스포스트 박경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