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가 메모리반도체 호황에 힘입어 향후 수년 동안 실적을 크게 늘리며 30조 원에 이르는 막대한 현금을 확보할 것으로 예상됐다.
메모리반도체 성장 한계를 극복하고 외형 성장을 추진하기 위해 이 현금을 인수합병 등 외부 투자에 적극 활용할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23일 "SK하이닉스는 앞으로 약 4년 동안 현금이 넘쳐나 걱정하는 처지에 놓일 것"이라며 "이를 활용할 방안을 놓고 고민이 필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SK하이닉스의 연간 영업이익은 2016년 약 3조3천억 원, 2017년 약 13조7천억 원을 보였는데 올해와 내년에는 모두 20조 원을 넘는 수준까지 급증할 것으로 예상됐다.
메모리반도체 가격 상승세가 지속되는 한편 SK하이닉스가 반도체 공장에 증설 투자를 벌인 효과가 본격적으로 나타나며 이익 성장에 속도가 붙고 있다.
SK하이닉스가 시설 투자에 들이는 금액은 연간 10조 원 초반 수준에 그칠 것으로 추정된다. 다른 비용을 고려해도 해마다 수조 원에 이르는 현금이 고스란히 쌓이게 되는 셈이다.
이 연구원은 앞으로 4년 동안 설비투자와 세금 등을 제외하고 SK하이닉스가 확보할 현금 규모가 현재 시가총액의 절반 수준인 30조 원 안팎에 이를 것이라고 추정했다.
SK하이닉스와 같은 제조기업들은 대량의 현금이 쌓이면 이를 주로 생산 투자에 들여 사업을 더 확장하는 데 사용한다.
하지만 SK하이닉스의 주력사업인 메모리반도체는 특성상 증설 투자가 업황 악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고 효과를 거두는 데 시간도 오래 걸려 투자 확대가 쉽지 않다.
메모리반도체 경쟁사인 삼성전자는 시설 투자에 사용한 뒤 남는 금액을 대부분 현금배당과 자사주 매입 등 주주 환원에 사용한다는 계획을 내세우고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SK하이닉스를 중심으로 한 반도체사업 성장에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최 회장은 최근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주최한 간담회에서 반도체사업에 3년 동안 약 49조 원을 들인다는 공격적 계획을 내놓았다.
이런 점에서 SK하이닉스의 잉여현금은 공장 증설이 아닌 다른 반도체사업과 관련한 투자에 활용될 가능성이 높다.
SK하이닉스가 향후 벌어들일 막대한 규모의 현금을 외형 성장과 기술 확보를 위한 인수합병에 사용할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다.
최근 SK하이닉스가 약 4조 원을 들여 일본 도시바메모리 지분 인수에 성공하면서 대규모 인수합병에 자신감을 붙인 점도 이런 관측에 힘을 보탠다.
SK하이닉스는 2012년 SK그룹에 편입된 후 6건 이상의 인수합병을 진행했다. 특히 미국 LAMD 등 컨트롤러업체를 인수한 것은 SSD 핵심 기술을 확보했다는 점에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데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SK하이닉스가 자회사인 SK하이닉스시스템IC의 반도체 위탁생산사업을 키우기 위해 시스템반도체 전문기업을 인수하며 사업 다각화에 속도를 낼 전망은 이전부터 꾸준히 나왔다.
▲ SK하이닉스가 2012년 미국 LAMD를 인수해 설립한 컨트롤러 개발 자회사. |
반도체 기업들의 공격적 증설 투자 경쟁으로 반도체 소재의 공급 부족 가능성이 높아진 만큼 SK하이닉스가 직접 소재업체를 인수하는 등의 전략으로 안정적 수급망을 확보할 수도 있다.
SK하이닉스가 신사업인 기업용 SSD분야에서 성장을 노리고 있어 다양한 서버 고객사 기반을 갖춘 하드디스크업체를 인수해 시너지를 노릴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SK하이닉스는 이전에 하드디스크업체 시게이트와 합작법인 설립을 논의하는 등 SSD사업 성장을 앞당기기 위해 적극적으로 외부 협력을 추진했던 적도 있다.
SK하이닉스의 주력사업인 메모리반도체는 특성상 업황 변화에 큰 영향을 받는다. 중국의 사업 진출 등 메모리반도체 업황에 영향을 줄 만한 변수가 생기면서 SK하이닉스는 사업분야를 넓히고 매출처를 다각화하는 등 대응 전략을 마련해야 할 시점이다.
이 연구원은 "SK하이닉스 등 한국 반도체 기업이 중국의 시장 진출을 방어하기는 어렵다"며 "대량의 현금을 확보한 뒤 중장기적 성장을 위해 이를 활용할 계획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바라봤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