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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근, SK의 '잭 웰치'가 될 수 있을까

이계원 기자 gwlee@businesspost.co.kr 2014-03-13 11:4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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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창근, SK의 '잭 웰치'가 될 수 있을까  
▲ 김창근 SK그룹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이 최태원 회장의 공백을 대신해야 한다.

김창근 회장은 이제 SK그룹의 유일한 회장이다. 최태원 회장이 실형 확정으로 모든 자리에서 물러난 지금 SK그룹에 회장은 김창근 밖에 없다. SK그룹의 집단지도체체인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이자 SK이노베이션 회장이지만 사실상 최태원 회장을 대신하는 SK그룹 회장이다.

최태원 회장은 38세에 SK그룹 회장이 올라 16년 동안 SK그룹을 지휘했다. 그리고 실형을 선고받았다. ‘옥중경영’의 가능성도 있겠지만 희박하다. 백의종군을 선언한 것이 그 가능성을 사실상 봉쇄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재계 서열 3위이자 우리나라 전체 수출액의 10% 수준을 차지하는 거대그룹을 옥중경영으로 이끌기는 무리다.

그렇게 SK그룹은 선장을 잃었다. 그 거대 함선은 김창근 회장이 대신 이끌게 됐다. 이제 김 회장은 과연 SK그룹을 이끌 수 있느냐는 의문 앞에 섰다. 몰아치는 폭풍 같은 의문 앞에 정면으로 서게 된 것이다.

♦ 샐러리맨에서 회장으로...김창근의 끈기와 집념

  김창근, SK의 '잭 웰치'가 될 수 있을까  
▲ 김창근 SK이노베이션 회장
김 회장은 뼛속까지 ‘SK맨’이다. 1974년 신입사원 시절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40년 동안 한 우물만 팠다. 김 회장은 그룹 안에서 ‘재무통’으로 통한다. 김 회장은 1972년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1974년 선경인더스트리(현 SK케미칼) 울산공장 관리부 노무과에 입사했다. 1981년 자금부 외환과장, 1987년부터 자금부장으로 일했다.

김 회장이 최 회장의 눈에 든 것은 IMF 위기에 처한 1997년이었다. 이때 김 회장도 당시 그룹의 콘트롤타워인 ‘구조조정추진본부’의 재무팀장으로 일했다. 김 회장은 굵직한 재무 구조조정을 마무리하면서 최 회장의 신임을 받았다.

최 회장이 1998년 회장의 자리에 오른 뒤 순풍을 탄 듯 승진을 했다. 2000년 SK 재무지원부문장 부사장, SK 구조조정추진본부 본부장을 거쳤다. 김 회장은 2004년 SK케미칼 대표이사 부회장을 맡으면서 부진한 실적을 바꿔 내 그 능력을 과시했다.

김 회장은 ‘소통의 명장’이다. 김 회장은 직원들 간 대화와 소통을 무엇보다 중시한다. SK케미칼 부회장으로 재직할 당시 노사평화선언과 함께 회사 창립 이래 42년 무분규를 이끌어 냈다. 당시 포브스가 선정한 ‘소통 부문 최고경영자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김 회장은 의지와 집념이 강하다. 올해 1월 신입사원과 대화에서 “즐기면서 일한다는 말의 밑바탕에 처절한 노력과 목표에 대한 집념, 절박함이 있어야 현재를 즐길 수 있다”고 말했다. 명확한 목표와 실행력을 강조한 것이다. 사내에서 평소 카리스마 넘치고 꼭두새벽에도 결재가 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부지런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런 능력들이 김 회장을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의 자리에 오르도록 한 원동력이다. ‘따로 또 같이’를 내세우는 집단지도제체인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에 능력있는 소통의 명장이 제격이라고 최 회장은 판단했을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김 회장은 최 회장이 없는 상황에서 어느 때보다 의지를 다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최 회장의 실형이 확정된 직후 김 회장은 “어떤 경우에도 흔들림 없이 성장하고 발전해야 한다”며 사내 인트라넷을 통해 임직원들을 위로하고 의지를 다졌다. SK그룹 관계자는 “총수가 없어 어수선하겠지만 이만한 규모의 기업이 오너가 없다고 한 순간에 무너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회장이 최 회장을 대신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묻어나는 말이기도 하다.

♦ 언제까지 ‘조정자’에 머물 것인가?

문제는 최 회장이 있을 때 김 회장은 빛이 났지만 최 회장이 없는 상황에서도 계속 그 빛을 낼 수 있느냐는 점이다.

김 회장은 그동안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의 역할이 ‘조정자’라고 강조했다. 김 회장은 지난 2월 최 회장의 실형 확정 직전에도 기자들을 만나 "내 역할은 조정이지, 지휘나 명령이 아니다"라고 쐐기를 박았다. 김 회장은 "그룹에 몸담으면서 나름대로 쌓은 경험과 경륜으로 SK 가족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논의를 통해 최적의 답안을 찾아내는 것이 나의 할 일"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김창근, SK의 '잭 웰치'가 될 수 있을까  
▲ 김창근 SK그룹 수펙스추구협의회 회장이 지난 1월 임직원들에게 신년사를 하고 있다.
최 회장이 그룹의 총수로 진두지휘할 때는 이 말이 ‘겸손함’으로 높이 평가받을 수 있다. 하지만 최 회장이 없는 상황에서 최 회장을 대신해 거대그룹을 지휘하는 자리에서 이 말은 불안감을 던져준다. 조 단위가 넘는 투자, 굵직한 인수합병, 해외 진출 등등은 ‘조정’만으로 될 일이 아니다. 거대 그룹이 가야할 방향을 앞장서 제시해 줘야 한다. 고독한 결단을 해야 하는 것이고 그 위험도 고스란히 책임져야 한다.

최 회장이 2012년 수펙스추구협의회를 출범하면서 김 회장을 의장에 앉히고 많은 권한을 부여했던 것도, 또 지난해 2월 ‘따로 또 같이 3.0’으로 수펙스추구협의회의 위상을 더욱 강화한 것도 결국 최 회장이 없는 상황에서 김 회장에서 그런 역할을 맡기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수펙스추구협의회는 이미 최 회장이 경영공백을 고려해 구축한 집단경영체제라고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수펙스추구협의회는 독립적이고 합리적인 조직일 수 있다. SK그룹 관계자는 “수펙스추구협의회 산하 위원회에서 관계사들의 개별경영이나 현안에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는다”며 “그룹 전체에 영향을 미치거나 복수 관계사가 추진하는 사업, 신시장 개척 등에만 나선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 회장이 제대로 거대함선의 방향을 잡지 못하면 이 집단지도체제는 자칫 모두가 책임지지 않고 SK그룹을 우왕좌왕하게 만들 수도 있다. 기업 지배구조 전문가는 “SK그룹이 몇 년 동안 수펙스추구협의회를 통해 최 회장이 없는 집단지도체제를 실험했다고 해도 최 회장이 있을 때와 없을 때는 분명 다르다”며 “오너가 없는 상황에서 전문경영인이라도 그 고통스런 역할을 맡지 않으면 그룹의 운명을 알 수 없다”고 말했다.

핵심 리더가 없는 집단지도체제는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속담처럼 갈등 속에 빠지거나 아예 누구도 배를 몰지 않으려는 ‘책임회피의 상황’을 마주칠 수 있다는 얘기다.


♦ 오너 제체 대안 가능성에 대한 거대한 실험

김 회장은 일단 수펙스추구협의회를 통해 집단지도체제를 더욱 공고히 하는 방향으로 SK그룹을 끌고 가려고 한다. 최근 계열사의 사업조정 업무를 SK지주회사에서 수펙스추구협의회로 이관하는 개편도 단행했다. 이에 따라 수펙스추구협의회로 소속이 바뀐 임원들이 30여 명에 이른다. SK 전체 임원 중 25%나 된다. 수펙스추구협의회가 중구난방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벌써부터 나온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SK그룹의 실적이 양호하다는 점이다. SK그룹은 에너지와 반도체 사업이 매출의 50% 이상을 차지한다. 아직은 재무구조도 탄탄하다. 특히 SK하이닉스는 지난해 최 회장이 부재한 상황에서도 사상 최대의 실적을 거뒀다. 지난해 매출은 14조 1천억원이고 영업이익은 3조 3천억원을 기록했다. 반도체 시장의 호황도 지속될 것으로 예상돼 올해도 무난히 실적을 낼 것으로 전망된다.

최 회장은 그룹 회장으로 취임한 뒤 SK그룹의 체질을 내수에서 수출 중심으로 바꿀려고 노력했다. 그 결과 지난해 SK그룹의 수출은 내수보다 5조 5000억원이 많은 76조 6000억원을 달성했다. 우리나라 전체 수출 비중의 10%를 차지한다.

김 회장도 계속 공격경영을 강조하고 있다. 김 회장은 올해 경영계획에 대해 “지난해 15조 원 규모의 투자를 단행했다”며 “올해 대내외 불확실성이 더욱 커졌지만 지난해보다 10% 넘게 투자한다는 게 우리 생각”이라고 말했다. 최 회장의 경영공백 이후 SK그룹이 수세적 방어로 전환하느냐 하는 의구심을 떨치기 위한 발언이기도 하다. 또 끊임없는 연구개발과 인재육성으로 글로벌 경쟁력을 놓치지 않겠다고 각오를 다지기도 했다.

최 회장은 그동안 스스로 ‘글로벌 마케터’를 자처하며 해외사업을 챙겨 왔다. 최 회장은 글로벌 사업에 몰입하는 대신 국내 경영활동은 수펙스추구협의회에 맡긴 측면이 있다. 그런데 김 회장은 이제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까지 모두 챙겨야 한다. 이를 위해 수펙스추구협의회에 참여하는 다른 부회장이나 사장들에게 적절한 역할을 어떻게 맡기느냐 하는 점도 과제다. 이런 점에서 삼성전자 출신으로 올해 SK그룹에 들어온 임형규 부회장의 역할이 주목된다.

김 회장은 오너 경영 체제의 대안으로 전문경영인 체제의 성공을 보여주는 거대한 시금석이 될 운명에 놓였다. GE의 잭 웰치 CEO처럼 혹독한 CEO 훈련을 거쳐 SK그룹의 유일 회장의 자리에 오르지는 않았지만 김 회장도 SK그룹 안에서 CEO 경험을 충분히 쌓았다. 그런 만큼 최 회장 공백 상황에서도 김 회장이 훌륭하게 SK그룹을 이끌어 낸다면 오너경영에 일침을 놓을 수 있는 모범사례로 남을 수 있다.

재계 관계자는 “최근 기업 지배구조 변화에 대한 여론이 커지면서 대기업 대주주들도 경영권의 대물림에 상당한 부담감을 느끼고 있다”며 “SK그룹에서 김 회장을 중심으로 한 전문경영인 집단지도체제가 제대로 뿌리를 내린다면 재계 전체로 확산될 가능성이 있다”고 기대했다.

최근 전경련은 회장단 모임에 SK그룹의 참여가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전경련은 "전경련 회장단은 그룹의 대표라는 자격보다 인물 중심의 상징성이 더욱 크게 작용한다"고 말했다. 김 회장으로서는 어찌 보면 수모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수모를 갚을 수 있는 이도 바로 김 회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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