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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얼음판을 걷는 재벌그룹 2인자의 처신

이계원 기자 gwlee@businesspost.co.kr 2014-03-09 14:5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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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너가 ‘제왕적 권력’을 휘두르는 기업에서 2인자 자리는 항상 위태롭다. 그룹에서 흔히 부회장이라는 직함으로 활동하는데 부(副)를 뜯어보면 그 자리가 얼마나 조심해야 하는 지 알 수 있다. 입(口)에 재물(田)이 달렸으니 항상 말을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고, 말을 잘못하면 칼이 날라와 목숨을 부지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말을 조심해야 할 대상은 바로 최고권력자인 1인자다.

마오쩌뚱과 함께 중국 공산혁명을 이끈 저우언라이는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후 26년 동안 총리로 2인자의 자리를 지켰다. 숱한 숙청 속에서도 장수해 중국을 반석 위에 올려놓았다. 그는 늘 ‘무대 뒤에 서 있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낮췄다. 언제나 마오쩌둥보다 한 걸음 뒤에 서있었다.

  살얼음판을 걷는 재벌그룹 2인자의 처신  
▲ 최지성 부회장이 지난해 12월27일 오후 일본에서 삼성그룹 전용기편으로 김포공항을 통해 귀국하는 이건희 회장을 안내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능력이 필요없는 것은 아니다. 1인자의 결정을 지원해야 하기 때문에 2인자는 항상 1인자보다 더 많이 생각하고 더 멀리 보고 더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 그러면서도 항상 조심해야 한다. 그 모든 공을 1인자에게 돌리는 '겸손한 용기'가 필요하다.

1인자는 자신을 넘어서려는 2인자를 용납하지 않는다. 철강왕 카네기의 묘비에 “여기 자신보다 더 나은 사람들을 고용할 줄 안 한 남자가 잠들다”고 써 있다. 하지만 그 전제는 역시 ‘절대복종’이다. 절대복종하지 않는 2인자를 품을 만큼 뛰어난 1인자는 그렇게 많지 않다.

한국의 20대 그룹에 현재 50여명의 회장과 부회장이 있다. 한 그룹당 2~3명의 회장과 부회장이 있는 셈이다. 그러나 오너 일가를 제외하고 그룹의 2인자라고 불릴만한 이는 그렇게 많지 않다.

유형도 여러 가지다. 오너를 묵묵히 보필하는 보좌형도 있고, 오랜 기간 재직하며 사업을 키우고 있는 전문경영인형도 있다. 또 오너를 대신해 대외할동에 주력하는 얼굴마담형도 있고, 경영승계를 안착하기 위한 후견인형도 있다.


삼성의 경우 최지성 부회장이 2인자로 꼽힌다. 그는 2012년부터 이학수 고문과 김순택 전 부회장이 맡았던 미래전략실장으로 재직하면서 2인자 역할을 하고 있다.

최 부회장은 오늘의 삼성전자를 만든 일등 공신으로 꼽힌다. 반도체 신화를 만들었고 TV를 세계 1위로 올려세웠으며 애니콜 신화로 휴대폰으로 삼성이 노키아를 추격하는데 발판을 다졌다. 세계 각지를 돌며 삼성의 디지털 제품을 팔았다고 해서 디지털 보부상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현장에서 발로 뛰는 업무 스타일이 그의 전매특허다.

최 부회장은 삼성에 입사한 뒤 그룹비서실 기획팀 과장으로
4년 동안 근무했다가 1993년에는 그룹비서실에 전략1팀장(이사)으로 복귀했2차례의 비서실 경력이 그가 2012년 미래전략실 부회장으로 그룹 2인자가 되는 데 큰 힘이 됐다.

최 부회장은 이재용 부회장의 가정교사로 불린다. 비서실 근무를 통해 이 부회장을 비롯한 오너 일가를 보좌했고 삼성전자에서도 이 부회장과 호흡을 맞춰왔기 때문이다.

최 부회장은 철저한 자기 관리로 유명하다. 게으름을 용납하지 않아 독일병정’ ‘최틀러라는 별명이 붙어있다. 강원도 삼척 출신으로 삼성그룹 2인자에 오른 것도 이런 자기관리 덕분이라고 주변에서는 평가한다. 서울고와 서울대 무역학과를 나왔지만 학연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는다.

최 부회장이 이재용 체제를 대비하기 위해 이 회장에 의해 낙점된 2인자인지, 혹은 이재용 체제로 넘어가는 과도기의 2인자인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LG그룹에서는 지금은 일선에서 한발 물러난 강유식 부회장이 최고의 2인자로 꼽혔다. IMF외환위기 시절부터 구본무 회장의 오른팔 역할을 해왔다. 반도체 빅딜, LG카드 사태, 지주회사 전환, GS그룹 분가 등 그룹의 굵직한 현안들을 깔끔하게 처리했다. 현재 LG경영개발원으로 소속을 옮겼다.

지금은 조준호 사장이 강 부회장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지만 강 부회장 같은 위상을 갖고 있지 못하다. 또 삼성처럼 강력한 권한을 행사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살얼음판을 걷는 재벌그룹 2인자의 처신  
▲ 김창근 SK그룹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이 지난 1월 16일 열린 2014년 신입사원과 대화에 참석해 질문에 대답하고 있다.

20대 그룹 가운데 총수의 경영공백을 맞은 SK그룹 한화그룹 CJ그룹에서는 2인자의 존재가 더욱 부각되고 있다. SK그룹은 김창근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 한화그룹에서는 김연배 한화투자증권 부회장, CJ그룹에서는 손경식 CJ 회장이 그 역할을 맡고 있다.

GS그룹의 서경석 부회장은 허창수 그룹회장이 전경련 회장을 겸하고 있어 그룹내 역할을 넓히고 있다. 서 부회장은 정통 재무관료 출신으로 1997년 LG투자신탁운용 대표이사에 오른 뒤 17년째 재직하고 있는 '최장수 CEO'다. 서 부회장은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로 어려웠던 LG종합금융을 회생시켰고, 합병 후 LG투자증권의 경영정상화를 추진했다. 그는 '턴어라운드' 전문가로 인정받고 있다.

핵심 계열사를 오랫동안 맡아 키우면서 부회장 자리에 올라 2인자에 가까운 역할을 하는 전문경영인도 많다.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 이인원 롯데쇼핑 부회장, 이종근 동부제철 부회장, 김윤 대림산업 부회장, 이석희 현대상선 부회장 등이 그렇다.

반면 구자영 SK이노베이션 부회장은 학자 출신으로 영입돼 탁월한 경영 성과를 보여 부회장 자리까지 올랐다. 구 부회장은 SK수펙스추구협의회 글로벌성장위원회 위원장도 맡고 있다.

리더십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 데이비드 히런과 워런 베니스는 2인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10가지를 조언했다.

▲ 너 자신을 알아야 한다.
▲ 리더를 알아야 한다.
▲ 큰 충돌을 피하라.
▲ 1인자에게 진실을 말하라.
▲ 1인자가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을 스스로 알아서 훌륭히 수행하라.
▲ 영혼을 팔거나 개인 생활을 망치지 말라.
▲ 따르기도 하고 이끌기도 해라.
▲ 제자리에 머무를 때를 알아야 한다.
▲ 물러날 때를 알아야 한다.
▲ 성공의 개념을 정립하라.

이 기준으로 재계의 2인자를 평가한다면 누가 최고의 2인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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