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축수산물에 한해 선물 상한비용을 현재 5만 원에서 10만 원으로 올리는 내용을 뼈대로 하는 김영란법(부정청탁및금품등수수의금지에관한법률) 시행령 개정안이 국민권익위원회 전원위원회에서 부결됐다.
애초 예상과 달리 시행령 개정안이 부결된 데는 제도가 시행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점, 농축수산업계만 제외해 주는 형평성 문제, 국회에 관련법안이 올라가 있는 점 등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국민권익위원회에서 시행령 개정안이 부결된 만큼 공은 국회로 넘어올 가능성이 크다.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는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김영란법 시행령 개정이 부결된 것은 이유있는 일”이라며 “김영란법이 시행된 지 1년밖에 안 된 상황에서 아직 후퇴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김영란법이 후퇴할 경우 앞으로 어떤 법이 시행돼도 약간의 논란만 있으면 후퇴하는 일이 반복될 수 있다”며 “현재 김영란법은 당분간 유지해 시행하고 어느 정도 시간을 거친 뒤 개선을 검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권익위원회는 27일 농축수산물의 경우 선물의 상한액을 현재 5만 원에서 10만 원으로 올리는 내용을 뼈대로 하는 김영란법 시행령의 일부 개정안을 전원위원회의 안건으로 올렸지만 표결에서 부결됐다.
안건이 전원위원회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참석자 절반이 넘는 표가 필요한데 27일 회의에서 전체위원 15명 중 12명이 참석해 찬성 6명, 반대 5명, 기권 1명으로 찬성표 하나가 부족했다.
현재 김영란법은 공직자 등이 받을 수 있는 식사, 선물, 경조사비의 상한액을 각각 3, 5, 10만 원으로 제한하고 있는데
문재인 정부는 농축수산업계의 요구를 반영해 농축수산물 선물의 경우 상한액을 10만 원으로 올리는 시행령 개정을 추진했다.
애초 시행령 개정안은 전원위원회를 통과할 것이라는 예측이 많았지만 위원들은 대다수 국민이 과연 법개정을 원하는지와 관련한 의문을 제기하며 반대표를 던진 것으로 알려졌다.
시행령 개정안이 농축산업계에만 혜택을 줘 형평성 문제가 일어날 수 있다는 점도 부결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노 원내대표는 “시행령을 개정하더라도 농축수산물에만 예외를 둔다면 형평성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며 “농축수산물이 일부 포함되거나 가공된 선물의 기준 등 추가적으로 해석해야 할 일이 계속 생겨 법의 안정성에 의구심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외식업중앙회는 27일 권익위원회가 식사비용 상한액을 3만 원에서 5만 원으로 조정하는 내용을 시행령 개정안 안건에 포함하지 않은 것과 관련해 “정부와 권익위의 처사에 강한 유감을 표명한다”는 성명서를 내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가 무리하게 시행령 개정을 통해 김영란법을 손보려고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유의동 바른정당 수석대변인은 28일 논평에서 “김영란법 시행령 개정안 부결은 예상할 수 있었던 일”이라며 “
문재인 정부는 논의가 무르익지 않은 상황에서 관련 개정안이 국회에 상정되던 날 시행령을 바꿔 김영란법 개정을 밀어붙이려는 조급함을 보였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8월 권익위원회 업무보고에서 김영란법의 효과를 분석하고 평가해 대국민보고를 할 것을 지시했는데 이후 이낙연 국무총리, 김영춘 해양수산부 장관, 김영록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등은 농축수산업의 활성화를 위해 김영란법 개정을 주장해 왔다.
김영란법 시행령 개정안이 권익위원회 전원위원회에서 부결된 만큼 공은 국회로 넘어올 것으로 보인다.
박은정 국민권익위원장이 전원위원회를 소집할 권한을 지니고 있어 긴급 전원위원회를 열고 다시 표결을 진행할 수 있지만 표결을 바로 뒤집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만큼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국회는 김영란법 개정과 관련해 본격적으로 움직일 조짐을 보이고 있다.
김광림 자유한국당 정책위의장은 28일 원내대책회의에서 “
문재인 정부는 김영란법을 12월 말까지 고치겠다고 약속했지만 전부 부결됐다”며 “이제 국회에서 법 개정으로 나서야 할 때”라고 말했다.
그는 “자유한국당은 김영란법 개정과 관련해 8개 법안을 발의했고 현재 이완영 의원이 관련 TF(태스크포스)를 이끌고 있다”며 “법안통과를 서둘러 농축수산업계와 외식업계의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이학영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27일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굳이 시행령을 조정하는 것이 더 나은지 의구심이 든다”며 “국회에서 논의해 결정하는 것이 더 나은 방법일 것”이라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이한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