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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오갑 현대중공업 사장 |
권오갑 현대중공업 사장은 왜 전체 임원 사직서 제출이라는 초강수를 선택했을까?
권 사장은 현대중공업이 호황기를 누리면서 비대해진 몸집을 줄여야 한다고 판단해 전 임원 사직서 제출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이 과정에서 부장급을 임원으로 발탁하는 등 조직의 신진대사를 원활히 해야 정체된 현대중공업을 깨울 수 있다고 봤다는 것이다.
이런 모습을 보여줄 때 노조로부터 신뢰를 얻을 수 있다는 점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현대중공업은 13일 하루 동안 현대중공업 현대미포조선 현대삼호중공업 등 조선3사 임원 260명 전원에 대한 사표를 모두 제출받았다.
현대중공업은 임원들이 사표를 내면 개개인에 대한 재평가에 들어간다.
◆ 물갈이를 통한 조직의 신진대사 꾀해
현대중공업은 사표를 낸 임원 가운데 70%를 재신임을 통해 중용하고 30%는 자리에서 물러나게 한다는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중공업의 한 관계자는 “재신임을 하는 임원들에 대한 유일한 잣대는 새로운 조직에 필요한지 여부다”라고 말했다. 임원들이 물러난 빈 자리는 부장급을 발탁한다.
권 사장은 지난달 16일 취임사에서 "학연, 지연, 서열이 아닌 오직 일에 근거한 인사를 실시할 것"이라며 "무사안일과 상황논리만으로 회사를 다니는 사람이 있다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분명히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앞으로 인사는 이런 대목의 연장선에서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권 사장은 강력한 혁신책을 이미 예고했다. 특히 권 사장은 취임 이후 현대오일뱅크 임원들을 중심으로 ‘경영분석특별팀’을 구성해 경영진단을 할 때부터 인사태풍이 몰아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권 사장은 현대중공업의 그동안 인사가 학연이나 지연 등에 얽매여 조직 내부에 무사안일이 퍼져있다고 파악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경영분석특별팀을 구성하면서 현대중공업 인물을 쓰지 않고 권 사장이 현대오일뱅크 사장으로 있을 때 호흡을 맞췄던 조영철 전무(경영지원본부장)와 금석호 상무(인사지원부문장), 송명준 상무(기획부문장) 등에게 맡겼다.
현대중공업은 권 사장이 최길선 조선해양플랜트 부문 총괄회장이 대표이사로 선임되는 오는 31일 주주총회 전에 모든 인사를 마무리한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권 사장은 2010년 현대오일뱅크 초대사장으로 부임했을 때도 구조조정을 하지 않았다. 현대오일뱅크는 당시 현대중공업으로 인수돼 구조조정이 있을 것으로 예상됐으나 권 사장은 구조조정 대신 현대오일뱅크에 현대중공업이라는 정체성을 심어 조직문화의 기강을 다잡는 데 주력했다.
권 사장은 2012년 이란산 원유수입 중단으로 업계가 불황에 처해 있을 때도 구조조정을 실시하지 않았다. 권 사장은 당시 소비성 예산을 최대 20% 줄이고 직원이 평소보다 30분 일찍 출근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전사적인 비상대책 ‘20-30’을 시행해 위기를 돌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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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오갑 현대중공업 사장(왼쪽 흰색 우비)이 9월24일 울산 본사 해양사업부 출입문에서 비를 맞으며 출근하는 직원들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현대중공업> |
◆ 현대오일뱅크와 다른 현대중공업
그런 권 사장이 현대중공업에서 전체 임원들에게 사표제출이라는 초강수를 둔 것은 현대중공업이 대대적인 인적쇄신을 하지 않고 현재의 위기를 돌파하기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권 사장은 현대오일뱅크 사장 시절 조직 기강을 매우 중시했다"며 "당시에는 현대오일뱅크가 현대중공업그룹으로 넘어오는 등 조직이 불안정해 구성원의 기를 살려 조직 기강을 세우려고 했다면 현대중공업의 경우 오랜 호황을 경험하면서 너무 안이해졌다고 보고 임원 물갈이를 통해 조직의 기강을 세우려고 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권 사장으로서는 곧 임원진부터 강력한 구조조정을 통해 군살을 제거할 때 생산현장에서도 비용절감을 추진할 수 있는 명분을 얻을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권 사장은 주말에 혁신안을 내놓으면서 공정개선혁신팀을 가동해 전 사업본부를 대상으로 효율성을 점검하는 등 강도높은 비용절감책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현대중공업의 한 관계자는 "모든 사업을 놓고 원점에서 재검토해 줄일 수 있는 비용은 모두 줄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무엇보다 임원진부터 뼈를 깎는 고통을 감수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조직의 기강을 세우고 비용절감을 강력히 추진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특히 노사관계가 무엇보다 중요한 조선업에서 노조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도 임원부터 고통분담에 나서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으로 보인다.
권 사장은 사장에 취임해 비를 맞으며 출근길에 직원들에게 "힘을 합치자"고 호소하는 등 신뢰를 되찾기 위해 노력해왔다. 물론 노조가 파업에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한 노력이지만 이런 과정에서 회사에 대한 직원들의 불만도 충분히 파악했을 것으로 관측된다.
권 사장이 경영혁신안을 발표하면서 매월 말일에 전체 임원이 회사 출입문에서 퇴근하는 직원들에게 한 달 동안의 수고에 감사하는 인사를 하겠다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현대중공업 노조는 그동안 현대중공업이 호황일 때도 노조가 양보를 했는 데도 회사가 어려움에 처하자 노조의 고통만 요구하고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 "결연한 심정을 알아달라"
현대중공업 임원은 호황기를 거치면서 대폭 늘어났다.
현대중공업은 2012년까지만 해도 호황을 누렸다. 2010년 3조5630억 원의 영업이익을 올렸고 그 전후로도 꾸준히 2조 원 안팎의 영업이익을 냈다.
이런 호황을 거치면서 현대중공업은 2000년대 초 100여명 수준이었던 임원 수가 2011~2012년 말 230명대로 늘어났다. 조선업계의 불황이 지속되자 지난해 말 10% 가량을 줄였지만 그래도 임원 숫자가 여전히 200명을 웃돌고 있다.
권 사장의 강수는 일단 직원들의 마음을 어느 정도 움직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전체 임원 사표제출이 발표된 뒤 노조 내부에서 “회사가 아무리 미워도 우리가 몇 십 년을 몸담은 생활 터전이다”라거나 “비판은 좋지만 비난은 자제하자”는 말들이 나오고 있다.
현대중공업의 한 관계자는 “전 임원이 사직서를 내는 건 정상적인 게 아닌 만큼 결연한 심정을 알아 달라”고 호소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장윤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