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바가 반도체 매각과정에서 갈등을 겪고 있는 웨스턴디지털에게 향후 반도체기술과 생산시설 공유를 놓고 계속 협력할지 여부를 결정하라는 사실상 ‘마지막 통첩’을 보냈다.
낸드플래시 상위업체인 도시바와 웨스턴디지털의 협력관계가 파국을 맞을 경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기술우위를 지켜내며 시장지배력을 대폭 확대할 기회를 맞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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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티브 밀리건 웨스턴디지털 CEO(왼쪽)와 츠나카와 사토시 도시바 사장. |
하지만 관계가 지속될 경우 3D낸드분야에서 만만찮은 경쟁상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30일 외신을 종합하면 도시바와 웨스턴디지털 사이 협력관계 유지 여부가 중대한 기로에 서있다.
도시바는 세계 최초로 96단 3D낸드 기술개발을 완료했다고 밝혔다. 하반기부터 시제품을 고객사들에 공급하며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양산을 시작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삼성전자는 현재 64단 3D낸드를 주력으로 하며 96단 제품은 아직 개발하고 있는 단계다. SK하이닉스는 최근 72단 기술개발에 성공해 하반기부터 대량양산에 들어갈 예정을 세웠다.
3D낸드는 단수가 높아질수록 생산효율과 성능이 높아져 반도체기업들 사이 기술경쟁이 가장 치열한 분야로 꼽힌다. 도시바는 최근 이어진 경영난에도 기술개발에 앞서나가고 있다.
도시바는 3D낸드 개발 초기부터 연구와 생산시설 투자에 모두 협력해온 웨스턴디지털과 공동으로 96단 기술확보에 성과를 냈다. 두 회사의 합작법인을 통해 이뤄낸 결과다.
하지만 도시바가 올해 초부터 경영난으로 반도체사업 매각을 추진하자 웨스턴디지털이 합작법인 계약조건을 들어 반대하며 마찰이 빚어지고 있어 협력관계도 와해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웨스턴디지털은 도시바 반도체를 완전히 인수할 목표를 세우고 있지만 도시바와 일본정부가 모두 부정적인 반응을 내놓자 매각중단을 요청하는 법적대응에 나섰다. 도시바도 맞소송을 제기했다.
도시바는 96단 3D낸드 생산시설에 약 2조 원의 투자계획을 새로 내놓은 뒤 웨스턴디지털에 공동투자를 검토하라고 제안했다. 이후 웨스턴디지털 직원들이 3D낸드 기술 데이터베이스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차단하는 조치를 내렸다.
웨스턴디지털이 협력의사를 밝히지 않을 경우 사실상 볼모로 삼은 3D낸드 기술을 도시바가 독점할 가능성을 시사하며 매각반대를 중지하고 협업여부를 결정하라는 ‘최후통첩’을 보낸 셈이다.
반도체 전문매체 에이낸드테크는 “도시바와 웨스턴디지털의 협력관계가 계속될지 불투명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며 “불화가 지속될 경우 양쪽이 모두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진단했다.
도시바는 글로벌 낸드플래시 2위, 웨스턴디지털은 3위 업체로 강력한 시장지배력을 확보하고 있지만 기술개발에 서로 힘을 합치지 못하면 경쟁력이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
도시바의 경우 심각한 경영난으로 연구개발과 투자여력을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이고 웨스턴디지털은 도시바의 기술을 공유하지 못할 경우 3D낸드를 자체적으로 개발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반도체산업이 국가차원의 주요 경쟁력으로 떠오르고 있는 만큼 미국과 일본의 여론전도 치열하다.
블룸버그는 “일본정부가 도시바 반도체 인수전에 개입하는 것은 과거 일본 전자업계의 몰락을 되풀이하는 결과만을 낳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미국 상무부 역시 웨스턴디지털의 인수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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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기남 삼성전자 반도체총괄 사장(왼쪽)과 박성욱 SK하이닉스 부회장. |
반면 재팬타임스는 도시바와 일본정부가 외국기업에 반도체 기술력을 완전히 넘겨주지 않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보인 데 긍정적인 평가를 내놓았다.
도시바가 반도체사업을 계획대로 일본정부 주도 컨소시엄에 매각하고 웨스턴디지털과 협력관계도 지속하려는 목적을 이루기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도시바와 웨스턴디지털은 글로벌 하드디스크시장에서 합산점유율 60% 이상을 차지하며 강력한 서버용SSD 고객사기반도 확보하고 있다. 이를 통해 낸드플래시에서 시너지를 더욱 극대화했다.
하지만 협력무산으로 낸드플래시 기술경쟁력이 뒤처진다면 성장성이 높은 서버용SSD 시장진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반사이익을 입을 기회를 맞을 수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3D낸드 기술우위를 확보한 성과로 낸드플래시 점유율을 점차 끌어올리고 있다. 도시바와 웨스턴디지털이 96단 3D낸드를 더 앞서 상용화할 경우 타격이 불가피하다.
도시바는 반도체사업 매각결정을 미루고 웨스턴디지털의 인수제안도 검토하고 있다. 웨스턴디지털이 인수에 성공해 시너지가 더욱 강화될 경우 위협적인 기술경쟁력을 확보할 수도 있다.
또 웨스턴디지털이 SK하이닉스가 도시바 반도체 인수전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법적분쟁을 멈출 가능성도 내놓은 만큼 인수전 판도가 변하며 이른 시일 안에 극적인 화해가 이뤄질 공산도 있다.
에이낸드테크는 “예상과 달리 도시바와 웨스턴디지털은 분쟁을 겪는 가운데도 낸드플래시 기술개발에 뛰어난 성과를 냈다”며 “협력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에 나설 가능성도 충분하다”고 진단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