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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상헌 동서그룹 회장(왼쪽)과 김석수 동서식품 회장 |
동서식품은 커피믹스의 절대강자다.
동서식품의 ‘맥심 커피믹스’는 10년 넘게 시장점유율 80% 안팎을 유지하고 있다. 남양유업과 네슬레 등 기타 제조사들은 나머지 20%를 놓고 싸우는 형국이다.
세계 커피시장 1위 네슬레도 동서식품의 점유율을 건드리지 못했다. 남양유업이 식품첨가물 논란으로 노이즈 마케팅을 펼쳐도 동서식품의 점유율은 굳건했다.
1조3천억 원 커피믹스 시장의 80%를 맥심이 차지하고 있으니 동서식품은 커피믹스 시장에서만 1조원 가까운 매출을 올린다. 동서식품은 이에 힘입어 지난해 매출 1조5천억 원을 넘었다.
동서식품은 1976년 세계 최초로 '커피믹스'를 선보인 뒤 시장점유율의 등락은 있었지만 단 한 번도 1위를 놓친 적이 없다. 동서식품이 이렇게 독보적 1위를 유지하는 비결은 무엇일까?
◆ “한국인의 입맛에 맞는 커피” 34년째 판매 1위
동서식품은 1968년 설립돼 1970년 미국 크래프트사(당시 제너럴푸즈)와 커피제조 기술도입 계약을 체결했다. 그 계약의 결과 인스턴트커피 ‘멕스웰하우스’가 국내공장에서 생산돼 시장에 나왔다.
동서식품은 1974년 인스턴트 커피의 친구 ‘프리마’를 시중에 내놓은 데 이어 1976년 세계 최초로 커피믹스를 개발했다. 커피믹스는 커피알갱이, 프림, 설탕이 합쳐져 포장된 제품을 일컫는다.
맥심은 1980년 출시 이후 34년 동안 70% 이상의 점유율로 커피시장 1위를 고수해 왔다. 당시 가루형태의 인스턴트 커피와 달리 맥심은 알갱이 형태로 된 인스턴트 커피라는 점이 특징이었다.
동서식품은 맥심이 “동결건조 기술을 처음으로 적용해 커피 본연의 맛과 향을 살렸다”고 설명한다. 동결건조는 커피원두를 영하 40도 이하에서 농축과 분쇄공정을 거치고 승화작용을 이용해 건조하는 공법이다. 이 기술도 미국의 크래프트가 개발했고 동서식품은 기술을 도입했다.
뚜렷한 경쟁자가 없는 국내시장에서 동서식품은 홀로 인스턴트 커피시장을 독식했다. 그러다 1989년 다국적 식품회사 네슬레가 국내에 들어와 ‘테이스터스 초이스’를 내놓으면서 동서식품의 독주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네슬레는 한국 상륙 1년 만에 점유율 19%를 기록했다. 한때 시장점유율을 40%까지 끌어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네슬레는 1997년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크게 성장한 커피믹스시장에 대응하지 못했다. 동서식품은 이미 1976년 커피믹스를 개발해 시중에 내놓았다. 커피믹스는 출시 후 20년 동안 인기가 없다 외환위기 이후 연 20~30%씩 성장하기 시작했다.
한국네슬레는 2000년대 들어서야 뒤늦게 커피믹스 생산을 시작했다. 그 사이 동서식품은 커피믹스의 인기 덕분에 커피시장 점유율 60~70%선을 회복했다.
동서식품은 그뒤 2010년 남양유업이 커피믹스를 내놓고 식품첨가물 논란을 제기하며 거세게 공세를 펼칠 때에도 약간 주춤하기는 했지만 시장점유율 80% 안팎을 유지했다.
동서식품이 이렇게 커피믹스시장을 굳건히 장악할 수 있었던 데에 “한국인의 입맛에 맞는 커피”라는 점이 결정적으로 작용한다. 맥심의 여러 서브 브랜드 가운데 가장 인기가 많은 ‘맥심 모카골드’는 한국인들이 커피의 쓴 맛보다 부드럽고 깔끔한 맛과 향을 선호한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또 이전까지 커피믹스는 넓적한 사각형 모양의 포장에 담겨있었는데 맥심 모카골드는 1987년 국내 최초로 스틱형 커피믹스 형태로 출시됐다. 스틱형 구조 덕분에 믹스, 커피, 설탕 순서로 포장지 안에 들어가 소비자들이 설탕 양을 조절할 수 있게 됐다.
동서식품은 매년 100건 이상의 시장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그 결과를 분석해 맥심 모카골드는 4년마다 맛과 향, 패키지 디자인까지 업그레이드하는 대대적 변화가 이뤄진다.
동서식품 인천 부평공장 관계자는 “동서식품은 이탈리아 에스프레소 로스팅 공법을 접목해 15단계로 세심하게 원두를 가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같은 원두라 해도 산지와 품종에 따라 맛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애초에 원하는 품질의 원두만 구입하기 위해 무척 공을 들인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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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연아의 맥심 커피믹스 광고 |
◆ 슈퍼마켓까지 신경쓰는 동서식품
지난해 12월 경상남도 진해의 한 대형마트에서 동서식품 판촉사원과 남양유업 판촉사원이 폭행시비를 벌였다. 양쪽은 증정품을 제공하지 않기로 사전에 약속했으나 동서식품 판촉사원이 이를 지키지 않자 서로 머리채를 잡고 싸우다 경찰서에 신고됐다.
동서식품의 점유율이 80%가 넘는데도 점유율 12~13%의 남양유업을 이처럼 견제하는 이유는 동서식품의 태생적 한계 때문이다. 동서식품은 맥심 브랜드를 수출할 수 없다. 맥심이라는 브랜드 이름은 미국 크래프트 소유이고 동서식품은 맥심을 국내에서만 사용하도록 허락받았다.
동서식품 입장에서 수익이 나오는 곳이 국내시장뿐이니 점유율을 필사적으로 지키려고 할 수밖에 없다.
국내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커피믹스 업계는 전반적으로 할인이나 증정행사를 자주 하는 편이지만 동서식품은 그 횟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라며 “매주 빼놓지 않고 행사를 벌이는 업체는 동서식품뿐이었고 그 덕에 유일하게 매출이 신장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동서식품은 대형마트뿐 아니라 소매점에도 관심을 쏟는다. 특히 동네 슈퍼마켓에 신경을 많이 쓴다. 커피믹스 유통채널 가운데 슈퍼마켓이 차지하는 비중은 30% 수준으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판매처이기 때문이다.
남양유업은 2011년 동서식품이 불공정한 영업을 하고 있다며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하겠다고 밝혔다.
당시 남양유업 관계자는 “동서식품이 지방의 한 중소형마트에 남양유업의 커피믹스 제품을 받지 않으면 달마다 50만 원씩 현금을 주고 각종 판촉행사를 지원해주겠다고 제안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주장했다.
동서식품은 이를 부인했고 남양유업은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하지 않았다. 그러나 서울 강남구의 한 슈퍼마켓 주인은 “아직까지 동서식품의 동네 슈퍼마켓에 대한 입김은 강력하다”고 말했다.
◆ 동서식품 커피믹스, 앞으로도 1위 가능할까
커피시장이 다양화되며 최근 몇년 사이 새롭게 떠오르는 제품이 스틱 원두커피다. 이것은 믹스커피처럼 스틱에 1회분이 포장되어 있지만 설탕과 프림없이 원두만 들어있는 제품이다.
스틱형 원두커피시장은 2011년 500억 원 규모였으나 올해 1400억 원까지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1조3천억 원 규모의 커피믹스시장의 10분의 1수준이다.
전문가들은 커피믹스시장이 성장의 한계에 도달했지만 스틱형 원두커피시장은 앞으로 성장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커피업계 관계자는 “저렴한 가격에 프리미엄급의 커피를 마시고 싶어하는 수요가 계속 늘어남에 따라 스틱 원두커피시장은 앞으로 더욱 커질 것”이라며 “관련 기업들이 점유율 확대를 위해 더욱 공격적 마케팅을 이어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동서식품은 ‘카누’로 스틱 원두커피 시장에서도 점유율 80%를 기록하고 있다. 나머지 20%의 점유율을 두고 다른 제조사들이 경쟁하고 있는데 현재 롯데네슬레가 8.3%의 점유율로 2위고 남양유업은 7%대 점유율로 3위다.
지난 6월 한국네슬레와 롯데푸드가 합작해 ‘롯데네슬레’라는 합작회사를 만들어 낸 이후 네슬레는 롯데마트와 롯데슈퍼, 세븐일레븐 등 든든한 우군이 생기며 부진했던 판매에 날개를 달고 남양유업을 제쳐 2위가 됐다.
그러나 롯데네슬레 역시 동서식품 카누와 점유율 차이가 워낙 커서 순위를 뒤집기는 어려워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동서식품이 몇 년째 80%대의 점유율을 유지한 것을 보면 커피시장은 소비자들의 브랜드 충성도가 높은 시장”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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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형마트 커피코너에서 판촉사원이 커피를 권유하고 있다. |
◆ 동서식품의 오너일가 배당
동서식품은 ‘동서’와 미국 식품회사 크래프트가 50%씩 지분을 나눠 보유하고 있는 비상장사다.
동서식품은 지난 10년 동안 배당금으로만 4700억 원을 미국 크래프트에게 보냈다. 물론 상표권 사용에 따른 로얄티는 제외한 금액이다. 이를 놓고 보면 동서식품의 지분 50%를 보유하고 있는 동서도 1년에 평균 470억 원 정도를 배당금을 받는다는 얘기다.
동서도 배당이 높은 기업으로 잘 알려져 있다. 동서는 지난 1월 주주들에게 2013년사업연도 결산배당으로 모두 564억 원의 현금배당을 실시했다. 이는 2012년 470억 원보다 16% 늘어난 규모다.
이 배당의 거의 대부분은 오너 일가에게 돌아갔다. 동서는 김상헌 동서그룹 회장을 비롯한 친인척들로 구성된 19명의 특수관계자들이 68%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최대주주는 김상헌 회장(22.6%)이고, 2대주주는 김석수 회장(20.1%), 3대주주는 김상헌 회장의 장남 김종희씨(9.6%)다.
올해 초 김상헌 회장은 126억 원, 김석수 회장은 110억 원 등 오너 일가들은 모두 368억 원의 배당금을 받아갔다.
동서는 1995년 상장 이후 매년 빠짐없이 배당을 실시해왔다. 2010년 이후로 배당성향을 40%대로 끌어올려 한 해 평균 400억 원을 배당금으로 풀고 있다. 그런데 동서가 배당성향을 높이기 시작한 시기와 김상헌 회장의 장남 김종희씨의 지분이 급격히 늘어난 시점이 상당히 일치해 흥미롭다. [비즈니스포스트 김희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