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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에게 반기 든 경총이 봤으면 하는 영화 '10분'

김수정 기자 hallow21@businesspost.co.kr 2017-05-29 17: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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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90분짜리 장편 독립영화 ‘10분’을 봤다. 개봉된 지 3년이나 지난 영화인데 가슴이 참 먹먹해왔다.
 
비정규직으로 떠돌 수밖에 없는 20대 청년 취업준비생의 서글픈 자화상이 오롯이 담긴 영화다.

◆ 우리시대 비정규직 청년의 자화상

방송사 PD를 꿈꾸며 몇 년째 공채시험에 매달리던 20대 청년 강호찬은 한국콘텐츠센터에 6개월짜리 인턴으로 입사한다.

 
  문재인에게 반기 든 경총이 봤으면 하는 영화 '10분'  
▲ 영화 '10분'에서 주인공 강호찬은 공공기관 6개월짜리 비정규직 인턴이다.
곧 지방으로 이전할 공공기관이지만 미디어 관련 경력을 쌓고 가난한 집안형편에도 보탬이 될 것이란 생각에 잠시 꿈을 접고 현실과 타협하기로 한 것이다. 말 그대로 비정규직 인턴인데 월 급여는 120만 원 정도다.

‘윗분’들 앞에 프레젠테이션을 앞두고 자료준비에 밤샘근무를 하는 것은 물론 각종 서류복사와 창고정리, 일요일에는 부장이 좋아하는 주말등산까지 짐을 들고 동행해야 하는 생활이 이어진다.

유능함과 성실성을 인정받아 부장으로부터 정규직 전환 제의를 받는다.

방송사 교양PD로 돈보다 꿈을 이룰 수 있는 가치있는 일을 하고 싶었지만 명퇴하고 다리까지 불편한 아버지, 가장을 대신해 보험상품을 판매해 가난한 살림살이를 꾸려가는 어머니, 미대를 지망하지만 매달 학원비가 밀려 독촉을 받는 고3 동생을 보면 꿈만 꾸며 나아가기에 녹록치 않은 현실이 호찬 앞에 펼쳐져있다. 

그는 방송사 공채시험을 위해 시험준비 노트를 여자친구에게 모두 넘겨주고 꿈을 접는다. 안정적인 공공기관에 정규직 일자리를 얻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품고 공채시험에 응시한다.

부장의 제안을 받아 공채에 응했던 만큼 호찬은 정규직이 된 걸로 알고 첫 출근을 한다. 다리가 불편한 아버지에겐 지팡이를, 어머니에게는 챙 넓은 모자를 사서 선물하며 모처럼만에 ‘아들노릇’도 한다.

그러나 정규직이 됐다고 생각한 첫 출근일 그가 앉아야 할 자리를 차지한 건 경력도 없는 신입 여직원이었다. 원장 ‘백’으로 들어온 낙하산이 들어와 호찬의 일자리를 낚아채버린 것이다.

아들이 정규직이 되면 재직증명서를 떼서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전세금에 보태려던 아버지의 소박한 기대가 물거품이 된 것은 물론이다. 

영화는 공공기관 내 한 작은 조직 내에서 이뤄지는 비정규직 차별문제, 인사채용을 둘러싼 비리,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한 공직사회의 무사안일주의 등등 우리사회의 현실을 날 것 그대로 비춘다.

◆ 경총, 문재인 정부 일자리정책에 '맞짱' 뜨나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놓고 정부와 재계 사이 공방이 뜨겁다. 문재인 대통령이 일자리창출을 위해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 속도를 내면서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재계를 대표해 반기를 드는 모양새다.

경총은 29일 김영배 부회장 주재로 논의한 끝에 "정규직 전환과 관련한 우리의 주장은 대통령 및 정부 정책에 반기를 든 것이 아니라 전반적인 사회 분위기가 정규직 전환으로 가고 있는 데 문제를 제기한 것"이라고 뒷수습에 나섰다. 경총은 그러면서 "기존 입장을 바꾸지는 않을 것이며 이번 일에 대해서 별도의 후속 조치 등은 없을 것"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경총은 이에 앞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추진하는 새 정부 정책에 부정적인 의견을 보였다.

김영배 경총 부회장은 25일 경총포럼에서 "근본적인 원인에 대한 해결없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요구가 넘쳐나게 되면 산업현장의 갈등이 더욱 심화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문재인에게 반기 든 경총이 봤으면 하는 영화 '10분'  
▲ 문재인 대통령.
문 대통령은 “비정규직으로 사회적 양극화를 만든 주요 당사자 중 한 축으로 책임감을 갖고 진지한 성찰과 반성이 먼저 있어야 한다”고 전례없이 유감의 뜻을 나타냈다.

그러자 경총이 다시 “기존 입장을 바꾸지는 않을 것” 운운하면서 정규직 전환에 비판적 입장을 재확인했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일자리정책에 찬물을 끼얹은 것은 물론 대통령을 향해 ‘맞짱’을 뜬 셈이어서 일부 언론에서 ‘경총의 난’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우원식 원내대표는 29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경총이 새 정부의 일자리정책을 공개 비판한 것을 겨냥해 "경제대타협의 시작은 각종 특혜로 성장한 재벌 대기업의 사회적 고통분담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이렇듯 논란이 가열되고 있는 것은 일자리 문제를 놓고 정부와 재계의 입장 차이가 큰 때문만은 아닌 듯 보인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4대그룹을 중심으로 재벌개혁의 칼을 빼들겠다고 나선 데 대해 재계가 우회적으로 반기를 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같은 맥락에서 정부가 ‘기업 옥죄기’를 시작했다거나 ‘겁박’하고 있다는 식의 비판도 보수적이고 친기업적인 일부 언론들에서 쏟아져 나온다.

◆ 일자리창출이 사회적 고통분담이라는 착각

정규직 전환 문제를 둘러싼 논란을 놓고 한 가지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게 있다.

문 대통령이나 우 원내대표가 지적한 대로 재벌 대기업이, 그리고 이들을 대표해 목소리를 내온 경총이 사회적 양극화의 주범이란 지적에 동의한다.

최근 2만기업연구소가 5대그룹 가운데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SK, LG전자, 롯데쇼핑의 5개 대표기업을 분석한 결과 올해 1분기 매출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9%, 당기순이익은 39.6%나 늘었다. 같은 기간 이들 5개 대표기업이 고용한 무기계약직은 0.3%, 기간제계약직은 27.7% 줄어든 것으로 집계됐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29조 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냈는데도 직원을 3700명 가까이 줄였다. 그룹 전체로만 놓고 보면 지난해 1만2천여 명이 회사를 떠났다.
 
  문재인에게 반기 든 경총이 봤으면 하는 영화 '10분'  
▲ 박병원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기업의 최대 사회적 책무가 투자와 고용이란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데 이번 정규직 전환을 통한 일자리창출을 놓고 재벌 대기업의 사회적 고통분담이 요구된다는 시각은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리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문제가 기업들이 사회적 고통을 나누는 차원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최근 자본시장에 ‘착한 투자’란 화두가 등장했다. ‘윤리적’ 투자라고 표현되기도 하는데 정확히 말하면 사회책임투자를 일컫는 것으로 글로벌 자본시장에서 이미 대세로 자리잡은 것이다.

간단히 설명하면 기업의 의사결정에 주주(주로 기관투자자)를 통해 자금의 주인인 국민이나 고객에게 투명하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에 투자를 우선적으로 한다는 개념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글로벌에서는 이를 ‘윤리적’ 투자 대신 ‘지속가능한’ 투자란 용어로 쓴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것은 사회적 고통을 분담하는 식의 윤리의 문제가 아니라 지속적인 성장발전을 위해 필요불가결한 것이란 얘기다.

◆ 희망의 있고 없음의 차이가 기업의 지속성장을 가능케 한다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차별은 다 아는 얘기니 그렇다 치고 진짜 근본적인 차이는 뭘까? 경제가 아닌 인문학적 차원에서 보자면 ‘희망의 있고 없음’의 차이다.

그런데 이게 기업의 지속가능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 다시 영화 ‘10분’으로 돌아가 보자.

6개월짜리 시한부 호찬에게는 희망이 없다. 그런 그가 원래의 꿈을 포기하면서까지 정규직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한 것은 ‘남들도 다 그렇게 사는’ 삶이나마 현실에 발을 디딜 수 있으리란 희망 때문이다.
 
호찬이 정규직 일자리를 보장받자 가장 먼저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소비다. 오늘날의 자본주의가 더 이상 생산이 아닌 소비에 의해 유지된다는 사실은 설명할 필요도 없다.

정규직 전환은 기업들이 일방적으로 인력에 대한 투자만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예컨대 갤럭시S8을 누군가 산다고 치자. 24개월 할부로 ‘약속된 소비’를 할 수 있는 것도 다음달에 내 통장에 월급이 꼬박꼬박 들어오고 내년에 월급이 조금이라도 오를 수 있다는 기대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경총이 정말로 반성해야 한다면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이 시혜이자 고통분담이란 착각부터 벗어나야 한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은 단순히 일자리의 양적 창출만이 아닌 질적 전환의 문제다. 

우리 사회에 좋은 일자리가 늘어나면 기업의 지속성장에 도움이 되는 것이지 성장의 발목을 잡는 게 결코 아니란 얘기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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