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과거 D램의 성공전략을 본따 낸드플래시 분야에 대규모 선제투자를 계획하며 시장지배력을 강화하는 데 속도를 내고 있다. 점유율과 이익상승에 모두 큰 성과를 볼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낸드플래시업체들이 일제히 생산투자를 확대하고 있는데다 D램에 비해 경쟁자도 많은 만큼 공급과잉에 따른 업황악화가 일어나 장기적으로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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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오현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 |
시장조사기관 트레피스는 17일 “글로벌 반도체 수요에 순풍이 이어지며 삼성전자가 강력한 수혜를 보고 있다”며 “2019년까지 D램과 낸드플래시 가격 상승세가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트레피스는 삼성전자의 반도체 사업가치가 주가에서 약 40%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적에 기여하는 비중이 커지며 반도체사업의 지위도 절대적으로 높아진 것이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시장성장에 대응해 올해 24조5천억 원 정도의 시설투자를 계획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까지 최근 3년간 들이는 생산투자금액은 모두 52조 원 규모에 이른다.
과거 삼성전자는 D램 시장의 급성장기를 앞두고 대규모 선제투자를 집행해 시장지배력을 강화했다. 이런 성과로 현재 글로벌 D램 시장에서 50% 안팎의 점유율로 독주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대부분의 반도체 시설투자는 낸드플래시에 집중되고 있다. 과거 D램과 같은 선제적 대규모 투자로 낸드플래시에서도 이런 압도적인 시장지배력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으로 분석된다.
시장조사기관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낸드플래시 시장점유율은 지난해 37% 정도를 기록했다. 대규모 생산투자가 마무리되면 점유율을 대폭 끌어올릴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낸드플래시 시장상황을 볼 때 삼성전자가 D램과 같은 대규모 투자전략으로 온전한 성과를 보기는 쉽지 않을 수 있다는 전망도 고개를 들고 있다.
낸드플래시의 성장성에 주목한 경쟁 반도체기업들이 앞다퉈 사업진출을 노리고 있는데다 일제히 생산투자를 확대할 계획을 세우고 있어 훨씬 치열한 점유율 싸움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의 D램 경쟁사인 SK하이닉스와 미국 마이크론이 생산투자를 늘리는 데 이어 세계 최대 반도체기업인 인텔도 낸드플래시 사업진출을 노려 대규모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도시바와 웨스턴디지털도 반도체사업 매각을 놓고 사업차질을 빚고 있지만 아직 점유율이 각각 2, 3위로 굳건하다.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등에 업은 중국업체들도 시장진출에 속도를 내고 있다.
김영우 SK증권 연구원은 “글로벌 업체들의 낸드플래시 투자경쟁이 불붙는 상황에서 중국도 지금을 낸드플래시사업 육성에 적기로 판단하고 있다”며 “모든 업체들이 생산투자를 대폭 늘리는 추세가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중국 XMC반도체는 낸드플래시 투자에 정부지원금을 포함해 25조 원 가까운 금액을 확보했다. 인텔도 중국에 신규공장을 건설하며 현지정부 지원을 받아 공격적인 투자확대를 계획하고 있다.
김 연구원은 삼성전자가 내년부터 2020년까지 벌이는 낸드플래시 생산투자가 글로벌 주요 경쟁기업의 전체 투자금액 가운데 27% 정도의 비중에 그칠 것으로 추산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마이크론이 과점체제를 갖춘 D램시장과 달리 낸드플래시는 경쟁업체 수가 많아 일제히 생산투자를 벌일 경우 공급과잉이 발생할 가능성이 훨씬 높다.
수요가 공급량 증가에 미치지 못할 경우 가격하락이 불가피하고 업체들이 수익성보다 점유율 확보에 주력하며 저가에 낸드플래시를 대량으로 공급하는 ‘치킨게임’이 벌어질 가능성도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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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전자가 올해 가동을 앞둔 평택 신규 반도체공장단지. |
삼성전자는 지난해 D램시장에서 공급과잉이 벌어지며 반도체실적이 크게 부진했는데 낸드플래시에서 비슷한 상황이 펼쳐져 대규모 투자에도 효과를 보기 어려워질 수 있는 셈이다.
시장조사기관 가트너는 최근 이어진 가격상승으로 글로벌 스마트폰업체가 부담을 안아 메모리반도체 탑재량을 대폭 줄이며 업황악화가 예상보다 빨리 발생할 가능성도 내놓았다.
특히 낸드플래시 최대 수요처로 주목받는 서버분야에서 업체들이 가격부담을 안을 경우 낸드플래시 대신 가격이 저렴한 하드디스크를 적용할 수도 있다. D램과 달리 낸드플래시는 다른 제품으로 대체가 가능해 삼성전자의 투자성과가 불투명하다.
올해 삼성전자의 전체 영업이익에서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60%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의존이 점점 높아지는 상황에서 업황악화에 영향을 받을 경우 이전보다 타격이 더 커질 수 있다.
김 연구원은 “낸드플래시 가격이 기존 예상과 달리 약세로 접어들 수 있다는 우려가 계속 나오고 있다”며 “글로벌 업체의 거대한 투자 사이클이 지속되며 변동성이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