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바가 반도체사업 매각을 놓고 유력 인수후보이자 협력사인 미국 웨스턴디지털과 마찰을 빚고 있다. 양측의 대립이 법적분쟁까지 확대될 수 있다는 전망도 고개를 들고 있다.
SK하이닉스가 인수전에서 승기를 잡을 가능성이 가장 높은 후보로 떠오르게 됐지만 미국이 반도체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정부차원에서 직접 개입할 가능성이 마지막 변수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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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티브 멀리건 웨스턴디지털 CEO. |
니혼게이자이는 10일 “도시바가 웨스턴디지털에 반도체사업 매각에 개입하지 말라는 강력한 경고를 내밀었다”며 “향후 협력관계에도 마찰을 빚을 수 있다”고 보도했다.
웨스턴디지털은 최근 도시바가 웨스턴디지털의 동의 없이 반도체사업을 매각할 경우 합작생산법인 설립계약을 위반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반도체사업 매각에 제동을 걸었다.
웨스턴디지털도 인수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만큼 SK하이닉스와 대만 홍하이그룹 등 경쟁업체에 맞서 인수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강력한 승부수를 꺼낸 것으로 해석됐다.
하지만 도시바는 이런 내용을 부정하며 “웨스턴디지털이 반도체 매각절차에 방해공작을 멈추지 않을 경우 합작생산공장에 웨스턴디지털의 직원 출입을 금지하겠다”며 더 강력하게 맞섰다.
로이터에 따르면 도시바는 인수가격이 경쟁업체들과 비교해 낮다는 이유로 웨스턴디지털의 인수를 원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웨스턴디지털이 매각을 반대할 당시 외국 증권사들은 도시바가 법적분쟁이 벌어질 가능성을 안고 매각을 강행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심각한 경영난으로 자금확보가 시급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결국 도시바가 웨스턴디지털에 등을 돌리며 SK하이닉스의 인수 성공가능성은 더 높아지게 됐다. SK하이닉스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직접 나설 정도로 도시바 반도체 인수에 공을 들이고 있다.
웨스턴디지털이 도시바와 분쟁을 벌이며 낸드플래시사업에 차질을 빚을 경우 SK하이닉스는 시장지배력을 확대할 기회를 맞을 수도 있다. 웨스턴디지털이 도시바와 합작생산공장에서 대부분의 제품을 생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블룸버그는 “도시바는 반도체사업 매각에 웨스턴디지털과 협의하지 않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며 “높은 가격을 제시하는 것이 인수전 승리에 더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SK하이닉스는 인수전에서 대만 홍하이그룹과 미국 실버레이크-브로드컴 컨소시엄에 맞대결을 벌이고 있다. 이 가운데 유일하게 반도체사업에 경험이 많아 유력한 인수후보로 평가받고 있다.
대만 홍하이그룹은 인수가격으로 가장 높은 31조 원 정도를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일본정부가 중화권업체의 매각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여 가능성이 높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
향후 인수전 향방에 남은 최대 변수는 미국정부가 도시바 반도체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인수전에 직접 개입하며 실버레이크-브로드컴 컨소시엄을 적극적으로 지원할 가능성으로 꼽힌다.
실버레이크는 미국 기반의 사모펀드로 과거 컴퓨터기업 델을 인수한 뒤 서버전문업체로 키워낸 경험이 있다. 브로드컴은 미국 반도체기업으로 통신관련사업을 전문으로 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미국이 정보통신과 군사기술의 핵심으로 꼽히는 반도체산업 주도권을 되찾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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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태원 SK그룹 회장. |
트럼프 정부가 미국기업들의 도시바 반도체 인수에 직접 개입할 경우 막대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 로이터는 이미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도시바 반도체 매각과 관련한 논의를 진행했다고 보도했다.
궈타이밍 홍하이그룹 회장이 최근 백악관을 방문해 트럼프를 만나며 인수전에 애플과 아마존 등 여러 미국기업을 끌어들이고 있는 것도 미국정부의 도움을 얻으려는 적극적인 노력으로 해석된다.
SK하이닉스는 비밀유지협약 등을 이유로 구체적인 인수전략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외국언론들은 SK하이닉스가 일본 현지펀드와 컨소시엄을 구성해 일본정부의 마음을 돌릴 수 있다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도시바 반도체 매각의 본입찰이 19일 진행될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SK하이닉스가 인수전에서 어떤 전략을 내놓을지 업계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최근 컨퍼런스콜에서 “도시바 인수가 어떻게 진행될 지는 모르겠지만 결과와 상관없이 여러 계획을 세워두고 있어 어떤 경우에도 큰 변화는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