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이 삼성전자의 지주사 전환계획을 철회한 대신 삼성물산을 실질적 지주사로 세우는 지배구조 개편작업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향후 삼성전자 전문경영인으로 활동하며 능력을 인정받은 뒤 승계작업을 다시 추진할 것으로 예상됐다.
◆ 삼성물산이 지주사 역할 가능
이상헌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2일 “삼성전자가 지주사 전환을 철회한 것은 삼성그룹의 컨트롤타워 역할도 포기했다는 의미”라며 “삼성물산이 역할을 대신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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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
삼성전자가 기존 계획대로 지주회사와 사업회사로 인적분할되면 지주회사는 실질적으로 삼성 미래전략실을 대체할 수 있는 그룹 내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을 것으로 예상됐다.
삼성그룹의 계열사를 지배하고 관리할 수 있는 권한과 명분이 확실해져 그룹 차원의 사업전략 추진과 인수합병 등을 총괄하는 역할을 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전자 지주사의 지분율을 높이고 향후 삼성물산과 합병도 추진할 경우 자연스럽게 삼성물산이 지주사 역할을 하며 이 부회장의 경영승계도 마무리될 것으로 전망됐다.
하지만 이 부회장이 구속기소돼 경영복귀 시점이 불투명하고 삼성전자가 지주사 전환계획을 공식적으로 철회하며 삼성그룹은 새 지배구조 개편방안을 고심해야 하는 입장에 놓이게 됐다.
이 연구원은 삼성물산이 삼성그룹 계열사들의 지분을 확충하며 실질적 지주사 역할을 맡아 삼성전자를 제외한 지배구조 개편작업에 나설 가능성을 제기했다.
삼성물산은 삼성그룹 금융계열사를 지배하는 삼성생명 지분 19%를 보유하고 있다. 기타 제조계열사의 지분도 삼성전자 다음으로 많이 확보하고 있어 충분한 지배력을 갖출 수 있다.
앞으로 삼성전자의 지분을 늘려 지배력을 확보하는 것은 향후 삼성물산이 자회사인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성장 등으로 충분한 자금력을 확보했을 때 본격화될 수 있다. 기존 지배구조개편 시나리오와 순서와 방식이 다소 바뀌는 셈이다.
삼성물산이 이를 위해 대규모 자금확보가 불가피해진 만큼 자금조달을 위한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도 유력해지고 있다.
삼성SDS는 IT서비스와 물류사업의 인적분할계획을 미뤄놓고 있는데 다시 활용될 가능성이 있다. 삼성SDS가 삼성전자와 합병될 경우 삼성물산은 기존 삼성SDS 지분으로 삼성전자 지분을 확보할 수 있다.
김동양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삼성그룹은 향후 지배구조 관련 규제환경에 변화가 발생한다면 어떤 식으로든 지배구조개편을 재개할 여지가 있다”고 내다봤다.
◆ 삼성전자의 앞날은?
삼성물산이 실질적 지주사로 자리잡을 경우 삼성전자는 당분간 삼성그룹과 독립된 경영체제로 운영될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는 전체의 13%에 이르는 자사주를 모두 소각하기로 결정해 우호지분이 크게 줄어들고 외국인 주주들의 비중도 60%에 가깝게 높아지는 만큼 오너일가와 계열사의 지배력을 유지하기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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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오현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 |
결국 삼성전자는 주주들의 우호적 여론을 확보하기 위해 주주친화정책을 꾸준히 강화하며 이사회 중심의 경영을 자리잡도록 하는 변화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이 연구원은 “이 부회장이 오너로서 삼성전자를 경영하기 원했다면 삼성전자 지배력을 높이는 개편작업에 더 적극적으로 나섰을 것”이라며 “현재 체제를 유지하는 것은 전문경영인으로 활약하겠다는 의미”라고 분석했다.
이 부회장이 향후 삼성전자 등기이사로 경영에 복귀해 참여할 경우 구속수사 등의 여파로 잃은 신뢰를 회복할 경영능력을 증명하는 과제는 더욱 중요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 연구원은 “전문경영인은 철저하게 성장과 실적으로 능력을 평가받는 만큼 이 부회장도 예외는 아니다”며 “실적이 나쁘면 물러나는 것도 감수해야 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 말 국정조사 청문회에서도 “더 능력이 뛰어난 인물을 찾는다면 삼성그룹의 경영권을 전문경영인에 맡길 수 있다”고 밝혔다. 경영능력 증명을 놓고 배수진을 친 셈이다.
이 부회장의 경영복귀 여부와 시기가 모두 불투명한 상황에서 이런 관측이 시기상조라는 시각도 있다. 결국 1심 재판결과가 나오는 5월 말부터 향후 계획이 본격적으로 논의될 공산이 크다.
삼성물산이 삼성전자의 지배력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그룹 차원의 지배구조개편에서 삼성전자가 영영 제외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부회장이 경영능력을 증명해 충분히 주주의 신뢰를 얻을 경우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두고 다시 경영승계를 추진할 수도 있다.
이 연구원은 “삼성전자가 지주사전환 철회와 자사주 소각으로 주주가치를 극대화하는 선택에 나선 것은 당분간 경영역량 분산을 막고 우호적인 여론을 확보하는 효과를 줄 것”이라고 평가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