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바 반도체사업 인수전에서 맞붙은 기업들이 일본정부의 긍정적인 반응을 이끄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미국 웨스턴디지털은 도시바 회생자금 지원과 일본 생산공장 유지계획을 내밀었고 대만 홍하이그룹은 경영난에 빠진 샤프를 인수한 뒤 키워내 현지경제에 기여한 성과를 앞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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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4월25일 도시바 반도체사업 인수를 논의하기 위해 김포공항에서 일본으로 출국하고 있다. |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SK하이닉스의 도시바 반도체 인수를 위해 직접 나선 상황에서 도시바와 일본정부를 모두 설득할 만한 지원방안을 제시하는 것이 더욱 중요해졌다.
25일 니혼게이자이에 따르면 웨스턴디지털은 도시바의 경영난 탈출을 돕기 위해 긴급자금을 지원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채권자와 주주들의 반도체사업 매각압박을 완화하기 위한 조치다.
웨스턴디지털은 도시바와 반도체사업에서 오랜 협력관계를 강조하며 “주주들과 채권자, 임직원의 권익을 모두 보호할 수 있는 선에서 함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겠다”고 밝혔다.
반도체사업 지분을 완전히 인수해 경영권을 확보하는 방법 말고 다른 지원방안을 꾸준히 찾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웨스턴디지털은 일본 미에현의 낸드플래시 합작법인과 공장을 연구개발과 생산의 중심지로 삼고 도시바와 장기간 협력을 이어가겠다는 계획도 거듭 강조했다.
웨스턴디지털이 인수전략을 선회하며 태도를 바꾼 이유는 도시바 반도체사업 매각에 꾸준히 우려를 보이는 일본정부에 우호적인 반응을 이끌어내기 위한 전략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일본정부는 도시바 반도체사업을 해외기업이 인수할 경우 기술이 유출되거나 일본 내 연구개발 및 생산투자, 직원 고용이 줄어들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이 때문에 민관펀드인 산업혁신기구(INCJ)와 일본정책투자은행도 인수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웨스턴디지털은 합작법인 설립계약에 따라 도시바의 반도체사업 매각을 반대할 수 있는 권리도 무기로 내세우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도시바의 경영권과 반도체기술, 현지 생산시설을 모두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 만큼 인수전에서 더 유리한 입장에 놓일 수 있다.
하지만 니혼게이자이는 웨스턴디지털이 2015년 샌디스크를 20조 원 가까운 금액에 인수한 여파로 도시바가 경영난에서 탈출할 만큼의 충분한 자금을 지원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내다봤다.
대만 홍하이그룹은 일본정부가 가장 경계하는 인수후보로 꼽힌다. 중국에 대규모 생산공장을 세워 도시바의 반도체기술을 중국에 유출하거나 일본공장을 축소할 가능성이 제기되기 때문이다.
홍하이그룹은 이런 우려에 대응해 지난해 샤프 인수를 마무리한 뒤 성공적으로 실적반등을 이뤄내 일본 현지경제에 기여했다는 성과를 앞세우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에 따르면 샤프는 3월31일 마감된 지난 회계연도에 250억 엔의 순손실을 본 것으로 추정된다. 이전 회계연도의 2559억 엔에서 크게 축소되는 것이다.
홍하이그룹은 일본에 샤프의 올레드패널 생산공장 투자계획을 내놓고 기존 샤프 임직원 고용유지와 인력확대도 약속하는 등 샤프를 일본기업으로 유지하겠다는 목표를 꾸준히 강조하고 있다.
또 도시바 반도체사업 경영권 확보를 포기하고 샤프와 소프트뱅크 등 일본기업을 포함해 애플, 아마존 등 여러 글로벌 기업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지분을 나누는 계획도 검토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도시바 반도체 인수에 유력후보로 꼽혔지만 상황이 점차 변하며 복잡한 셈법에 놓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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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티브 멀리건 웨스턴디지털 CEO(왼쪽)와 궈타이밍 홍하이그룹 회장. |
일본정부는 SK하이닉스의 인수 역시 기술유출을 우려해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INCJ 외에는 SK하이닉스와 인수전에 협력하고 있는 현지기업도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SK하이닉스가 웨스턴디지털이나 홍하이그룹과 같이 도시바를 인수한 뒤 일본경제에 기여할 수 있는 생산투자와 고용확대계획 등을 충분히 내놓지 못할 경우 입장이 불리해질 수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24일 도시바 경영진 등 관계자를 만나기 위해 일본으로 출국했다. 도시바 측과 일본정부를 모두 설득할 만한 묘수를 꺼낼지 주목된다.
일본정부는 독점규제 등 다양한 이유를 들어 해외업체의 인수를 반대할 수 있다. 하지만 우호적인 입장에 놓인 기업이 도시바 반도체를 인수할 경우 민관펀드를 통해 적극적인 자금지원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최 회장이 “돈을 주고 사는 것 외에 여러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힌 만큼 웨스턴디지털과 같이 경영권 확보보다 지분참여로 자금을 지원하는 협업을 추진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웨스턴디지털과 공동으로 인수에 나설 가능성도 내놓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