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이 대우조선해양 사채권자들의 자율적인 채무조정을 위해 추가적인 희생을 감당할까?
정부의 대우조선해양 지원방안을 놓고 국민연금공단과 팽팽한 줄다리기가 시작된 상황에서 국민연금이 대주주의 추가적인 희생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31일 업계에 따르면 산업은행은 30일 국민연금을 만나 대우조선해양의 지원방안을 논의했지만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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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이 23일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본점에서 열린 대우조선 구조조정 추진방안 기자간담회에서 물을 마시고 있다. <뉴시스> |
국민연금은 첫 만남부터 대우조선해양의 분식회계를 언급하며 자료의 정확성과 객관성 등을 문제삼고 채무조정방안의 정당성과 당위성, 형평성 등에 강한 의문을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채권자들의 자율적인 채무조정이 절실한 상황에서 국민연금의 압박은 이동걸 회장에게 부담일 수밖에 없다.
국민연금은 2019년까지 만기가 돌아오는 대우조선해양의 회사채 1조3500억 원 가운데 3900억 원을 들고 있어 사실상 자율적 채무조정의 성패를 결정하는 열쇠를 쥐고 있다.
시중은행들이 애초 이번주까지 작성하려던 협약서를 다음주로 미룬 점도 이 회장에게 부담일 것으로 보인다.
시중은행들은 정부의 지원방안에 동의한다는 협약서를 이번주 안에 작성하려고 했지만 ‘국책은행 책임론’을 거론하며 다음주로 미뤘다.
은행들의 협약서를 앞세워 국민연금 등 사채권자들을 설득하려 했던 계획에 차질을 빚은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연금이 대주주의 추가적인 희생을 요구하며 공을 산업은행 쪽으로 넘길 가능성은 점점 커지고 있다.
임종룡 금융위원장,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 등 금융당국 수뇌부들은 국민연금을 향한 우회적 압박수위를 나날이 높이고 있다.
유 부총리는 31일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열린 제3기 중장기전략위원회 2차 회의를 마치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채권자들의 의사가 중요하지만 P플랜(사전회생계획제도)에 들어가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정부의 솔직한 입장”이라고 말했다.
유 부총리는 30일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도 “P플랜에 들어가면 손실이 더욱 커질 것인 만큼 국민연금이 잘 판단할 것”이라며 국민연금을 압박했다.
황 권한대행은 28일 국무회의에서 “대우조선해양의 추가지원은 불가피한 선택”이라며 “국민의 세금이 낭비되지 않도록 모든 이해관계자가 합리적인 고통분담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상황에서 자율적인 채무조정에 실패할 경우 국민연금이 모든 책임을 짊어질 공산이 큰 만큼 국민연금이 공을 산업은행에 넘길 가능성은 충분해 보인다.
국민연금이 대주주인 산업은행에 추가감자 등 추가적인 고통분담을 공식적으로 요구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 회장이 추가감자를 결정할 경우 국민연금 등 사채권자들과 시중은행들은 출자전환 이후 주식가치가 올라가는 효과에 따라 피해규모를 조금이나마 줄일 가능성이 커진다.
시중은행들도 27일 산업은행과 만난 자리에서 산업은행의 추가감자를 요구했지만 산업은행은 이미 지난해 대규모 감자 등을 통해 손실을 본 만큼 더 이상의 추가감자는 안 된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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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면욱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장. |
산업은행 관계자는 “이미 지난해 주식상각, 감자, 출자전환 등을 통해 대규모 손실을 봤다”며 “이번에도 출자전환과 신규자금 투입을 통해 대주주의 책임을 지는 만큼 추가감자는 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민연금이 공식적으로 산업은행 측에 공을 넘길 경우 이야기는 달라질 수 있다.
이 회장이 공을 받은 상태에서 대우조선해양이 P플랜에 들어갈 경우 산업은행 책임론이 더욱 불거질 가능성이 크다.
P플랜에 들어가면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등 국책은행의 피해규모가 가장 크게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도 이 회장에게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산업은행은 대우조선해양의 대주주이자 주채권은행, 수출입은행은 대우조선해양의 최대채권은행이다.
대우조선해양이 자율적인 채무조정에 성공할 경우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은 보유하고 있는 무담보채권 1조6천억 원을 출자전환한다. 그 가운데 산업은행이 3천억 원, 수출입은행이 1조3천억 원을 담당할 것으로 알려졌다.
산업은행의 출자전환 규모가 수출입은행의 33% 수준에 그치는 만큼 산업은행의 추가희생을 요구하는 이 회장을 향한 목소리는 앞으로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비즈니스포스트 이한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