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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
글로벌 5위에 걸맞는 현대차그룹의 위상을 갖출 것인가, 아니면 승자의 저주라는 덫에 갇힐 것인가?
정몽구 회장이 삼성동 한국전력 본사부지를 품에 안았다. 모두가 예상하지 못한 돈을 써냈다. 10조5500억 원이다.
정 회장은 이 곳에 현대차그룹의 상징이자 컨트롤타워가 될 글로벌비즈니스센터를 조성하려고 한다. 모두 20조 원이 투입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현대차그룹은 한전부지를 낙찰받고 “글로벌비즈니스센터는 100년 앞을 내다본 글로벌 컨트롤타워로 현대차그룹 미래의 상징이 될 것”이라며 “이를 통해 자동차산업과 국가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자동차산업 관련 외국인과 관광객을 적극 유치해 경제효과를 창출함으로써 국가 경제활성화에 기여하겠다”고 밝혔다.
현대차그룹은 글로벌비즈니스센터 건립을 통한 유무형의 가치를 고려하면 10조5500억 원이라는 땅값은 높은 게 아니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시장의 반응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 정몽구 회장이 무리수를 뒀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일부 인사들은 정 회장의 '황제경영'만이 가능한 비합리적 의사결정이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현대차그룹의 한전부지 인수 소식이 전해지자 하루 만에 8조5천억 원의 시가총액이 증발했다. 승자의 저주가 이미 시작됐다는 말까지 나돈다.
◆ 정몽구의 4대 숙원 해결을 위해
현대차그룹은 18일 한전 본사부지 입찰에서 10조5500억 원을 써내 삼성전자를 제치고 서울 강남의 노른자위 땅을 사들이는 데 성공했다.
현대차그룹은 이번 한전 본사부지 인수로 정몽구 회장의 숙원사업이 모두 해결됐다고 말한다.
정 회장은 글로벌 5위 진입, 현대가의 적통 계승, 고로제철소 준공, 통합사옥 건립을 4대 숙원으로 꼽았다는 것이다.
현대차그룹의 글로벌 5위는 이미 달성했고 이제 4위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또 현대건설을 인수해 현대가문의 적통도 되찾았다. 현대제철을 통해 쇳물부터 자동차까지 수직계열화를 완성했다.
이제 정 회장에게 마지막 남은 숙원이 통합사옥 건립이었는데 이번에 그 꿈을 마침내 이뤘다는 것이다.
통합사옥에 대한 정 회장의 꿈은 너무나 커서 뚝섬 프로젝트가 무산되자 정 회장은 수많은 담당임원에게 책임을 묻기도 했다.
현대차그룹은 애초 글로벌비즈니스센터를 서울 성동구 뚝섬 인근에 지을 계획이었다. 그러나 서울시가 도심과 부도심에만 50층 이상의 빌딩을 지을 수 있게 하는 규제안을 내놓으면서 뚝섬 글로벌비즈니스센터 건립 계획은 무산됐다.
서울에서 글로벌비즈니스센터를 지을 만한 터가 삼성동 한전부지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런 점도 정 회장이 한전 본사부지를 반드시 인수해야 한다는 의지를 불태우게 만든 것으로 보인다. 10조5500억 원이라는 뜻밖의 금액이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현대차그룹의 한전부지 인수의지가 얼마나 강한지 보여준 입찰가”라며 “그러나 좋은 물건을 제값에 주고 사는 것도 경영능력의 하나”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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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차그룹 뚝섬 글로벌비즈니스센터 조감도 |
◆ 현대차그룹의 한전 본사부지 가치 계산
그렇지만 10조 원이 넘는 금액은 무리하다는 말은 여전히 많다. 일부 전문가들은 정 회장의 뚝심을 넘어선 결정이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김기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정몽구 회장의 집착에 의한 결과라고 볼 수밖에 없다"며 "이런 결정이야말로 황제경영의 문제점을 다시한번 극명하게 드러낸 것"이라고 혹평했다.
하지만 현대차는 나름대로 계산한 것이라고 말한다. 현대차그룹은 어떤 계산으로 감정가의 3배, 공시지가의 7배가 되는 금액을 쓴 것일까?
현대차그룹은 한전부지에 통합사옥과 함께 숙박, 컨벤션, 관광, 쇼핑 시설 등을 갖춘 글벌비즈니스센터(GBC)를 짓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통합사옥 건립에 따른 경제적 효과를 현재가치로 환산하면 8조 원에 이를 것으로 현대차그룹은 본다.
서울에 위치한 현대차그룹 계열사 수는 30여개에 이르지만 현대차그룹이 거점을 삼고 있는 양재동 사옥에는 5개 사만 입주해 있다. 다른 계열사들은 외부건물을 임대해 사용하고 있어 임대료만 연간 2400억 원이 나간다.
통합사옥 건립을 통한 임대료 절감 효과뿐 아니라 다른 부대시설에서 벌어들이는 수익도 현대차그룹이 한전부지 가격을 책정하는 데 반영됐다.
현대차그룹은 각종 해외행사를 글로벌비즈니스센터에 유치함으로써 벌어들일 수 있는 수익이 2020년쯤이면 연간 1조2천억 원이 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의 자체 컨벤션 수요만 하더라도 상당한 수준이다. 그룹 주요계열사들이 지난해 해외에서 진행한 행사에 모인 인원 수는 모두 8만여 명에 이른다.
◆ 글로벌비즈니센터의 가치가 도대체 얼마이길래
현대차그룹이 한전부지 인수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수치로 환산되지 않는 무형가치와 시너지도 고려됐다.
현대차그룹이 한전부지에 건설할 계획인 글로벌비즈니스센터는 폭스바겐의 아우토슈타트를 벤치마킹한 것이다. 아우토슈타트는 독일 볼프스부르크에 위치한 폭스바겐그룹 본사로 출고센터, 박물관, 브랜드 전시관 등을 연계해 연간 250만 명이 찾는 세계적인 관광명소다.
현대차그룹은 글로벌비즈니스센터를 글로벌 톱5 완성차기업에 걸맞는 랜드마크 및 컨트롤타워로 조성하려고 한다.
한전부지가 위치한 강남 일대의 부동산 가격 상승률은 지난 10년 동안 평균 9%에 이르러 미래가치가 충분할 것으로 현대차그룹은 판단하고 있다.
일부 인사들은 현대차그룹이 한전 본사부지를 인수한 데 따른 세제혜택도 고려되지 않았겠느냐고 말한다. 사내유보금 과세를 담은 기업소득환류세제가 도입되면 세액공제 투자대상에 업무용 부동산도 포함될 것이 거의 확실시 된다.
그러나 현대차그룹은 기업소득환류세제가 도입되기 이전부터 한전부지 인수의사를 밝혔기 때문에 세제혜택은 고려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을 밝혔다.
재계 관계자는 “당기순이익에서 투자 또는 배당되지 않은 자금의 일부분에 대해 10~15%의 기업소득환류세가 과세될 것으로 보인다”며 “만일 업무용 부동산 투자도 투자에 해당된다면 그 절세규모도 무시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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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 2011년 4월1일 서울 남산 그랜드하얏트 호텔에서 열린 현대건설 사장 및 임원진 만찬에 참석하고 있다. <뉴시스> |
◆ 최대 20조 프로젝트, 30여개 계열사 분담
현대차그룹이 한전 본사부지 매입금액 외에 추가로 들어갈 비용을 합산하면 최대 20조 원이라는 막대한 돈이 들 것으로 전망된다.
현대차그룹은 한전부지 인수전에 현대차, 기아차, 현대모비스 등 계열사 3사가 컨소시엄을 구성하는 형태로 참여했다. 계열사 3사는 인수대금을 각각 5:3:2의 비율로 분담할 것으로 알려졌다.
올 상반기 기준으로 현대차는 17조6천억 원, 기아차는 5조7천억 원, 현대모비스는 6조1천억 원의 현금 및 현금성 자산과 단기금융상품을 보유하고 있다. 계열사 3사가 부지인수 대금을 치르는 데 어려움은 없어 보인다.
그러나 글로벌비즈니스센터를 완공하는 데까지 기부채납 비용과 개발비용 등 추가비용으로 최대 10조 원이 더 들어갈 것으로 업계는 추산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한전부지의 40%에 해당하는 가치를 서울시에 기부채납해야 한다. 기부채납은 땅이나 돈으로 내는 게 모두 가능하다. 현대차그룹은 당연히 돈으로 내겠다는 입장이다. 기부체납의 기준이 되는 땅값은 감정평가액이다. 한전이 입찰공고 때 제시한 감정가는 3조3346억 원이었다.
서울시와 현대차그룹은 각각 감정평가를 다시 한 뒤 양쪽의 수치를 산술평균해 기부채납의 기준이 될 감정가를 결정한다.
이 금액이 한전의 감정가와 큰 차이가 없다면 기부체납액은 1조3천억 원 정도일 것으로 예상된다. 또 기부체납은 면세대상이어서 서울시에 취득세를 납부할 때 10조5500억 원에서 기부체납액을 뺀 차액 기준으로 4% 세율을 적용한다. 현대차그룹이 낼 취득세는 대략 3700억 원 정도다.
여기에 개발비용과 각종 부대비용을 더하면 현대차그룹은 인수대금을 제외하고 최대 10조 원을 더 투자해야 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현대차그룹은 “부지 매입비용을 제외한 건립비 및 제반비용은 30여개 입주 예정 계열사가 8년 동안 순차적으로 분산해 투자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 하루에 시총 8조5천원 증발, 승자의 저주 전주곡인가
현대차그룹의 통큰 결정을 바라보는 시선은 기대보다 우려가 훨씬 강하다.
그룹의 상징이 되는 랜드마크이긴 하지만 땅 값으로만 10조 원이 넘는 돈을 쓴 데다 수익성 등도 불투명해 자칫 승자의 저주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박원갑 국민은행 수석부동산 전문위원은 “투자보다 실수요 개념으로 접근하다 보니 시장논리에 맞지 않는 거액의 금액을 베팅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그는 “입찰가를 4조1천억원 가량으로 예상했는데 예상보다 너무 높아 업계에서 다들 깜짝 놀라는 분위기”라며 “초고층 건물을 지어놓고 승자의 저주가 현실화되지 않을지 우려되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재계의 한 관계자도 “인수를 위한 과열경쟁으로 너무 많은 현금을 투입해 현대차의 경쟁력이 악화될까 염려된다”고 말했다.
김기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현대차와 기아차는 각종 조제감면제도에 따라 매년 약 1조 원의 세제감면을 받고 있다"며 "부동산 매입에 10조 원씩 쓰는 대기업에 더 이상 세제혜택을 줄 필요가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폭스바겐뿐 아니라 다른 글로벌 완성차기업들도 본사를 랜드마크로 활용하고 있지만 현대차그룹처럼 가장 번화한 도시에 그것도 가장 비싼 땅을 이용하는 경우는 드물다.
폭스바겐의 아우토슈타트가 위치한 볼프스부르크는 애초 폭스바겐의 공장이 위치한 공업도시였다가 아우토슈타트가 들어서면서 급성장한 도시다. BMW(독일 뮌헨) 메르세데츠-벤츠(독일 슈튜트가르트) 제네럴모터스(미국 디트로이트) 등도 모두 공업도시에 본사를 두고 있다.
시장의 우려는 컨소시엄을 구성한 계열사 3사의 주가에 뚜렷이 반영됐다.
현대차, 기아차, 현대모비스 주가는 이날 10시 한전부지 인수 소식이 전해진 뒤 급락하기 시작해 전일 대비 각각 9.2%, 7.8%, 7.9% 감소한 19만8천 원, 5만4400원, 25만7천 원에 장을 마감했다. 계열사 3사의 시가총액이 하루 만에 8조5천억 원 가량이 증발한 것이다.
서성문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당초 시장에서 예상했던 4~5조 원보다 훨씬 높아 단기간에 주가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장기적으로 봤을 때 부지매입에 따른 무형가치와 시너지가 부지매입에 따른 부정적 영향을 상쇄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