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의 지주사 전환과 삼성SDS의 인적분할 등 삼성그룹이 추진하고 있는 지배구조개편이 이재용 부회장의 구속의 여파로 중단상태가 장기화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조기대선 뒤 등장하는 새 정부가 경제민주화정책을 강화할 가능성이 높아 삼성그룹의 지주사체제 전환에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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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은 24일 정기주주총회에서 “지주사 전환을 검토하고 있지만 부정적 영향들이 있어 지금은 쉽지 않아 보인다”며 “다양한 측면을 검토한 뒤 결과를 밝히겠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11월 지주사 전환계획을 검토중이라고 처음으로 공식화했다. 지주회사와 사업회사로 분할한 뒤 삼성전자 지주사가 사업회사를 지배하는 구조가 유력하게 점쳐졌다.
장기적으로 삼성전자 지주회사와 삼성그룹 내 실질적 지주사인 삼성물산이 합병해 이재용 부회장의 삼성물산 지분을 통한 삼성전자 지분확보와 경영권 승계가 마무리될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권 부회장의 이날 발언으로 이런 계획 자체가 무산될 수도 있다는 관측이 고개를 들고 있다.
정유성 삼성SDS 사장도 이날 주총에서 “올해 안에 물류사업을 분할할 계획이 없다”고 못을 박았다. 삼성SDS는 물류사업과 IT서비스사업의 인적분할을 검토하고 있다.
이 부회장의 지분율이 높은 삼성SDS가 인적분할 뒤 삼성전자나 삼성물산에 합병되는 방식으로 경영권 승계에 활용될 것이라는 관측은 꾸준히 제기돼 왔다.
삼성전자와 삼성SDS가 일제히 지배구조개편을 당분간 실행하기 쉽지 않다고 밝힌 것은 사실상 삼성그룹차원의 대규모 지배구조개편 추진이 불투명해졌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주주총회에서 발표가 나온 뒤 삼성물산과 삼성SDS의 주가가 7% 이상 급락하면서 시장도 이런 의미로 받아들이는 것으로 보인다.
이 부회장이 경영권 승계에 도움을 받기 위해 박근혜 전 대통령과 논의하고 뇌물을 준 혐의로 구속돼 재판을 받는 상황에서 지배구조개편을 무리하게 추진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이다.
삼성그룹이 지배구조개편을 재개하더라도 시기는 이 부회장의 1심 재판결과가 나오는 5월 말 이후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유죄를 선고받을 경우 이마저도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삼성그룹의 지배구조개편은 조기대선 이후 새 정부가 등장할 경우 더욱 큰 장벽에 부딪힐 수도 있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는 재벌개혁을 주요 공약으로 앞세우며 금산분리와 지주사 요건 강화 등을 내걸었다.
안희정 충남도지사와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도 일제히 재벌개혁의 필요성에 목소리를 내고 있고 이재명 성남시장과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도 재벌기업의 지배구조 개선을 강조하고 있다.
조기대선으로 미뤄졌던 국회의 경제민주화법 도입 논의도 정권교체 뒤 다시 탄력을 받을 공산이 크다. 지금도 국회에 삼성그룹을 겨냥해 지주사 전환을 어렵게 하는 법안이 대거 발의돼있다.
그러나 삼성전자 주주들이 지배구조개편을 요구하고 있어 제한적으로 추진될 가능성도 남아있다.
삼성전자 대주주인 네덜란드 APG자산운용은 주총에서 “사업 외적 부분의 어려움에도 경영진이 지배구조 쇄신 노력을 중단하지 말고 추진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업계 관계자는 “이 부회장의 재판결과가 삼성그룹이 지배구조개편의 방향성을 결정하는 데 최대 관건이 될 것”이라며 “하지만 어느 경우에도 예정보다 시기가 늦춰지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