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을논란’이 정승인 코리아세븐 신임 대표이사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다.
정 대표이사는 지난달 정기인사를 통해 소진세 전임 대표이사 대신 코리아세븐의 진두지휘를 맡았다. 코리아세븐은 롯데그룹의 편의점 계열사다. 그런데 갑을논란을 잠재우기 위해 개정된 ‘가맹사업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이 지난 14일 시행됐음에도 현장의 불만은 좀체 가라앉지 않고 있다.
20일 전국편의점가맹점사업자단체협의회는 본사가 심야영업을 하지 않으려는 가맹점에 대해 지원금을 축소하고 심사도 매우 까다롭게 진행한다고 알렸다. 가맹점주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심야영업을 계속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는 하소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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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승인 코리아세븐 신임대표 |
코리아세븐의 경우 지난 19일부터 심야영업 중지 신청을 받고 있고 다른 편의점업체들은 이미 받고 있다. 그렇지만 신청 편의점 수는 소수에 불과하다. 업체 측은 이에 대해 심야영업 중단에 따른 세부기준을 확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편의점 가맹점주들은 “24시간 영업을 하지 않으면 매출이 줄기 때문에 본사에서 이를 경계하고 있다”고 항변했다. 국내 편의점 수는 2만5000곳 가량인데, BGF리테일(7940점) GS리테일(7700점) 코리아세븐(7280점) 순이다.
개정 가맹법은 6개월 동안 오전 1시부터 6시까지 매출이 영업비용보다 적다면 가맹점주들은 본사에 영업시간 단축을 요청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본사는 요청을 거부할 수 없다.
상생을 내세우며 선보인 새로운 가맹제도도 비판의 대상이다. 코리아세븐은 이익배분율을 65%에서 80%로 높이는 가맹제도를 내놓았다. 소 전임 대표이사가 물러나기 전에 내놓은 마지막 작품이다.
지난 1월 소 전임 대표이사는 가맹점 계약방식을 기본투자형과 공동투자형 두 가지로 운영한다고 밝혔다. 기본투자형은 가맹점주가 임차와 인테리어 비용을 투자한 뒤 매출이익금의 80%(24시간 운영기준)를 수익금으로 가져가는 방식이다.
가맹점주가 임차비용 중 절반가량만 투자하는 ‘공동투자형’은 점주 투자비가 늘어난다. 대신 기존 위탁형 가맹모델보다 수익률이 20% 향상된다. 가맹점주는 24시간 운영기준으로 60%를 가져간다. 소 전임 대표이사는 “가맹점주와의 상생을 최우선 경영방침으로 정하는 한편 편의점 운영구조를 혁신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가맹점주들은 상생과 여전히 거리가 멀다고 주장한다. 심야영업을 하지 않으면 이익배분율이 5% 포인트 떨어진다. 게다가 기존에 편의점을 운영하던 점주가 새로운 가맹제도로 바꾸려면 본사에 일정 금액을 지불하거나 이익배분율을 어느 정도 포기해야 한다. 한 편의점 가맹점주는 “새로운 가맹제도는 심야영업을 지속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유통업이 주력인 롯데그룹에게 갑을논란은 항상 큰 부담이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끊임없이 국회 국정감사 증인으로 출석을 요구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롯데그룹의 롯데슈퍼와 코리아세븐을 맡아 큰 성과를 낸 소 전임 대표이사도 이 갑을논란을 이기지 못해 결국 일선에서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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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진세 총괄사장 |
소 전임 대표이사는 지난 1월 정기인사에서 롯데슈퍼와 코리아세븐의 총괄사장을 맡게 됐다. 앞으로 코리아세븐은 정승인 대표이사가, 롯데슈퍼는 최춘석 대표이사가 담당한다. 소 전임 대표이사의 총괄사장 임명은 외형적으로는 승진이었으나 대표이사에서 물러난 점을 보면 사실상 일선후퇴였다. 소 사장은 대외업무만 맡는 것으로 정리됐다.
소 사장은 2006년 취임 후 강력한 추진력으로 롯데 계열사를 키웠다. 롯데슈퍼는 지난해 9월까지 매장이 354개로 늘었다. 소 사장 취임 당시 52개였던 것과 비교하면 6배 이상 증가한 것이다. 매출 역시 증가해 2006년 4,000억 원 수준에서 지난해 2조3,340억 원으로 6배 정도 늘었다.
코리아세븐의 성장도 대단했다. 소 사장은 2010년부터 코리아세븐의 대표이사를 겸했다. 2010년 2200여 개였던 코리아세븐의 매장 수는 지난해 11월까지 7,000여개로 3배 가까이 증가했다. 매출도 4배 규모로 늘었다. 2006년 6,800억 원의 매출을 올렸는데 지난해는 2조5,540억 원을 기록했다.
소 사장은 2012년 정기인사 때도 낙마설이 나돌았다. 대기업의 골목상권 진출 비난하는 목소리에 시달렸다. 유임에 성공했지만 이번에는 버티지 못했다. 편의점 청년 점주가 돌연사하고 불공정계약에 항의하며 자살하는 등 잇따른 사건이 소 사장을 궁지로 몰아넣었다.
이런 논란이 신 회장을 2012년에 이어 지난해에도 국정감사 증인 출석을 요구받도록 했고, 신 회장은 가까스로 증인 명단에서 제외됐지만 결국 그 불똥은 고스란히 소 사장에게 튄 꼴이 됐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최근 들어 유통업계 오너들이 여론의 지탄을 받는 상황이 자주 나오면서 관련 계열사 대표들이 파리 목숨 같다”고 전했다. 이마트 허인철 대표이사가 최근 물러난 것도 유통업체 대표이사들이 ‘파리 목숨’임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