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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13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퇴임식에서 다른 재판관들과 함께 웃으며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뉴시스> |
“우리가 사랑하는 민주주의, 그 요체는 자신의 생각과 다르더라도 다른 사람의 의견을 존중하는 데 있다고 믿습니다. 저는 이번 진통을 통해 우리 사회가 더욱 자유롭고 평등하며 더욱 성숙하게 거듭나리라고 확신합니다. 이제는 분열과 반목을 떨쳐내고 사랑과 포용으로 서로를 껴안고 화합하고 상생하길 간절히 바랍니다.”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13일 퇴임식에서 읽어내려간 A4용지 5장 분량의 퇴임사 중 일부분이다.
많은 국민들이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서 듣고 싶었던 메시지가 바로 이런 게 아니었을까.
이정미 권한대행과 박근혜 전 대통령은 헌정사상 첫 대통령 탄핵이라는 중차대한 국면에서 국민들로부터 가장 많은 주목을 받았다.
공교롭게도 두 사람은 하루 차이를 두고 현직에서 물러나게 됐는데 여러 가지 면에서 대조적인 모습을 보였다.
이 권한대행은 그동안 탄핵심판을 심리하느라 퇴임사를 준비할 시간조차 없어 퇴임식이 열린 이날 오전 11시 직전까지 퇴임사를 다듬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박 전 대통령 파면 선고를 두고 “참으로 고통스럽고 어려운 결정”이었다고 소회를 밝혔는데 퇴임사 곳곳에 이 권한대행이 심판과정에서 느꼈을 인간적인 고뇌가 배어 있었다. "고요하고 평화롭기만 해 보였던 그 자리가 실은 폭풍우 치는 바다의 한 가운데였다"고 한 대목에서는 그동안 지녔을 엄청난 부담감을 엿볼 수 있다.
이 권한대행은 퇴임사에서 중국 고전 ‘한비자’에 나오는 ‘법지위도전고이장리(法之爲道前苦而長利)’라는 소절을 인용했는데 ‘법의 도리는 처음에는 고통이 따르지만 나중에는 오래도록 이롭다’라는 뜻이다.
엄정한 법집행이 당사자들에게 단기적으로 고통을 줄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우리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이득이 된다는 이 권한대행의 법철학을 담은 것으로 보인다.
이날 퇴임식은 평소 인품처럼 검소하고 소박하게 진행돼 오전 11시에 시작해 모두 9분 만에 끝났다. 퇴임식장엔 남편과 아들, 딸도 보이지 않았다. 헌재 관계자는 “이 권한대행이 행사를 요란하게 하고 싶지 않다고 해 초청하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이 청와대를 떠나는 ‘마지막 가는 길’은 요란했다.
박 전 대통령이 12일 오후 7시가 넘어 청와대에서 퇴거해 수십대의 오토바이 차량과 함께 삼성동 사저로 향했을 때 그곳에는 이미 지지자 1천여 명과 취재진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지지자들은 태극기를 흔들며 ‘박근혜’‘대통령’을 연호하고 있었는데 일부 여성 지지자 중에서는 눈물을 흘리는 이들도 있었다.
박 전 대통령은 검은색 에쿠스 승용차에서 내리면서 지지자들을 향해 손을 흔들며 환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헌정사상 첫 탄핵된 대통령이란 불명예를 안고 청와대에서 사실상 ‘쫓겨난’ 어두운 그림자는 찾아볼 수 없었다.
박 전 대통령은 민경욱 자유한국당 의원이 대신 읽은 4줄짜리 입장문을 통해 “대통령으로서 소명을 마무리하지 못해 죄송스럽게 생각한다”며 “저를 믿고 성원해주신 국민여러분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 모든 결과에 대해서는 제가 안고 가겠다”며 “시간이 걸리겠지만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고 믿고 있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의 입에서 끝내 헌재 승복과 관련한 메시지는 나오지 않았다. 이 권한대행이 박 전 대통령을 향해 탄핵심판 선고에서 “일련의 언행을 보면 법 위배행위가 반복되지 않도록 할 헌법수호 의지가 드러나지 않는다”고 한 말이 정확히 적중한 셈이다.
박 전 대통령의 말처럼 검찰과 특검의 대통령 수사가 정식으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진실’은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 그래서 더더욱 ‘진실’이 밝혀지기를 기대한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재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