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이 주요 계열사를 중심으로 자율적인 독립경영 의지를 내보였지만 이사회 중심 투명경영이 안착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계열사별 의사결정에 힘이 실리려면 이사회 기능강화가 전제돼야 하는데 올해 주주총회 안건에서 눈에 띌만한 변화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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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 |
13일 금융감독원과 삼성그룹 등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삼성생명, 삼성물산이 24일 정기 주주총회를 개최한다.
그룹 컨트롤타워인 미래전략실이 해체된 뒤 전자와 금융, 실질적 지주사로서 역할이 커질 것으로 예상되는 3개 핵심 계열사들이다.
삼성전자는 이번 주총에서 재무제표와 이사 보수한도 승인 등 2가지 안건만을 올렸다.
이재용 부회장과 권오현 부회장, 윤부근 신종균 사장 등 사내이사 4명 체제를 유지한다는 뜻이다. 사외이사 관련 변동도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생명도 김창수 대표이사 사장의 재선임과 최신형 부사장의 신규 선임 안건만 상정됐다. 김창수 사장은 1월28일 임기가 만료됐다. 두 사람 관련 안건은 무난하게 통과될 것으로 예상돼 현 경영진 체제가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삼성물산도 최치훈 건설부문 사장, 김신 상사부문 사장, 김봉영 리조트부문 사장이 각각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3인 경영체제에 변화가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장달중 권재철 사외이사의 재선임 안건만 다뤄진다. 두 사람은 사외이사 임기가 8월에 만료되지만 이번 정기 주총에서 재선임 여부를 논의하기로 한 것이다.
삼성그룹 핵심 계열사들의 이번 정기 주총은 박근혜 게이트 관련 의혹으로 실질적 총수인 이재용 부회장이 구속된 뒤 처음 열리는 것이다.
삼성그룹은 오너일가의 첫 구속이란 사상 초유의 사태를 맞아 미래전략실 해체를 신호탄으로 경영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계열사별 자율적 독립경영 의지를 내보였다. 이번 주총은 이런 의지를 실천하는 시험대가 될 것으로 전망됐다.
하지만 현재까지 각 계열사들이 밝힌 안건만 놓고 보면 큰 변화가 일어나기 어려울 것으로 보여 쇄신의지를 실천하려는 속도가 더딘 것으로 평가된다.
이에 앞서 삼성그룹은 2월28일 미래전략실 커뮤니케이션팀 차원에서 사실상 마지막 입장자료를 내면서 쇄신계획으로 5가지를 제시했다.
미래전략실 해체 및 실장 최지성 부회장과 실차장 장충기 사장 및 모든 팀장 사임, 계열사의 경우 대표이사와 이사회 중심의 자율경영 강화와 그룹 사장단 회의 폐지, 대관업무 조직해체, 외부 출연금과 기부금의 경우 일정기준 이상은 이사회 또는 이사회 산하 위원회의 승인 후 집행, 박상진 승마협회장 사임 및 승마협회 파견 임직원 소속사 복귀와 박상진 삼성전자 사장의 사임 등이다.
이 가운데 미래전략실 해체와 대관업무 조직 해체, 박상진 사장 사임 등 3가지는 실현된 셈이다. 그러나 이사회 중심의 자율경영과 감시기능 등은 과제로 남아있다.
삼성그룹이 계열사별 이사회 중심의 경영을 하려면 사내외 이사진의 면면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나 기존 경영진이 맡고 있는 사내이사에 변화가 없는 것은 물론 사외이사의 교체나 영입 등도 아직 추진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실질적 지주사인 삼성물산은 합병과정에서 해외 및 국내 소액주주들의 거센 반발이 일어나자 주주 신뢰회복을 위해 사외이사 3명과 외부 전문가 3명 등 모두 6명으로 구성된 거버넌스위원회를 구성했다. 기업경영의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 출범한 것이지만 결국 지난해 최순실씨의 재단출연을 막아내지 못하며 제기능을 했는지 의심을 샀다.
삼성물산은 이번에 전성빈 서강대학교 경영학부 교수가 사외이사 재선임 대상에 포함되지 않으면서 사외이사 수가 합병 이후 처음으로 기존 6명에서 5명으로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전 교수는 삼성물산 합병 전인 2017년 8월부터 사외이사로 영입돼 통합 이후에는 이사회 감사위원장, 내부거래위원회와 CSR(주주소통)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8월 임기가 끝나는데 일신상의 이유로 자진사의를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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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치훈 삼성물산 사장. |
이사회 기능과 권한이 강화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신규 추가선임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사외이사 수가 오히려 줄게 되는 셈이다.
이번에 재선임 대상에 오른 장달중 교수는 외교부 정책 자문위원과 대통령 직속 통일준비위원회 위원을, 권철중 이사장은 청와대 노동비서관과 고용노동부 한국고용정보원 원장을 지낸 인사들이다.
대관업무에서 영향력은 클 수 있으나 이사회 중심의 경영을 이끄는 데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삼성전자는 외국인 주주비율이 50%가 넘어 올해 정기 주총에서 글로벌기업 CEO 출신 사외이사 1명 이상을 영입할 것으로 관측됐다.
외부주주가 추천한 독립적 사외이사를 받아들여 내부에서 견제와 감시기능이 작동돼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특히 글로벌 경쟁기업인 애플이나 구글 등 사외이사와 면면이 비교되며 삼성전자가 이사회 기능을 강화하려면 구성원을 대폭 교체하거나 보강해야 할 것으로 지적됐다.
13일 삼성전자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이사회는 사내이사 4명과 사외이사 5명으로 구성돼 있다. 사외이사들은 이인호(전 신한은행 은행장), 김한중(전 연세대학교 총장), 송광수(김앤장 법률사무소 고문), 이병기(서울대학교 전기정보공학부 교수), 박재완(성균관대학교 국정전문대학원 원장) 등이다.
이병기 교수를 제외하면 사외이사 대부분이 법조계와 학계, 고위공직자 출신으로 경영을 감시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말도 나온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수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