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중국 전자제품 제조사 럭스쉐어의 왕라이춘 CEO가 7월9일 홍콩거래소에서 열린 상장 기념식에서 징을 치고 있다. <연합뉴스> |
[비즈니스포스트] 중국 배터리와 반도체 장비 등 일명 ‘하드테크(하드웨어+테크)’ 기업 주가가 올해 상반기 대폭 상승한 것으로 분석된다.
중국 반도체 제조사 창신메모리(CXMT)와 로봇 업체 유니트리 등 유망 기업이 올해 연이어 상장을 준비해 중국 증시에서 투자 중심축이 하드테크로 이동할 가능성이 떠오른다.
◆ 해외 자금 중국 소비재주와 금융주에서 하드테크로 이동
13일(현지시각) 홍콩 매체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조사업체 초이스의 자료를 인용해 올해 중국 하드웨어 기술 기업에 해외 자본이 전례 없는 규모로 유입됐다고 보도했다.
초이스에 따르면 올해 2분기 말 기준 중국 본토-홍콩 교차거래를 통한 해외 투자자의 중국 주식 보유 잔고는 3조 1300억 위안(약 687조 원)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배터리 기업 CATL과 데이터 전송에 사용되는 광통신 부품업체 중지이노라이트, 반도체 장비 제조사 나우라테크놀로지 등이 외국인 비중이 가장 높은 종목 1~3위에 올랐다.
외국인 투자자의 비중이 가장 높은 기업 10곳 가운데 7곳이 하드테크 기업으로 집계됐다.
SCMP에 따르면 과거 해외 투자자는 중국 소비주와 금융주에 주로 관심을 보였다.
그러나 상하이와 선전증시 대형주로 구성된 CSI300 지수에서 올해 7월 기준 금융주 비중은 기술주에 밀려 2위로 내려앉았다. 이달 8일 기준 기술주 비중은 27%로 1위를 기록했다.
중국 소비재 대표 기업으로 꼽히는 주류 기업 귀주모태주(마오타이)의 주가 또한 올해 들어 지난 13일까지 15.1%가량 하락했다.
중국 증시에서 해외 투자를 비롯한 자금이 하드테크 기업에 몰리는 것이다.
골드만삭스는 13일자 보고서를 통해 하드테크 비중 확대 의견을 제시하며 “투자자들이 하드테크 기업을 선호하는 순환매가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 ▲ 제조업에 기반한 중국 하드테크 기업 다수가 올해 상장을 노리고 있다. <그래픽 챗GPT 제작> |
◆ AI 반도체 중심 하드테크 IPO 물결 본격화
이렇듯 하드테크 기업에 투자가 몰리는 양상은 올해 남은 기간 동안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반도체와 로봇 등 분야 주요 기업이 줄줄이 상장을 앞뒀기 때문이다.
중국 국영방송인 CGTN에 따르면 올해 중국 하드테크 기업들의 상장이 본격화되며 투자금 유입이 다시 기업 투자로 이어지는 선순환 기대감이 퍼지고 있다.
D램 제조사 창신메모리(CXMT)는 지난 5월27일 상하이증권거래소 상장 심사를 통과했다. 로이터에 따르면 CXMT는 오는 15일부터 수요 예측에 나선 뒤 같은 달 27일 상장할 예정이다.
낸드플래시 업체인 양쯔메모리(YMTC)도 지난 5월19일 증권감독관리위원회(CSRC)에 서류를 접수하고 상장 절차에 착수했다.
로봇 기업인 유니트리도 이달 2일 CSRC로부터 상하이 증시에 상장 승인을 받았다. 우주발사체 기업 랜드스페이스와 CAS스페이스 등도 연내 상장을 추진하고 있다.
로이터에 따르면 지난 6월26일 기준 상하이와 선전 증시에 기업공개(IPO)를 신청한 로봇과 반도체 등 중국 기술 기업은 약 50개로 집계됐다.
이들 기업이 조달하려는 투자금은 최소 1261억 위안(27조6800억 원)에 달하는데 외국인을 중심으로 투자금을 넣을 분위기가 형성된 모양새다.
투자 펀드 퍼스트시프론트펀드의 양더룽 선임 이코노미스트는 9일 관영매체 글로벌타임스를 통해 “반도체와 로봇 공학 등 여러 분야에서 중국이 이룬 성과가 국제 자본 유입을 이끌었다”고 분석했다.
| ▲ 코스피지수와 SK하이닉스 및 삼성전자 주가가 13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에 위치한 전광판에 표시돼 있다. 이날 코스피는 장중 8% 넘게 급락했다. <연합뉴스> |
◆ 미국·한국 AI 투자 부담 커질수록 중국 제조업 경쟁력 부각
중국 하드테크 기업을 대상으로 한 투자는 한국과 같은 다른 주식 시장의 상황과 비교돼 더욱 부각될 수 있다.
미국 기술 대기업(빅테크)의 대규모 AI 투자 축소에 따른 반도체 공급 과잉이나 수익성 우려로 관련 주가 변동성이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코스피는 올해 들어 13일까지 모두 7차례의 서킷브레이커가 발동됐다.
서킷브레이커는 주가 지수가 일정 수준 이상 급락할 때 시장 거래 전체를 일정 시간 동안 중단하는 제도다. 1998년 도입한 이래 13번 발동했는데 올해 절반 이상이 몰렸다.
월스트리트저널 계열 투자 전문지인 배런스는 “AI를 구동하는 데 필요한 인프라를 구축하려면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다”며 “이러한 지출은 관련 분야 투자자의 우려를 불러일으키기 시작했다”고 평가했다.
미국 기술주가 상대적으로 고평가 상태라는 지적도 중국 하드테크 기업으로 시선을 돌리게 만드는 요소로 꼽혔다.
투자전문지 야후파이낸스에 따르면 지난 6월10일 기준 버핏 지수는 1970년대 이래 가장 높은 232.5%까지 치솟았다.
버핏 지수는 미국의 전체 주식시장 시가총액을 미국의 연간 명목 국내총생산(GDP)으로 나눈 값이다. 주식 시장의 전체 가치가 미국 내 경제 생산 능력과 비교해 얼마나 과열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120%를 넘으면 증시가 고평가됐고, 150% 이상이면 과열된 것으로 여겨진다.
블룸버그는 8일자 기사를 통해 “중국 증시는 내수 부진과 반복되는 규제 리스크를 안고 있다”면서도 “적어도 현재 저평가돼 있다는 점은 안심할 만한 요소”라고 바라봤다.
결국 중국 증시가 한국이나 미국 증시보다 상대적으로 안정된 상황에서 배터리와 반도체 및 로봇 등 하드테크 기업을 중심으로 투자가 더 몰릴 가능성이 고개를 든다.
증권사 모간스탠리의 로라 왕 분석가는 SCMP를 통해 “중국 증시에 하방 위험은 줄고 주가 상승을 견인할 촉매 요인이 등장하고 있다”고 바라봤다. 이근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