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한숨이 나온다. 이재명 정부가 삼성그룹, SK그룹과 함께 발표한 '3대 메가 프로젝트'를 놓고 야권에서 나온 비판은 그야말로 참담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
3대 메가 프로젝트는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아 마련됐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삼성과 SK 두 기업집단이 서남권의 반도체를 비롯해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로봇을 비롯한 피지컬 AI 등에 총 1500조 원가량을 새로 투자하겠다는 내용이다.
▲ 이재명 대통령(가운데)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오른쪽),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지난 6월29일 청와대에서 열린 3대 메가프로젝트 국민보고회에서 기업 투자계획 발표 후 손을 잡고 있다. < 연합뉴스 >
이에 맞춰 정부는 전력과 용수를 포함해 인프라를 조성하고 세제와 재정 지원 등으로 기업 투자를 적극적으로 뒷받침하기로 했다. 투자 유인 및 전략적 좌표 제공이 정부의 역할인 셈이다.
하지만 이를 놓고 야권에선 "정부가 기업의 팔을 비틀었다" "여권 인사들이 호남에 땅 샀는지 조사해야 한다" "지역 차별이다" "지지율 올리기 정치쇼다" 등의 목소리가 잇달아 나왔다. 이런 말들은 자기 정파를 향한 선동에는 효과가 있을 지 모르나 일일이 논평할 가치는 없어 보인다.
3대 메가 프로젝트가 이런 정쟁이나 지역 이기주의에 따른 몽니에 발목 잡혀서는 안 된다. 3대 메가 프로젝트는 국가적 차원에서 3가지 큰 의미가 있다. 온힘을 모아 반드시 성공시켜야 하는 산업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첫째, 3대 메가 프로젝트는 지방 균형 발전에 있어 중요하다. 특히 기존에 소외됐던 충청과 호남권에 반도체 관련 투자가 이뤄지는 것은 수도권에 집중된 불균형을 해소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우리나라에 발생하는 사회적 문제점의 대부분 원인은 이른바 '서울공화국'에서 나온다. 전국의 모든 사람이 일자리를 찾아 서울과 수도권에만 몰리니 교육이 과열되고, 집값이 치솟고, 출산율이 떨어진다.
반대로 전국 지방자치단체 가운데 절반가량은 소멸위험지역으로 분류돼 있다. 이렇듯 한 곳에만 몰린 대한민국의 미래는 위험하다.
지방균형 발전은 과거 정책처럼 공공기관 몇 곳이 지역으로 내려간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다. 3대 메가 프로젝트를 통해 미래가 밝은 기업이 각 지방에 늘어나야 젊은이들이 몰리고 지방마다 활기가 돌 수 있다.
둘째, 3대 메가 프로젝트는 거의 20년 만에 나온 국가적 차원의 산업 대전략이라는 의미도 가진다. 특히 국가주의가 만연하는 세계 경제의 흐름에서 우리나라의 경쟁력을 높일 핵심 전략이기도 하다.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를 맞아 출범한 김대중 정부는 21세기 인터넷 시대를 맞아 초고속통신망 구축을 국가 차원에서 밀어붙였다. 이를 통해 정보기술(IT) 강국으로서 기반을 단단히 다졌다.
노무현 정부는 김대중 정부 때 마련된 초고속통신망 위에 디지털 산업과 전자정부, 융합경제 확장 전략을 펼쳤다. 이와 함께 신자유주의 시대에 지지층의 반대를 무릅쓰고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를 체결해 수출 국가로서 입지를 단단히 했다. 국가 차원의 경제 정책을 바탕으로 그 뒤 20년 가까이 먹고 살 토대가 마련됐다.
하지만 2008년 출범한 이명박 정부부터는 국가적 차원에서 나온 산업정책이 실종됐다. 이명박 정부는 홍수 예방을 내걸고 '4대강 사업'에 수십 조원을 쏟아부었지만 결과적으로 '세계 최고 수준의 자전거도로밖에 남지 않았다'는 자조만 남았다.
박근혜 정부 당시에는 '창조경제혁신센터'가 추진됐다. 주요 대기업이 전국 17개 창조경제혁신센터를 전담해 스타트업 지원, 투자 연결, 창업 보육을 펼친다는 구상이었다. 하지만 그야말로 허울뿐인 정책으로 아무런 경제적·사회적 효과가 없었다. 더구나 비선 실세가 관여했다는 의혹까지 제기되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는 북한과 평화 정책을 추진했고 코로나19 대응에 총력을 기울인 업적을 갖고 있다. 하지만 산업 정책 면에서는 이렇다고 할 게 없었다. 윤석열 정부는 기업 활성화를 위한 규제 완화를 내세웠으나 정부 주도의 산업 정책을 강화하는 세계적 흐름과 거꾸로 갔다는 평가가 많다. 더구나 외환위기에도 줄이지 않았던 연구개발(R&D) 예산을 삭감하며 미래를 대비할 씨앗도 먹어버렸다.
정리하면 2008년 이후 우리나라에선 미래 먹거리를 위한 구조 대전환 전략 차원의 산업 정책이 사실상 나오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AI를 시대를 맞아 3대 메가 프로젝트라는 맞춤형 산업 정책이 나온 것이다.
특히 자유무역 기조가 저물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촉발된 자국 중심적 국가주의 추세가 강해진 세계 경제 상황에서 3대 메가 프로젝트는 AI 시대에 한국의 미래 경쟁력을 좌우할 중요한 정책이라는 평가가 외신에서도 나온다.
블룸버그통신은 3대 메가프로젝트를 놓고 "AI 시대 생존·지배력 확보를 위한 전략적 접근"이라고 평가했고 프랑스24는 "한국이 AI·반도체 중심의 글로벌 경쟁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할 수 있다"고 바라봤다.
또 로이터는 "3대 메가 프로젝트를 통해 반도체 생산 능력 확충과 AI 데이터센터가 확대되면 한국은 장기적으로 글로벌 시장에서의 우위를 공고히 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보도했다.
▲ 이재명 대통령이 29일 청와대에서 열린 3대 메가프로젝트 국민보고회에서 기업 투자계획 발표 후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게 인사하고 있다. 왼쪽은 최태원 SK그룹 회장. <연합뉴스>
셋째, 3대 메가 프로젝트는 '탄소중립 디커플링'이라는 측면에서도 큰 의미가 있다. 탄소중립 디커플링은 경제성장을 지속하면서도 탄소배출이 감소하는 상태를 말한다. 성장 중심 경제를 유지하면서도 탄소 배출을 줄이는 구조 전환에서 3대 메가 프로젝트가 가지는 의미는 크다.
3대 메가 프로젝트 가운데 핵심은 800조 원을 들여 서남권에 반도체 클러스터를 조성하는 일이다. 이는 서남권에 풍부한 재생에너지를 바탕으로 한다. 반도체 생산에서 'RE100(재생에너지 100% 사용)'이 국제적 규범으로 자리 잡고 있다. 재생에너지가 풍부한 서남권에 반도체 공장을 지으면 RE100 대응에 유리하다.
삼성전자의 경우 북미, 중국 등 주요 해외 사업장에서는 이미 RE100을 달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국내는 갈길이 멀다. 3대 메가 프로젝트가 잘 진행된다면 빠르게 성장하면서도 RE100을 통해 탄소중립을 이뤄내는 디커플링으로 기후변화 시대에 한국형 녹색대전환(K-GX)에 큰 힘을 보탤 수 있다.
3대 메가 프로젝트가 계획대로 얼마나 많이, 빠르게 실행되는지에 따라 대한민국의 미래가 달라질 수 있다.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은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 "AI(인공지능)는 기술혁명이 아니라 생산 혁명"이라며 "AI 시대의 국력은 기술력이 아닌 생산체계를 조직하는 능력에서 결정된다"고 적었다.
인터넷 시대에 승자가 플랫폼을 가진 기업이었다면 AI 시대에는 생산 플랫폼을 갖춘 국가의 역할이 중요해졌다는 인식이다. 국가주의와 AI라는 구조 대전환의 시대에 맞는 적확한 경제정책 구상으로 여겨진다.
정부로서는 삼성그룹과 SK그룹 투자 지역에 용수는 충분한지, 인적 기반과 정주 여건 마련 계획은 꼼꼼한지, 업황 변화에 따른 투자 여건에 문제는 없을지, 천문학적 투자에 걸맞는 수요를 어떻게 확보할지 등 향후 나타날 문제점이나 과제를 앞으로 꼼꼼히 대비하고 점검하는 일이 중요해 보인다.
3대 메가 프로젝트는 이번 정부에서 당연히 차질 없이 추진돼야 한다. 설사 4년 뒤 정권이 교체된다고 해도 흔들리는 일은 절대 없었으면 좋겠다. 구조 대전환을 대비하는 일에는 여야가 없다. 박창욱 글로벌&기후대응부장 겸 건설&에너지부장(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