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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어록의 연금술사들] 한국미술재단 이사장 황의록, 기업은 상상력으로 진화한다

이재우 sinemakid222@gmail.com 2026-06-25 08: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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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어록의 연금술사들] 한국미술재단 이사장 황의록, 기업은 상상력으로 진화한다
▲ 공익법인 한국미술재단(KAF)을 이끌고 있는 황의록 이사장(아주대 경영학부 명예교수). 그는 아주대 교수 재직 시절 한국소비자학회 회장을 맡는 등 마케팅과 유통 분야의 저명한 경영학자였다. <이재우>
[비즈니스포스트] 산업 간의 벽 경계가 흐려지고 허물어지는 ‘빅 블러(Big Blur)’ 시대. 이 거대한 격변을 일찍이 꿰뚫어 본 거장이 있었다. 현대 경영학의 아버지 피터 드러커(1909~2005)다.

드러커는 생전에 지독한 일본화 수집가였다. 1959년 일본을 처음 방문하면서 수묵화와 선화(禪畵)를 중심으로 작품을 수집했고, 개인 별장에 컬렉션까지 갖출 정도였다. 이 컬렉션은 드러커 사후 일본의 한 시립미술관에 기탁되었다.

드러커는 왜 그토록 일본화에 빠졌을까? 그의 예술 컬렉션과 경영 철학의 유기적 관계를 분석한 논문을 보면, 드러커는 서구의 분석적·이성적 경영학의 한계를 느낄 때마다 일본 수묵화를 보며 정신적 균형을 잡았다고 한다. 드러커는 예술로서의 경영(Management as an Art)을 주창했다. 

“경영은 기술적 프레임이나 데이터에 갇혀서는 안 되며, 인간의 상상력과 지각을 일깨우는 예술과 같아야 한다.”

드러커는 실제로 자신의 일본화 수집을 돌아보며 “그림이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을 바로 잡아주었다”고 회고했다. 드러커는 단순한 취미를 넘어 예술에서 경영의 본질을 보았던 것이다. 

흥미롭게도 필자가 최근 만난 한 노교수 역시, 거장 드러커의 직관을 증명해 내고 있었다. 아주대 경영학부 명예교수로, 공익법인 한국미술재단(KAF)을 이끌고 있는 황의록(78) 이사장이다. 

그는 아주대 교수 재직 시절 한국소비자학회 회장, 한국마케팅학회 부회장을 맡는 등 마케팅과 유통 분야의 저명한 경영학자였다. 매주 하루는 산업 현장으로 출근하며 국내 유명 기업에 경영자문을 했다. 

성장의 한계에 부딪힌 기업들엔 미래의 그림을, 위기에 직면한 기업엔 시장 돌파구를 제시하던 날카로운 전략가였다. 평생 시장을 연구하던 경영학자는 은퇴 후 화가들의 후원자가 되었다. 그 자체가 하나의 세렌디피티(Serendipity)였다. 

2015년 한국미술재단(한국화가협동조합으로 출범)을 만들어 미술작가들을 도우며 대중과의 거리를 좁히고 있다. 그런 재단은 작가 지원과 더불어 기업들이 예술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도록 지원하고 있다.
 
[경영어록의 연금술사들] 한국미술재단 이사장 황의록, 기업은 상상력으로 진화한다
▲ 한국미술재단은 ‘그림 한 점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신념으로 2015년 한국화가협동조합으로 출범했다. <이재우>
◆ 숫자의 감옥을 깨는 ‘예술적 상상력’

황 이사장은 경계를 깨부수고 싶은 기업인들에게 숫자의 감옥에서 벗어나 예술의 공간에서 경영의 다음 페이지를 읽어내라고 권한다. 

조직이 같은 옷을 입고, 같은 생각을 하면 조직의 상상력은 거세되고 만다. 그 결과 모든 기업의 제품과 서비스가 비슷해지는 ‘평균의 함정’에 빠지고 만다. 

황 이사장은 단언한다. 기업의 초격차 경쟁력은 결국 상상력에서 나온다고. 기업이 상상력을 잃는 순간 미래도 잃는다고. 

실제로 오늘날 가장 혁신적인 기업으로 꼽히는 애플은 기술과 인문학의 교차점에 서겠다는 철학을 일관되게 유지해 왔다. 황 이사장이 말하는 ‘예술적 상상력’이 더 이상 낭만이 아닌 경쟁력으로 받아들여지는 이유다.

황 이사장이 추구하는 ‘미술경영’은 단순히 기업의 복도나 사무실에 그림 몇 점을 걸어두는 인테리어 차원이 아니다. ‘기업이 예술을 후원해야 한다’는 식의 흔한 메세나(Mecenat) 논리도 아니다.

숫자가 가득한 재무제표와 색채가 넘실거리는 캔버스, 전혀 다른 우주처럼 보이는 이 두 세계가 만나는 접점이 바로 ‘혁신’이라는 것이다. 

황 이사장이 강단을 떠나 전혀 다른 미술경영의 길로 들어선 건 왜일까? ‘그림 한 점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신념 때문이다. 경영학자로서 그는 예술이 가진 ‘임계점 돌파의 힘’을 믿는다.

◆ 압도적 1승을 부르는 ‘문턱의 법칙’

‘100전 101승 시장지배전략’. 황 이사장이 교수 시절 집필한 책 제목이다. 제목을 곱씹어볼수록 경영학적 함의가 남다르다. 우리가 익숙한 표현은 백 번 싸워 백 번 다 이긴다는 백전백승이지만, 황 이사장은 거기에 ‘1승’을 더 얹었다. 

이 마지막 1승의 영역은 경쟁자가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할 만큼 압도적인 차이를 만들어내어, 결국 경쟁 자체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독점적 지위를 뜻한다.

그 압도적인 차이를 이끌어내기 위해 황 이사장이 제시한 것이 ‘문턱(Threshold)의 법칙’이다. 이를테면 물레방아를 돌리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물의 양, 즉 임계점이 필요하다는 논리다.

경영도 마찬가지다. 문턱을 넘지 못하는 애매한 투자나 자극은 시장이 변화를 감지조차 못 하기에, 결국 흔적도 없이 증발하고 만다.

평생 시장의 법칙을 강의했던 마케팅학자다. 그랬던 황 이사장은 정년퇴임 후 “3년 안에 후회 없이 망해보자”며 사재를 아낌없이 내놓았다. 스스로 ‘임계점 돌파’를 시도한 것이다.

이 과감한 투자는 신뢰라는 촉매가 되어 후원자들을 모았다. 그게 원동력이 되어 한국미술재단이라는 물레방아는 비로소 힘차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의 지원 방식 역시 ‘선택과 집중’이라는 경영학적 본질에 충실했다. 소속 작가를 선발할 때는 높은 문턱을 뒀다. 이름과 배경을 지운 블라인드 심사, 작업실 현장 실사, 동료 평판 검증 등 무려 4단계의 엄격한 검증을 거치게 했다.

그러나 이 문턱을 통과한 작가들에게는 파격적인 혜택이 주어졌다. 대관료 없는 무료 전시는 물론, 해외 미술계 탐방 경비 전액을 지원했다.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대원칙 아래, 작가가 오직 창작에만 몰입하여 예술적 임계점을 뚫어낼 수 있도록 확실한 ‘물의 양’을 채워준 것이다.

재단은 여기에 머물지 않고 ‘학교 안 작은 미술관’ 프로젝트로 영역을 넓혔다. 매년 15개의 초등학교에 소속 작가들의 작품을 기증하여 미술관을 만들어 주고 있다. 아이들에게 예술과 호흡하며 감성과 상상력을 키워주기 위한 취지다.

황의록 이사장은 그렇게 다듬어진 작가들의 치열한 창작 과정이 이제는 기업 경영의 최전선에 활용되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경영어록의 연금술사들] 한국미술재단 이사장 황의록, 기업은 상상력으로 진화한다
▲ 한국미술재단의 사회 공헌 프로젝트 중 하나가 ‘학교 안 작은 미술관’ 만들기다. 재단 복도에 미술관을 기증한 초등학교 이름들이 붙어 있다. <이재우>
◆ 빅 블러 시대 생존법, 비즈니스스쿨에서 아트스쿨로

다시 ‘빅 블러(Big Blur)’다. 이 용어를 처음 제시한 비즈니스 전략가 스탠 데이비스가 내놓은 생존 해법 역시 역설적이게도 ‘예술’이었다. 그는 저서 ‘예술가처럼 일하라(밀리언하우스)’를 통해 일찌감치 핵심을 찔렀다.

“당신의 일터에 예술의 방식을 끌어들여라. 앞으로 예술적 경영이 근본적인 비즈니스 개념이 될 것이다.”

이제 기업들이 미래의 핵심 인재들을 비즈니스스쿨이 아닌 아트스쿨로 보내는 것 역시, 경계가 사라진 시대가 낳은 필연적인 흐름이다.

수십 년간 시장의 생존 해법을 제시해 온 황의록 이사장. 그는 격변의 파도를 마주한 기업인들을 향해 이렇게 힘주어 말한다.

“당장 눈앞에 드러나는 ‘보이는 경영’만으로는 파고를 넘을 수 없습니다. 정작 위기를 돌파하는 힘은 눈에 보이지 않는 상상력을 경영에 접목하는 데서 나옵니다.”

그렇다. 결국 기업의 미래를 결정하는 것은 자본의 크기가 아니라 상상력의 깊이다. 
이재우 경영어록서 ‘일언천금’ 저자
 
이재우는 일본 경제와 기업인들 스토리를 오랫동안 탐구해왔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열성팬으로 '원령공주의 섬' 야쿠시마 사진전을 열기도 했다. 부캐로 산과 역사에 대한 글도 쓰고 있다. 글로벌 경영인들의 어록을 모은 '일언천금'의 저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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