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원석 기자 stoneh@businesspost.co.kr2026-05-06 15:3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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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포스트] 국제통화기금(IMF) 재정모니터를 둘러싸고 정부가 내세운 ‘성장을 통한 재정 안정’ 전략이 시험대에 오르고 있다.
정부는 한국의 낮은 부채 수준과 성장 효과를 근거로 “재정 여력이 충분하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IMF는 글로벌 부채 증가와 고금리·고령화에 따른 중장기 재정 부담 확대 가능성을 함께 지적하고 있어 성장률이 실제로 부채 증가 속도를 상쇄할 수 있을지가 핵심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3일(현지시각) 우즈베키스탄 사마라칸트 실크로드호텔에서 열린 '아세안+3 재정정책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재정경제부>
6일 정부 안팎 움직임을 종합하면 최근 IMF가 발표한 ‘재정모니터’ 보고서 내 동일한 수치의 해석을 두고 ‘여력’과 ‘경고’가 동시에 제기되면서 재정정책 방향을 둘러싼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전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엑스(X, 옛 트위터)에 나라살림연구소 분석을 인용하며 “시도 때도 없이 긴축을 주장하는 시각에 동의하기 어렵다”는 취지의 글을 올렸다.
앞서 나라살림연구소는 4일 지난달 말 IMF가 공개한 ‘재정모니터’ 보고서 분석을 통해 “2026년 한국의 총부채비율은 54.4%로 G20 선진국 평균(118.9%)보다 크게 낮다”며 “국채를 통해 조달한 재원이 경제성장률과 생산성을 높이는 투자로 이어진다면 국가부채 비율은 오히려 안정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도 5일 페이스북을 통해 “정부 부채와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좌우하는 핵심은 경제성장”이라며 적극적 재정 운용 기조를 분명히 했다. 구 부총리는 IMF 재정모니터 보고서를 근거로 한국의 정부부채 비율이 2025년 52.3%에서 2031년 63.1%로 상승할 것으로 전망하면서도, 여전히 선진국 평균보다 크게 낮은 수준이라고 짚었다.
순부채 기준으로는 한국의 재정 여력이 더 크다는 점도 강조했다. IMF 전망상 한국의 순부채비율은 2030년 12.9% 수준으로 선진국 평균(86.3%)을 크게 밑돈다.
자본 유출입 변동성에 취약한 비기축통화국인 한국에서는 국가부채 비율 60% 안팎을 대외 신인도 유지를 위한 재정 건전성의 심리적 기준선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다만 정부는 ‘비기축통화국 평균’은 IMF가 공식적으로 사용하는 분류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구 부총리는 특히 이번 IMF 보고서가 한국을 재정 위험 국가로 지목하지 않았으며, 재정 여력을 바탕으로 정책 대응 여지가 충분하다는 점에 주목했다. 일부에서 제기되는 ‘재정 악화’ 프레임은 과도하다는 것이다.
반면 IMF 보고서의 전체 맥락을 보면 글로벌 재정 환경에 관한 경고 성격도 분명하다. IMF는 높은 부채 수준과 금리 상승, 재정 여력 축소 등을 주요 위험 요인으로 지목하며 글로벌 공공부채가 계속 증가하는 가운데 정책 대응 여지가 좁아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특히 고금리 환경이 지속되면서 부채 관리 부담이 커지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와 함께 IMF는 각국이 중기적 재정 관리 체계를 강화하고 재정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정책 대응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IMF는 이번 보고서에서 특정 국가를 겨냥하기보다는 글로벌 재정 여건 전반의 취약성을 짚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IMF는 한국을 두고 “역사적으로 재정이 튼튼한 국가”라면서도 벨기에와 함께 향후 부채비율의 상당한 증가가 예상되는 국가로 제시했다. 현재의 재정 여력을 인정하면서도 중장기 재정 부담 가능성을 함께 제시한 셈이다.
이를테면 정부는 현재의 부채 수준과 성장 여력을 근거로 재정 확대 여지를 강조하는 반면, IMF는 부채 증가 속도와 고금리 환경 등 중장기적으로 재정 악화 가능성을 짚은 셈이다.
▲ 2019~2026년 일반정부 부채 비율 변화. < IMF, 나라살림연구소 >
정부의 재정 운용 기조는 단순한 확장 재정을 넘어 ‘성장을 통한 재정 안정’에 방점이 찍혀 있다.
초과세수를 활용해 국채 발행 없이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고, 이를 경기 대응과 미래 투자로 연결해 성장률을 끌어올린 뒤 이를 재정 건전성으로 이어가겠다는 구상이다. 여기에 재정·공공·규제 개혁과 인공지능(AI), 녹색전환(K-GX) 등 미래 산업 육성을 결합해 잠재성장률 자체를 끌어올리겠다는 전략도 함께 추진하고 있다.
구 부총리는 전날 페이스북을 통해 “올해 6월경 마련할 하반기 경제성장전략을 통해 구체적 방안을 제시하겠다”며 “이를 통해 올해를 잠재성장률 반등의 원년으로 만들고,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높여서 ‘재정과 경제의 선순환’을 이뤄내겠다”고 밝혔다.
다만 이 같은 재정 전략이 실제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전제가 충족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선 재정 지출이 단기 경기 부양에 그치지 않고 생산성 향상과 산업 구조 전환으로 이어져야 한다. 동시에 노동·교육·연금·규제 등 구조개혁이 병행되지 않을 경우 잠재성장률 반등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재정수지 관리도 중요한 과제다. 성장률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거나 세수 기반이 흔들릴 경우 부채 증가 속도가 예상보다 빨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고령화에 따른 복지 지출 확대와 금리 부담 증가는 중장기 재정 여건을 제약하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IMF도 한국의 연금지출 증가 속도가 주요 선진국 가운데 상대적으로 빠를 것으로 전망하는 등 고령화에 따른 구조적 재정 부담 확대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다.
결국 정부 전략의 성패는 재정 확대가 실제 잠재성장률 상승으로 이어지느냐에 달려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단기 경기 부양에 그칠 경우 부채만 늘 수 있지만, 생산성과 세입 기반 확대로 연결된다면 정부가 주장하는 ‘성장과 재정의 선순환’이 가능해질 수 있다.
다만 이런 전략은 ‘성공하면 재정과 성장의 선순환, 실패하면 재정 부담 확대’라는 양면성을 안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재정 여력과 잠재적 위험이 공존하는 상황에서, 정부가 내세운 전략이 실제 잠재성장률 반등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주목된다. 허원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