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국내 주요 보험사들이 이사회에 소비자보호위원회를 신설하고 관련 전문가를 영입하는 등 금융소비자 보호 장치 마련에 속도를 내고 있다.
금융당국 요구에 대응하는 동시에 ‘편면적 구속력’ 시행에 앞서 소비자 분쟁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으로 풀이된다.
| ▲ 금융당국이 금융소비자 보호를 위해 ‘편면적 구속력’ 도입을 지원한다. 사진은 24일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이 시민·소비자단체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는 모습. <연합뉴스> |
다만 보험업계에서는 편면적 구속력 제도 시행으로 분쟁 자체를 줄이려는 대응이 강화되면 업권 전반의 역동성이 낮아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25일 보험업계 안팎 말을 종합하면 전날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이 시민·소비자단체 간담회에서 ‘편면적 구속력’ 제도 도입을 지원한다고 말하는 등 금융당국의 ‘소비자보호’ 압박이 강해지고 있다.
편면적 구속력은 분쟁조정에서 소비자에게만 구속력이 부여되는 제도를 말한다. 쉽게 말해 편면적 구속력 제도가 도입되면 금융소비자와 금융사 사이 소액의 금융분쟁이 일어났을 때 금융사는 분쟁조정위원회의 결정을 의무적으로 따라야 한다.
이재명 정부 국정기획위원회는 금융개혁 주요 공약에 편면적 구속력 제도 도입을 담았는데 이찬진 원장이 힘을 실은 것이다.
금융권에서는 편면적 구속력 제도가 도입되면 상대적으로 민원이 많은 보험업권이 가장 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바라본다.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2025년 상반기 금융민원 접수 건수를 보면 보험업권 민원이 절반 가량인 49%(손해보험 37%, 생명보험 12%)를 차지했다. 은행(18%), 금융투자(9%)업계를 크게 웃돌았다.
이에 보험사들은 소비자보호위원회를 꾸리는 등 분쟁이 발생하기 전 단계에서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내부통제 강화에 나서고 있다. 이는 지난해 금융당국이 발표한 ‘금융소비자 보호 거버넌스 모범관행’에 발맞춘 행보이기도 하다.
소비자보호위원회는 금융소비자 보호 관련 의사결정을 관리하기 위한 이사회 산하 소위원회다.
KB금융 생명보험사 KB라이프는 24일 주주총회에서 소비자보호위원회 신설과 소비자보호 전문가를 사외이사로 선임하는 안건을 의결했다. 손해보험 계열사 KB손해보험도 20일 주주총회에서 소비자보호 전문가를 사외이사로 영입했다.
우리금융 계열사로 편입된 동양생명은 23일 주주총회에서 금융소비자보호위원회를 신설했다.
지주 계열사가 아닌 보험사들도 소비자보호를 위해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다.
한화생명은 지난해 9월 대표이사 직속 ‘고객신뢰혁신 태스크포스(TF)’를 출범했다. 올해 1월엔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소비자보호 독립 자문기구인 ‘고객신뢰 플러스(+PLUS) 자문위원회’를 신설했다.
삼성생명은 전체 임직원 및 보험설계사를 대상으로 ‘소비자보호 DNA 확산 교육’을 진행했다.
금융권에서는 보험사들이 편면적 구속력 도입을 앞두고 분쟁을 사전에 방지하는 대응 체계를 구축하려는 것으로 바라본다.
편면적 구속력이 도입되면 분쟁이 조정 단계로 넘어가는 것만으로 보험사에는 부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금융감독원이 직접 보험사를 상대로 백내장 실손보험금 지급 관련 분쟁을 재검토하라고 지시하면서 보험업계는 더욱 긴장하는 모습이다.
| ▲ 금융감독원이 보험사 대상 백내장 실손보험금 지급 재검토를 요청하는 등 보험사 대상 소비자 보호를 강조하고 있다. |
시장에서는 백내장 실손보험금이 과잉 청구된다는 문제가 제기된 바 있다. 그러나 2022년 백내장 수술이 일반적 입원 치료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대법원판결이 내려지며 논란은 잦아들었다.
금융감독원이 대법원 판례와 다르게 다시 백내장 보험금 문제를 언급한 셈인데 보험업계 민원에서 소비자 손을 들어주는 기조를 드러낸 것으로 평가된다.
보험업계에서는 편면적 구속력 제도 도입을 두고 업권 자체의 경직 등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보험사들이 분쟁 발생 자체를 리스크로 인식해 운영이 보수적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대형 보험사 한 관계자는 “편면적 구속력이 도입되면 분쟁으로 넘어가는 자체가 리스크”라며 “사전에 민원이 발생하지 않게끔 힘을 기울일 수밖에 없는데 이는 신상품이나 신기술 도입 등에서 경직되고 보수적 의사결정 중심 운영 기조로 이어질 수 있다”고 바라봤다.
또 다른 대형 보험사 관계자는 “소비자보호 취지에 공감하고 당연히 해야 하는 게 맞다”며 “다만 더 조심스러워지는 만큼 이전에 판매하던 게 아닌 새로운 상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하기까지 의사결정이 더뎌져 소비자 선택권이 줄어들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김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