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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길 국제경제 톺아보기] 케빈 워시 연준 의장 지명자는 '순교한 교회 수장'이 될까?

정의길 egil@hani.co.kr 2026-02-05 08: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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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길 국제경제 톺아보기] 케빈 워시 연준 의장 지명자는 '순교한 교회 수장'이 될까?
▲ 케빈 워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 후보자(사진)은 통화긴축을 선호하는 '인플레이션 매파'로 분류된다. 하지만 그의 입장은 민주당 정부 때는 강경하다가 공화당 정권에서는 흐물흐물해졌다. <연합뉴스>
[비즈니스포스트] 12세기 때 영국 국왕인 헨리2세는 강력한 왕권을 구축하려 했다. 그는 당시 왕권 강화의 최대 걸림돌인 교회를 제어하려 했다. 자신의 오랜 친구이자 측근이고 충실한 신하였던 토머스 베켓을 여러 반대에도 불구하고 캔터베리 대주교로 임명했다. 베켓이 자신의 뜻을 잘 따를 것이라고 당연히 기대했다.

그런데, 대주교가 된 베켓은 태도를 바꿨다. 그는 대주교가 되자 교회의 신성한 사명을 지켜야 한다는 소명감에 사로잡혔다. 그는 성직자 범죄를 왕의 법정이 아닌 교회 법정에서 다뤄야 한다면서 헨리2세와 충돌했다. 두 사람의 관계는 완전히 틀어졌다.

격분한 헨리2세는 “이 성가신 자를 없앨 자 없느냐?”라는 말을 했고, 실제 기사들은 1170년 캔터베리 대성당에서 베켓을 살해했다. 베켓은 곧 성인으로 추앙됐다. 그의 죽음은 교회의 독립을 상징하는 사건으로 남았다.

16세기 영국 국왕인 헨리8세는 충실한 측근인 토머스 울지를 요크 대주교와 추기경으로 잇따라 임명했다. 울지는 왕의 정책을 충실히 수행했지만, 교회의 권위도 지키려 했다. 그러나 울지는 헨리8세가 강력히 원했던 왕비 캐서린과의 혼인 무효를 교황청으로부터 받아내지 못했고, 결국 실각했다. 이 사건 뒤 헨리8세는 영국 교회를 로마교황청으로 분리독립하는 절차에 착수했고, 결국 영국 국왕이 최고수장이 되는 영국 국교인 성공회가 만들어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7일(현지시각) 오랫동안 벼르던 연방준비제도의 새 의장에 케빈 워시는 지명했다. 트럼프의 신임 연준 의장 지명은 과거 영국 국왕들의 교회 수장 임명을 상기시킨다. 영국 국왕들은 자신의 말을 따를 것이라고 교회 수장을 지명했지만, 뜻대로 되지는 않았다. 트럼프 역시 자신의 말을 따를 것이라고 기대하고 워시를 지명했는데 과연 뜻대로 될지는 두고봐야 한다.

트럼프는 지난해 취임 직후부터 연준에 금리인하를 촉구하며, 이에 따르지 않은 제롬 파월 현 의장을 비난했다. 결국 지난해에는 연준 건물 수리와 관련된 비리를 이유로 연방정부 법무부가 그를 기소하는 사태에까지 이르렀다. 시장에서는 대통령이 연준의 결정에 개입하는 것은 그 독립성을 해치는 것으로 금기시한다. 트럼프의 연준 결정에 대한 시비와 파월 의장에 대한 비난이 궁극적으로 시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됐다.

트럼프는 자신이 원하는 공격적 금리인하를 충실히 따를 인물을 신임 연준 의장으로 지명할 것으로 예상됐다. 그런데 막상 결과는 가장 유력한 후보였던 케빈 해셋 국가경제위원장이 아니었다. 오히려 거론된 후보군에서 가장 인플레이션에 강경한 매파로 평가되는 케빈 워시 전 연준 이사를 지명했다.

시장에서는 일단 그의 임명에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 그의 임명으로 인플레이션에 강경 대처해 달러 가치가 폭락하지 않고 최근 폭등했던 금 값도 떨어질 것이라는 예상이 나왔다. 실제 금값은 폭락했다. 금과 은 값의 폭락으로 인한 마진콜 발생으로 이를 메꾸기 위해 기존 주식을 처분하는 사태로 한국 등에서 2일 증시가 폭락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시장은 그가 인플레이션에 강경 대처한 전력을 감안해 트럼프가 원하는 금리인하에도 순응하지 않을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일단 트럼프가 워시를 임명한 것은 시장을 의식한 타협책으로 보인다. 트럼프는 취임 이후 상호관세를 밀어붙이다가 지난해 4월 시장의 대폭락을 보고서 물러났다. 최근 그린란드의 미국 합병을 밀어붙이다가 유럽연합과 시장의 강경한 부정적 반응 앞에 물러섰다. 이 때문에 워시가 트럼프의 뜻에 순종하지 않는 연준 의장이 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시장은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워시의 전력을 감안하면, 우선 무엇보다도 그가 연준 의장을 수행할 능력이 있는지에 의문이 제기된다. 인플레이션 매파라고 하지만 과연 인플레이션 등 시장 상황에 적절히 대처할 수 있는 능력과 식견으로 무장됐는지 의문스럽다.

세계금융위기가 발발하던 2008년 워시는 연준 이사였다. 그는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하는 금융 재앙 앞에서도 인플레이션이 치솟는다고 우려했다. 당시는 수요 격감으로 인플레이션은 마이너스로 전환되고 실업률이 늘어나던 때였다. 금융위기가 지속되던 2010년 인플레이션은 낮았고, 실업률은 10%를 상회했다. 그 때에도 워시는 인플레이션을 경고하며, 벤 버냉키 당시 연준 의장이 주도하던 양적완화를 반대했다. 결국 그는 여기에 반기를 들면서 연준 이사 자리에서 떠났다.

적어도 연준 이사까지 올라온 경제통이라면 자신이 아무리 인플레이션 매파라 하더라도 그런 상황에서 인플레이션을 우려하며 돈줄을 조이자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1929년 미국은 워시가 주장하던 그 방법을 썼다가 대공황이 전 세계를 급습하게 했다. 1995년 유럽 금융위기 때 유럽중앙은행이 워시가 말하는 방법을 채택했다가 위기가 악화됐다.

워시의 인플레이션 매파 입장과 식견에 의구심을 갖게 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더 큰 문제는 그의 이런 납득하기 힘든 인플레이션 매파 입장마저도 정권의 입맛에 따라 여반장처럼 바뀌었다는 것이다. 그의 인플레이션 매파 입장과 견해는 민주당 정부 때는 강경하다가, 공화당 정권에서는 흐물흐물해졌기 때문이다.

그는 트럼프 1기 집권 때인 2018년 통화긴축에 대한 자신의 평소 요구를 갑자기 철회했다. 그는 2024년 9월까지 연준의 금리인하를 꾸짖다가 그해 11월 트럼프가 당선되자 마자 입장을 바꿔 추가적인 금리인하를 주장했다.

인플레이션 등과 관련된 통화정책에 대한 신통치않은 전력에다가 정권에 맞춘 변신은 연준 의장으로서는 최악이 아닐 수 없다. 물론 그가 연준 의장으로 취임하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연준 의장이라는 자리 자체가 그에게 무게를 싣고 소명감을 부여할 수 있다. 

중세 때 세속권력의 국왕에 해당하는 것이 지금의 대통령이라면, 그에 맞서는 교회권력에 해당하는 것이 시장권력이고 연준이 핵심이다. 워시는 과연 어떤 연준 의장이 될까? 토머스 베켓처럼 국왕에 저항하다가 순교하는 교회 수장처럼 될까? 아니면 국왕과 교회 사이에서 우왕좌왕하다가 몰락한 토머스 울지처럼 될까? 

그가 토머스 베켓처럼 될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적다는 것이 합당한 예측이 아닐까? 정의길/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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