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찬우 한국거래소 이사장이 박근혜 게이트의 소용돌이 속으로 휘말려 들어가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금융권 비선’으로 낙인찍힐 경우 이사장 자리도 장담할 수 없다.
◆ 특검, 정찬우 압박 수위 높여
10일 박영수 특별검사팀과 금융업계 등에 따르면 특검은 정찬우 한국거래소 이사장을 이른 시일 안에 다시 불러 조사할 방침을 세웠다.
특검은 3일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실 등을 압수수색한 뒤 정 사장을 비공개로 불러 조사했는데 다시 소환조사를 계획하는 만큼 압박수위를 높이는 것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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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찬우 한국거래소 이사장. |
정 이사장은 박근혜 정부의 임기 첫해부터 지난해 초까지 금융감독원 부위원장을 지냈는데 당시 안종범 전 대통령비서실 정책조정수석의 지시로 이상화 KEB하나은행 본부장의 승진을 위해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상화 본부장은 지난해 1월 독일 근무를 마치고 귀국한 뒤 서울 서초동 삼성타운지점장으로 발령 받았는데 곧바로 새롭게 만들어진 글로벌 영업2본부장을 맡으며 임원으로 승진했다.
이 본부장은 KEB하나은행 독일법무장 당시 최순실씨 딸 정유라씨의 독일 정착을 돕기 위해 특혜대출을 제공한 혐의를 받고 있다.
정 이사장은 삼성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을 돕기 위해 중간금융지주회사제도 도입을 추진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중간금융지주회사제도는 일반 지주회사가 중간에 금융지주회사를 둬 금융자회사들을 지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으로 삼성생명, 삼성화재 등을 금융계열사로 두고 있는 삼성그룹의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 쓸모가 높다.
정 이사장의 신분이 특검 조사과정에서 참고인에서 피고인으로 바뀔 가능성도 나온다.
특검 대변인 이규철 특검보는 7일 브리핑에서 정 이사장의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 가능성과 관련해 “수사 상황에 따라 판단될 것”이라고 말했다.
비영리단체인 금융소비자원은 정 이사장을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특검에 고발하기로 했다.
금융소비자원은 “정찬우는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해 민간금융사의 인사전반에 개입하고 권력자들의 이권행위를 적극적으로 도와줬다”며 “특검은 구속수사를 통해 금융업권의 국정농단의 실체를 반드시 밝혀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 ‘금융권 비선’ 낙인, 이사장 자리도 흔들려
그동안 의혹에 그쳤던 사항들이 특검조사를 통해 사실로 밝혀질 경우 정 이사장은 박근혜 정부의 ‘금융권 비선’으로 낙인찍힐 가능성이 높다.
정 이사장은 박근혜 정부 인사들과 꾸준히 친분을 쌓아와 박근혜 게이트 초기부터 각종 금융권 인사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11월 국회에서 열린 최순실 국정농단 관련 긴급현안질문에서 “차은택이 문화계 황태자라면 금융계인사를 주무른 사람은 정 이사장”이라며 “정 이사장은 이재만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과 내통하면서 금융계를 주물렀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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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윤경 전국사무금융노조 위원장이 2016년 9월28일 서울 종로구에서 열린 '정찬우 전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의 한국거래소 이사장 임명 반대 노동시민사회단체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
정 이사장이 박근혜 정부의 금융권 비선으로 낙인찍힐 경우 한구거래소 이사장 자리를 계속 지킬 수 있을지 불투명한 상황에 놓일 수도 있다.
우선 탄핵 정국이 끝난 뒤 조기대선 가능성이 열려 있는 만큼 임기를 장담할 수 없다. 특검조사 과정에서 피의자로 신분이 바뀔 경우 정치권에서 자진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낙하산 인사 논란이 재점화할 가능성도 있다.
정 이사장은 지난해 9월 한국거래소로 이사장으로 선임됐을 때 낙하산 인사 논란으로 홍역을 치렀다.
한국거래소 노조는 부분파업을 벌이고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시절 연구용역비를 개인적으로 유용했다는 혐의로 정 이사장을 검찰에 고발하는 등 낙하산 인사에 강하게 반발했다. 이사장 취임식도 노조원들의 반발로 일정보다 하루 늦게 열렸다.
한국거래소의 지주사 전환도 흔들릴 수 있다.
한국거래소는 정 이사장의 전임인 최경수 이사장때부터 지주사 전환을 야심차게 추진해 왔다.
정 이사장 역시 취임식 때 거래소의 지주사 전환을 강조하는 등 의욕을 보였으나 박근혜 게이트가 터진 뒤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아 추진동력을 상실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거래소의 지주사 전환을 위해서는 야당 의원들을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한데 이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인 데 따른 것이다.
정 이사장이 박근혜 정부의 금융권 비선 실세로 낙인찍힐 경우 거래소의 지주사 전환은 그만큼 더 어려워질 가능성이 높은 셈이다.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거래소의 지주사 전환문제는 국회가 열리지 않아 진행이 잠시 멈췄을 뿐 정 이사장과 관련 있는 사항은 아니다”며 “정 이사장이 특검조사를 받는 것도 거래소에 오기 전에 있었던 일인 만큼 개인차원에서 대처하고 있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이한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