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서울 중구 우리은행 본점에 새로 문을 연 역사관 '우리1899'에 박경리 소설가의 흔적이 전시됐다. <비즈니스포스트> |
[비즈니스포스트] 서울 중구 우리은행 본점에 최근 새로 문을 연 은행 역사관 ‘우리1899’에 들어서면 뜻밖의 이름이 발길을 붙잡는다.
바로 한국 문학의 거장 ‘박경리.’
이곳에서 그는 대작 ‘토지’의 작가가 아닌 1954년 한국상업은행 용산지점에서 근무하며 작가의 꿈을 키우던 20대 은행원 ‘박금이’로 소개된다.
그리고 이곳 박물관을 30분 정도 꼼꼼히 둘러보고 나오면 그런 생각이 든다. 박경리 작가가 은행원이었기 때문에 토지를 쓸 수 있었던 게 아닐까.
| ▲ 대한천일은행 창립 청원서 및 인가서. 청원문에는 설립 취지와 은행 이름, 본점 위치, 청원에 참여한 6명의 상인과 관료의 이름이 포함돼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
22일 방문한 우리은행 역사관 ‘우리1899’에는 우리은행의 전신인 상업은행과 한일은행의 굵직한 역사뿐 아니라 은행원과 고객의 일상, 당시 은행의 풍경 등 근대은행의 어제와 오늘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전시는 대한제국 시절 설립된 국내 최초의 민족자본은행 ‘대한천일은행’의 역사에서 출발한다.
1899년 문을 연 대한천일은행은 강화도 조약 이후 거세진 일본 자본의 공세로부터 국내 상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세워졌다.
일본 상인들이 본국 은행의 비호 아래 빠르게 세력을 넓혀가자 위기감을 느낀 국내 상인들이 고종황제를 찾아가 지원을 요청했고, 이에 황실 자금과 민간 자본이 더해져 탄생한 것이다.
이렇게 출범한 대한천일은행은 이후 한국상업은행으로 이어지며 한국 금융사의 한 축으로 자리 잡았다.
| ▲ 대한천일은행와 조선신탁회사의 역사가 전시돼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
역사관의 ‘우리1899’라는 이름은 이런 출발점을 그대로 담고 있다.
‘우리’라는 은행의 정체성과 대한천일은행 창립 연도 ‘1899년’을 결합해 126년에 이르는 금융의 시간을 한 공간에 녹여낸 것이다.
전시 동선을 따라 안쪽으로 들어가면 대한천일은행 이후의 역사가 이어진다.
한일은행의 전신 ‘조선신탁주식회사’를 비롯해 상업은행과 한일은행이 각자 시대를 견디며 성장해 온 기록들이 펼쳐진다. 두 은행의 발자취는 한국 근현대 금융사의 격변기와 맞물리며 우리은행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시대의 흐름 속에서 금융이, 그 안에서 우리은행이 어떤 역할을 수행해 왔는지 돌아보게 만드는 셈이다.
| ▲ 실제 건물의 5분의 1로 축소된 광통관 조형물. 현재 우리은행 종로금융센터로 사용되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
전시장 가장 안쪽에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은행 건물 '광통관' 조형물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지금도 실제 은행 건물로 사용되고 있는 광통관의 외관을 그대로 옮겨 놓은 이 전시물은 조명을 활용해 낮과 밤의 모습을 번갈아 보여준다.
광통관 앞 영상관에서는 광통관이 지나온 시간의 흔적을 따라갈 수 있다.
광통교 일대의 옛 풍경부터 6.25전쟁의 포화, IMF 외환위기의 시련, 그리고 2002년 월드컵의 뜨거운 열기까지 굵직한 장면 속에서도 묵묵히 같은 자리를 지켜온 광통관의 여정을 한눈에 보여준다.
| ▲ 상업은행과 한일은행의 유니폼과 달력, 부채 등이 전시돼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
영상을 뒤로하고 발걸음을 옮기면 이번에 새롭게 선보인 ‘우리 생활 속의 은행’ 코너가 나타난다.
이곳은 제도와 숫자로 기록된 은행의 역사가 아니라 그 안에서 실제로 숨 쉬며 발 붙이고 살았던 은행원과 고객들의 흔적을 담았다.
전시장 곳곳에는 인사 발령 때 발급되던 낡은 사령장과 빛바랜 사무기기, 손때 묻은 돈그릇과 번호표, 단정한 유니폼 등이 놓여 있다. 유리 진열장 너머의 물건들은 수십년 전 은행의 공기를 오늘로 실어 나른다.
그리고 이곳에서 박경리 작가의 흔적을 만날 수 있다.
시대별 사보가 줄지어 선 벽면 끝자락, 박경리 작가가 등단 전 상업은행원으로 근무했던 시절 본명 ‘박금이’가 정갈하게 적힌 직원 명부와 그의 초기 작품이 수록된 상업은행 사보 ‘천일’ 2권이 나란히 전시돼 있다.
| ▲ 박경리 작가가 상업은행 근무 시절 '천일'에 기고했던 작품 '바다와 하늘'을 감상할 수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
박경리 작가의 대하소설 토지는 소설은 주인공 서희가 소설의 제목과 같은 ‘토지’를 친척인 조준구에게 빼앗기고 중국 간도로 넘어가 자본가로 성공하는 모습을 담는다.
그 안에는 화폐경제 변화와 은행을 비롯한 근대적 금융시스템 도입 등 한국의 근대 경제사가 고스란히 녹아 있다.
박경리 작가는 1954년 1월부터 약 1년 동안 상업은행 용산지점에서 근무했다. 은행원으로 일했던 만큼 더욱 생생한 당시의 경제 이야기를 토지에 담아낼 수 있지 않았을까.
박경리 작가는 은행원으로 일하며 분주한 일상 속에서도 창작의 끈을 놓지 않았다. 상업은행 재직 시절에는 장편시 ‘바다와 하늘’을 집필했고, 퇴사 이후에도 단편소설 ‘전생록’을 상업은행 사보에 기고하며 은행과의 인연을 이어갔다.
| ▲ 우리은행과 특별한 인연이 있던 인물들을 전시한 벽. 가운데가 박경리 작가. <비즈니스포스트> |
역사관에는 박경리 작가뿐 아니라 우리은행과 인연을 맺었던 여러 인물들의 이야기도 함께 소개된다.
독립운동가 정귀택 선생, 파스퇴르유업과 민족사관고등학교를 설립한 최명재 회장, 두산그룹 회장을 지낸 박용성 전 회장 등이 주인공이다.
최명재 회장은 종로지점 근무 당시 창고의 오래된 문서 더미 속에서 대한천일은행 창립 문서를 발견한 인물로 소개된다. 그가 찾아낸 자료는 자칫 잊힐 뻔했던 우리은행의 초기 역사를 밝히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됐다.
이처럼 전시는 은행이 단순한 금융기관을 넘어 수많은 개인의 삶과 선택이 스쳐 지나간 생활의 공간이었음을 보여준다.
누군가에게는 일터였고, 누군가에게는 미래를 설계하던 창구였던 그곳에서 쌓인 수많은 이야기가 126년 역사를 지탱하는 가장 큰 힘이었음을 전시장 곳곳의 흔적들이 말해주고 있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잇는 우리금융의 발자취를 한 공간에 담았다”며 “역사 속에서 늘 고객과 함께해 온 우리은행의 기록을 통해 금융의 역할과 의미를 다시 한번 돌아볼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우리은행은 11일 서울 중구 본점 지하 1층에 2004년 문을 연 은행사 박물관을 21년 만에 재단장한 ‘우리1899’를 열었다. 우리1899은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전해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