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글로벌 대형 석유화학 기업 BP와 쉘이 지난 수 년에 걸쳐 추진해 온 친환경 산업 전환 계획을 대폭 축소하고 있다. 사업 경험 부족과 외부 변수, 정책 변화 등이 이들의 노력을 결국 실패 사례로 남기는 데 그쳤다는 평가가 나온다. 쉘의 수소연료 충전소 홍보용 사진. |
[비즈니스포스트] 거대 석유화학 기업인 BP와 쉘이 오랜 기간에 걸쳐 기후대응 및 친환경 전략을 추진해 왔지만 결국 이를 사실상 철회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였다.
재생에너지를 비롯한 관련 사업에 경험과 전문성이 떨어져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려웠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등 외부 변수가 발생한 점도 원인으로 지목된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11일 “BP와 쉘의 ‘녹색 혁명’은 결국 실패로 끝났다”며 “대부분의 계획이 축소되고 수십억 달러 규모의 손실만 남게 됐다”고 보도했다.
BP와 쉘은 엑손모빌 및 토탈에너지와 함께 세계 4대 석유화학 기업으로 꼽힌다. 이들은 모두 친환경 사업 중심의 체질 전환을 오래 전부터 시도해 왔다는 공통점이 있다.
전 세계적으로 기업들의 기후변화 및 대응 전략과 관련한 요구가 높아지면서 온실가스 배출의 주범으로 꼽히는 석유화학 기업을 향한 사회적 및 정책적 압박이 커졌기 때문이다.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BP는 2020년부터 본격적으로 탄소중립 목표를 내걸고 석유 및 천연가스 생산과 사용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를 감축 대상에 포함하는 등 전면적 사업 체질 전환을 시도해 왔다.
쉘은 2015년부터 태양광과 풍력 등 재생에너지를 활용해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겠다는 계획을 내세웠고 전력 생산에 이를 적극 활용하는 방안을 추진해 왔다.
이후 쉘의 재생에너지 관련 기업 인수와 인력 채용 등 투자도 꾸준히 확대되어 왔다.
그러나 파이낸셜타임스는 두 회사에서 모두 내부 구성원들의 반발이 이어지면서 새로운 사업 목표에 임직원의 공감을 사기 어려운 상황이 이어져 왔다고 지적했다.
BP와 쉘이 석유화학 중심의 사업 구조를 친환경 에너지로 빠르게 전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나치게 낙관한 점도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로 지목됐다.
두 회사 모두 태양광과 풍력 등 재생에너지 사업을 새 성장동력으로 육성하려 했지만 이미 해당 분야를 선점한 에너지 기업들과 경쟁을 벌이기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사업 노하우 및 경험 부족과 시장 경쟁에 불리한 사업 규모가 약점으로 꼽혔다.
| ▲ 미국에 위치한 BP 정유시설 홍보용 사진. |
파이낸셜타임스는 이런 상황에서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이들의 사업 방향 전환에 결정적 계기로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전 세계 에너지 공급망에 차질이 커지면서 석유와 천연가스 등 화석연료 가격이 급등했기 때문이다.
자연히 화석연료에 투자를 줄이고 신재생에너지 사업을 육성하던 쉘과 BP는 엑손모빌과 셰브론 등 경쟁사와 비교해 수혜를 크게 보기 어려웠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이를 계기로 투자자들의 여론도 쉘과 BP에 부정적으로 돌아서면서 화석연료 사업에서 수익성을 회복해야 한다는 압박이 커지게 됐다고 전했다.
결국 BP와 쉘의 기후대응 및 친환경 사업 전략이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BP는 이후 “석유와 가스는 앞으로 수십 년 동안 필요한 에너지원”이라고 강조하면서 그동안 추진해 온 사업 전환이 지나치게 빠른 속도로 이뤄졌다고 밝혔다.
쉘도 석유화학 및 신사업 분야에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해야 할 필요성이 높아졌다고 전했다. 사실상 재생에너지 등 영역에 투자를 축소하겠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미국 트럼프 정부의 출범도 이들 기업의 사업 방향 전환에 중요한 계기로 작용했다. 트럼프 정부가 재생에너지 산업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면서 지원 정책을 대폭 축소하고 화석연료 생산 증설을 돕는 정책을 앞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파이낸셜타임스는 “BP와 쉘은 여전히 2050년 탄소중립 달성 목표를 공식적으로 유지하고 있지만 이전과 같은 빠른 변화는 더 이상 추진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 기업은 당분간 석유 및 가스 사업에서 수익성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데 집중하고 중장기적으로 수소 및 바이오연료 등 대체 수단을 키워내겠다는 방침을 두고 있다.
결과적으로 거대 화석연료 기업의 기후대응 및 친환경 사업 전략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점을 보여주는 중요한 선례를 남기는 데 그친 셈이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친환경 에너지 전환을 주도하겠다는 BP와 쉘의 거대한 구상은 결국 실용주의 및 주주들의 이해관계를 고려해 대체될 수밖에 없었다”고 분석했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