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여야가 '대장동 항소 포기' 사태를 두고 '입씨름'을 넘어 국정조사 등에서 정면충돌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여야는 이번 사태를 두고 '친윤 검사의 항명'과 '정치적 외압'을 놓고 대립하고 있다. 야당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등을 요구하자 여당이 곧바로 이를 수용하겠다고 밝혀 자칫 향후 정국은 대장동 수사·기소·재판을 둘러싸고 대격돌이 벌어질 가능성까지 제기된다.
▲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10일 오전 정부과천청사 법무부로 출근하며 검찰의 '대장동 항소 포기' 결정과 관련한 입장을 밝힌 뒤 청사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10일 오전 정부과천청사 출근길에 취재진과 만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사태를 두고 "항소를 안 해도 문제가 없다고 봤다"면서도 "항소 포기를 지시한 적 없고 '신중하게 종합적으로 판단하라'는 의견을 제시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사태와 이재명 대통령의 연관성을 묻는 질문에 "(이 대통령이) 이 사건과 무슨 상관인가"라며 "오히려 대통령을 고려했다면 다른 의견을 냈을 것"이라고 답했다.
이는 앞서 나온 대통령실 입장과 사실상 동일한 것으로 국민의힘이 제기하고 있는 '정치적 외압론'에 분명하게 선을 그은 셈이다.
앞서 대장동 개발 비리 사건 공판팀은 항소 기한을 4시간30분가량 남긴 7일 오후 7시30분께 대검이 아무런 이유 없이 항소 제기를 불허한 사실을 통보받았다. 사건 담당 일선 검사들은 항소를 강하게 원했으나 검찰 지휘부는 '항소 금지' 결정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노만석 검찰총장 직무대행은 전날인 9일 배포한 입장문에서 "검찰총장 대행인 저의 책임 하에 서울중앙지검장과 협의를 거쳐 숙고 끝에 내린 결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대장동 사건은 일선 청의 보고를 받고 통상 중요 사건처럼 법무부의 의견도 참고했다"며 "해당 판결의 취지 및 내용, 항소 기준, 사건의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검찰의 이례적인 항소 포기에 먼저 야당이 크게 반발하며 여권을 맹폭했다. 이 대통령 재판과 관련이 있는 이번 대장동 사건의 항소를 포기하도록 검찰에 압력을 행사했다고 몰아붙였다.
앞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판사 조형우)는 지난달 31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이해충돌방지법 위반 혐의를 받는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본부장과 화천대유자산관리 대주주 김만배씨에게 각각 징역 8년을 선고했다.
유 전 본부장에게는 벌금 4억 원과 추징금 8억1천만 원을, 김씨에게는 추징금 428억 원을 각각 선고했다. 함께 기소된 정민용 변호사는 징역 6년에 벌금 38억 원과 추징금 37억 원을, 정영학 회계사와 남욱 변호사는 각각 징역 5년과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이번 선고에서 재판부는 유동규 전 본부장을 사건의 핵심인물로 보고 검찰 구형량(7년)보다 훨씬 강한 징역 8년을 선고했다. 검찰로선 성공한 재판결인 셈이다. 다만 애초 검찰이 요구한 7814억 원 추징금은 피해액 산정이 어렵다며 기각했다.
특이한 점은 더불어민주당이 방어가 아니라 강력한 역공을 펼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먼저 민주당은 이번 사건 '항소 포기'가 아니라 법리 판단에 따른 '항소 자제'라고 규정했다. 민주당은 지난 8일 8시간 동안 9건의 논평을 통해 야당의 공세를 차단하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주말인데도 당의 대변인·원내대변인이 총동원돼 사실상 매시간 논평을 쏟아냈다.
특히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전날인 9일 국회 원내대표 회의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검찰이 대통령님을 겨냥한 조작 수사, 거짓 진술 강요, 억지 기소를 벌였고 재판에서 패하자 반성은커녕 항명으로 맞서고 있다"며 "대장동·대북 송금 수사에 대한 국정조사, 청문회, 상설 특검 등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시행해 검찰권 남용과 조작 기소의 진상을 국민 앞에 낱낱이 밝힐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주당의 역공에는 최근 이 사건 핵심 관련자인 남욱 변호사 등의 법정 증언이 배경이 된 듯하다.
남 변호사가 지난 7일 정진상 전 민주당 정무조정실장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과거 검찰 조사에서 "'배를 가르겠다'는 협박을 듣고 검사의 방향에 맞춰 진술했다"고 증언했다.
요컨대 국민의힘과 검찰이 조직적으로 이번 항소 포기 사태를 계기로 여권에 대한 총공세에 나서자 이번 기회에 대장동 사건의 재판뿐 아니라 수사와 기소부터 샅샅히 규명하자면서 되치기를 하고 나선 셈이다.
정치권에서는 이번 충돌이 단순한 '말싸움'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국민의힘이 '정치적 외압'을 주장하며 국정조사 등을 요구하고 있다. 법무부 쪽에서 외압을 가한 사실이 밝혀진다면 곧장 이재명 재판으로 연결해 공세를 강화할 태세를 보인다.
검찰도 일선 지검장과 지청장, 대검 연구관들이 잇달아 노만석 검찰총장 직무대행에게 "구체적 경위를 밝혀라"면서 집단행동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여권도 만만치 않다.
먼저 정성호 법무장관이 단순히 의견을 제시했을 뿐이고 대검이 최종적으로 결정했다는 '외압설'과 선을 그었다. 새로운 사실관계가 밝혀지지 않는다면 노만석 대행의 단독 결정으로 결론 날 수 있고 이는 결국 '조직 내부 문제'가 되어버린다.
여기에 곳곳에서 검찰의 무리한 수사 증언이 이어지면서 검찰의 대장동 수사, 대북송금 수사 등에서 치부가 드러날 공산이 크다. "배를 가르겠다고 했다"는 폭로에 이어 '연어회 술 파티' 논란도 점차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
물론 여야가 함께 국정조사와 특검 수사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지만 막상 실제 협상 과정에서 틀어지고 말로 그칠 가능성도 없지 않다.
하지만 여야가 동시에 진상 규명을 요구하면서 '행동'에 돌입한다면 정성호 법무장관과 함께 이 대통령을 수사했던 검사들이 대거 국회나 특검 조사를 받을 수도 있다.
▲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오른쪽)가 10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왼쪽은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 <연합뉴스>
여야는 양쪽 모두 전투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김병기 원내대표는 "조직적 항명에 가담한 강백신 검사 등 관련자 모두에게 단호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며 "조작 수사와 정치공작의 시대는 반드시 끝내겠다"고 말했다.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전날인 9일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대장동 사건 관련 비리 자금 7800억 원의 국고 환수가 불가능해지게 만든 게 이번 항소 포기 사건의 핵심적 실체"라며 "국회 차원의 긴급 현안 질의를 즉시 열고 국정조사부터 신속히 진행하자"고 촉구했다. 조성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