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경 기자 huiky@businesspost.co.kr2025-10-21 16:3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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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범수 경영쇄신위원장이 21일 양천구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선고공판을 마친 뒤 법원을 떠나고 있다. <연합뉴스>
[비즈니스포스트]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가 ‘SM엔터테인먼트 인수 과정에서 불거진 시세조종’ 혐의에 대해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검찰의 징역 15년 구형을 뒤집은 판결이다.
지난해 김범수 창업주의 구속수사 이후 고조되어왔던 사법리스크가 일부 해소되며 카카오 그룹은 전반에 드리워졌던 경영 불확실성을 털어내고 반등의 기회를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
21일 오전 서울남부지방법원 형사합의15부는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에게 1심 무죄를 선고했다. 같은 혐의로 기소된 배재현 전 카카오 투자총괄대표, 주식회사 카카오와 계열사 카카오엔터테인먼트도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번 사건의 핵심은 2023년 2월 하이브의 SM엔터테인먼트(이하 SM엔터) 공개매수 마지막 날 카카오 측이 약 1천억 원을 투입해 장내에서 SM엔터 주식을 매수한 행위가 시세조종에 해당하는지 여부였다. 검찰은 김 창업자가 원아시아파트너스 등과 공모해 300회 이상 주가를 인위적으로 끌어올렸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선고 공판에서 카카오 측의 장내 매수가 시세조종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다. 재판부는 “매수 비율, 간격, 물량 주문 등을 살펴봐도 매매가 시세 조종성 주문에 해당한다고 볼 근거가 충분하지 않다”고 말했다.
또 장내 매수 과정에서 김 창업자가 매매 행위의 승인과 지시에 주도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봤다. 사모펀드와 공모한 것으로 검찰이 판단할 때에 결정적 근거가 됐던 핵심 증인 이준호 전 카카오엔터테인먼트 투자전략부문장의 증언도 신빙성이 결여된다고 인정됐다.
1년 가까이 이어진 재판은 검찰의 강도 높은 수사로도 주목받았다. 검찰 측은 이날 선고 전까지 김 창업자의 유죄를 확신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재판부는 선고 과정에서 “이 사건과 직접 관련이 없는 별건 수사를 통해 피의자나 관련자를 압박해 진술을 확보하는 수사 방식은 진실을 왜곡할 수 있다”며 “수사기관이 어디든 이런 방식은 이제는 지양돼야 한다”고 이례적인 비판을 내놓았다.
김 창업자는 이번 무죄 판결로 법적 부담을 다소 덜게 됐다. 지난해 8월 구속 수감돼 100일 동안 구치소 생활을 했고 암 수술과 재수술을 받는 등 건강 악화로 경영 일선에서 한동안 물러나 있었다. 또한 올해 초에는 김건희 여사 관련 의혹을 수사 중인 특검으로부터 ‘집사 게이트' 관련 소환 조사가 예고되는 등 시련이 이어져왔다.
▲ 사진은 카카오 성남 판교 본사의 모습.
카카오는 김 창업자의 사법리스크로 기업 전반의 주요 의사결정에 제약을 받아왔다.
김 창업자는 2023년 11월 ‘경영쇄신위원회’를 출범시키고 직접 위원장을 맡아 경영쇄신 작업을 추진해왔지만 재판과 건강 등으로 위원장직을 내려놓았다.
AI 사업에서도 김 창업자가 직접 카카오브레인 대표직을 맡을 정도로 관심을 기울였지만 카카오브레인은 본사에 통합됐고 AI 기술력에 있어서도 경쟁사와 비교해 경쟁력이 뒤처진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 창업자의 건강 등 문제로 경영 일선에 복귀하지 않더라도 그룹에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전문 경영진을 중심으로 사업에 추진력이 더해질 수 있다는 판단이다.
카카오 그룹도 그간 기업 신뢰도 및 사업 추진에서 발목을 잡았던 사법리스크를 상당 부분 해소했다.
금융 계열사인 카카오뱅크의 대주주 적격성 문제나 스테이블코인·핀테크 사업의 인허가 과정에서 제기됐던 불확실성을 상당 부분 털어낼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로 이날 오전 중 1심 판결이 내려지자 카카오 주가는 뛰기 시작해 전날보다 5.95%(3500원) 높은 6만2300원에서 거래를 마쳤다.
김 창업자는 법정을 나서며 “오랜 시간 꼼꼼히 자료를 검토해주신 재판부에 감사드린다”며 “그동안 카카오에 드리워진 주가조작과 시세조종의 그늘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회사 측도 “그간 카카오는 시세조종을 한 부도덕한 기업이라는 오해를 받아왔다. 1심 무죄 선고로 그러한 오해가 부적절했음이 확인된 것이라고 이해한다”며 “급격한 시장 변화에 기민하게 대처하기 힘들었던 점은 뼈아프다. 이를 만회하고 주어진 사회적 소명을 다하기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검찰은 재판 결과를 검토한 뒤 항소 여부를 검토할 예정이다. 검찰의 구형량과 판결 간의 격차가 큰 만큼 항소심에서 법적 공방이 이어질 가능성도 크다.
다만 법원이 증거 부족을 이유로 검찰의 의견을 배제한 점과 별건 수사관행을 비판한 점을 감안하면 항소심에서도 유사한 결론이 내려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정신아 대표는 이날 사내 공지를 토해 “3년 가까이 카카오를 따라다닌 무거운 오해와 부담이 조금은 걷힌 날”이라며 “최종 결론까지 시간이 더 필요할 수 있지만 카카오가 ‘위법한 기업’이 아니라는 점이 법적으로 확인된 것은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정희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