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는 책 '선악의 저편'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과정에서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사회악이나 부당한 제도 및 관행과 맞서 싸우는 과정에서 비판하는 대상과 닮아갈 가능성을 경계하는 말이다.
윤리적 투쟁 혹은 개혁을 추진하면서 방법과 절차를 지켜야 하며 언행에도 정당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이재명 정부는 과거 어떤 정부 이상으로 니체가 비유한 '괴물'이 될 가능성을 스스로 경계해야 할 필요성이 크다.
윤석열 전 대통령에 의해 1987년 민주화 이후 최초로 선포된 비상계엄 사태를 극복하고 우여곡절 끝에 출범했다는 배경을 갖고 있어서다.
'검찰 독재'라는 비판을 받았던 윤석열 전 대통령은 재임 기간 내내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지칭하는 등 거친 언사로 나라를 분열시켰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 뒤 윤 전 대통령은 불법적 비상계엄을 선포하며 탄핵당했다. 국가의 안전을 위협한 내란 혐의뿐 아니라 온갖 부정부패와 비리, 직권남용을 저질렀다는 의혹에 대해 구속된 상태로 특검 수사를 받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윤 전 대통령 재임 당시 제1야당 대표로서 전방위적 검찰 수사에 시달려야 했다. 계엄이 성공했다면 군대에 잡혀가 생사의 기로에 설 수도 있었다.
이렇듯 천신만고 끝에 취임한 만큼 이 대통령은 지난 3년간 여러 분야에서 후퇴한 우리나라를 정상화하기 위해 밤낮으로 노력하고 있다.
그런 열정과 노력은 주요 여론조사에서 이 대통령의 대선 득표율을 넘어서는 과반 이상의 긍정적 국정 평가로도 이어지는 모습이다.
하지만 이 대통령은 우리 사회의 악습과 잘못된 관행을 개선하려는 과정에서 센 말을 종종 내놨다. 일례로 건설사 사망사고를 근절하기 위해 국무회의에서 '면허 취소'를 꺼내든 일을 꼽을 수 있다.
이 대통령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는 누구라도 알 수 있다. 국정 최고 책임자가 강력한 의지를 보여 건설 현장 안전을 다잡겠다는 취지로 읽힌다.
하지만 여러 언론에서는 대형 건설사가 면허 취소를 당하면 주요 재건축 현장이 멈추고 협력업체의 밥줄이 끊긴다는 부류의 기사가 이어졌다.
결국 국토교통부 장관이 국회에 나와 현행 법체계에서는 사망사고만으로 면허 취소는 힘들다는 발언을 내놓기도 했다.
건설을 비롯한 여러 산업 현장에서 사람이 생명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사회적 대의가 '밥그릇이 사라질 수 있다'는 현실론에 자칫 힘이 빠질 수도 있게 된 셈이다.
그런 만큼 이 대통령은 건설 안전과 관련해 경각심을 불러일으킬 센 말을 내놓는 후속 대책을 정교하게 만드는 일에 좀 더 신경 써야 한다.
원전 관련한 이 대통령의 취임 100일 기자회견 발언 역시 불필요한 논란을 부른 사례로 꼽힌다.
▲ 이재명 대통령이 11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에너지를 비롯한 주요 정책 방향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
이 대통령은 기자 회견에서 "원자력 발전소를 짓는 데 최소 15년이 걸린다" "원자력 발전소 지을 데도 없다" "소형모듈원자로(SMR)는 기술 개발도 아직 안 됐다" 등 국정 최고책임자답지 않은 정제되지 않은 발언을 내놨다.
물론 이는 기후 위기와 AI(인공지능) 시대를 대비하기 위한 재생에너지 중심의 정책을 강조하려는 뜻에서 나온 말로 여겨진다.
하지만 이내 "10년이면 지을 수 있다" "원전 건설을 희망하는 지자체가 있다" "탈원전을 재추진하는 것이냐" 등의 반박이 야당뿐 아니라 각계에서 흘러나왔다.
기후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재생에너지 확대는 전 세계적 흐름이다. 다만 그 과정에서 나타날 에너지 부족과 가격 상승을 보완하기 위한 원전 활용 움직임 역시 각국에서 활발하게 나타나고 있다.
한국은 서방 국가 가운데 원전을 '예산과 납기 안에' 지을 수 있는 유일한 나라로 평가받는다. 그런 나라의 대통령이 탈원전으로 여겨질 발언을 내놓으면 원전 산업의 수출 가능성은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
경쟁자들이 "너희 나라도 안 짓는 원전을 다른 나라에서 만들겠다고 하나"라고 비판하면 할 말이 없어진다. 원전 관련 생태계도 흔들릴 소지가 크다.
이밖에 이 대통령은 최근 국무회의에서 물가안정을 강조하면서 "조선 시대 때도 매점매석한 사람을 잡아 사형시키고 그랬다"는 발언을 내놓기도 했다.
정부가 가격 담합을 통제해야 한다는 취지지만 유통 체계 개선 같은 장기적 해결책을 내놓기 보다는 우선 기업의 팔만 비틀려 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심리학에 '자기–타인 귀인 편향(Self–Other Attribution Bias)'이라는 이론이 있다. 인간은 자신을 복잡하고 합리적인 존재로 인식하는 반면 타인을 단순한 틀로 평가하는 경향을 가진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은 윤석열 정부의 비상계엄을 극복하고 취임한 만큼 한동안 흔들렸던 나라를 되돌리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목표의 정당성에 기반해 복잡한 이해 관계가 걸린 어려운 문제를 '쾌도난마(快刀亂麻)' 식으로 단순하게 접근하려는 듯한 태도가 센 말을 통해서 엿보인다.
센 말이 목표의 정당성을 흐리게 하고 동력을 떨어지게 만드는 경우는 흔하다. 산업 안전과 에너지 전환, 물가 안정이라는 공동체의 목표로 가는 과정이 센 말에 발목 잡혀서는 안 된다.
사실 센 말은 문제를 해결하는데 전혀 힘을 쓰지 못한다.
이재명 정부는 이제 시작이다.
이재명 정부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말부터 더욱 정교하게 가다듬어야 한다. 박창욱 건설&에너지부장(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