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철 기자 dckim@businesspost.co.kr2025-09-30 14:3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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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 등에서 한미 관세협상과 관련해 3500억 달러 대미투자를 철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면서 관세협상에 미칠 영향에 관심이 모인다. 더불어민주당, 조국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소속 의원들이 25일 국회 로텐더홀에서 대미투자 철회 결의안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윤종오 진보당 의원 페이스북>
[비즈니스포스트] 한미 관세 협상이 대미 투자 방식 등을 둘러싼 이견으로 난관에 봉착한 가운데 더불어민주당 일각과 조국혁신당을 중심으로 ‘3500억 달러 대미 투자'를 철회하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교착 상태에 빠진 협상에서 이재명 정부의 협상력을 높일 레버리지를 마련해 주려는 의도로 보이지만 다른 쪽에서는 한미 관계에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30일 정치권 움직임을 종합하면 범여권 일각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우리나라와 합의한 3500억 달러 대미 투자를 두고 미국 쪽이 직접 투자를 고집하고 미국에 유리한 수익 배분 구조까지 요구하자 이를 철회하자는 목소리가 확산하고 있다.
앞서 민주당, 조국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소속 국회의원 65명은 25일 미국의 3500억 달러 대미 투자 요구 철회 및 한국 노동자 인권보장 촉구 결의안을 발의했다. 민주당 소속 의원 51명도 여기에 이름을 올렸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우리나라를 향한 미국의 대미 투자 압박을 두고 일본 등 5개국이 1985년 미국과 맺었던 환율 조정 합의인 ‘플라자 합의’에 빗대며 비난 수위를 높이고 있다. 일본은 플라자 합의를 체결한 뒤 엔화 가치가 급격히 상승하며 수출에 큰 타격을 입었다.
황명선 민주당 최고위원은 29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3500억 달러 대미 투자가 선불이라는 발언을 두고 “한국판 플라자 합의 요구이자 전범국에나 물리던 묻지마 배상금”이라며 “결코 동맹 간 정상적인 협정이라 볼 수가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진보당 등 야권뿐 아니라 민주당과 조국혁신당까지 이처럼 대미투자 철회 목소리를 내는 배경에는 한국 내에서 미국 요구에 대한 반발이 크다는 점을 보여줌으로써 우리 정부가 관세협상 테이블에서 미국에 요구 수준을 누그러뜨릴 명분을 조성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조국조국혁신당 비대위원장은 29일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당장 본회의를 열어 결의안을 통과시키고 그 결의안을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 정부에 보내자”며 “이재명 대통령이 국회를 지렛대 삼아 당당하게 협상할 수 있도록 힘을 모아주자”고 말했다.
그러나 대통령실 내부에서는 범여권의 강경 발언을 두고 불편한 기색도 감지된다. 미국을 향한 여권의 강성 메시지가 오히려 통상 협상에 불필요한 부담을 줄 수 있음을 시사한 것으로 읽힌다.
▲ 위성락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이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진행된 출입 통신사 기자들과 인터뷰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위성락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은 29일 한일 정상회담 관련 간담회에서 “미국에 대해 (여권에서) 나온 이야기들이 협상의 레버리지가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며 “미국과의 협상은 상당히 첨예한 상황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가용 가능한 카드를 운용해야 하지만 ‘오버 플레이’는 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의 요구가 우리나라 경제 규모 등을 고려할 때 무리한 수준인 것은 분명하지만 관세협상 자체가 무너질 수 있는 ‘대미투자 철회’ 언급은 위험하다는 지적인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이 대미 투자 규모 증액까지 원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치권에서 나오는 강경 발언은 한국이 관세협상을 마무리 지을 의지가 없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가능성도 없지 않다.
우석진 명지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29일 MBC라디오 뉴스하이킥에서 “미국은 소비자의 천국이기 때문에 그 시장을 포기하고서는 우리가 살 길이 없다”며 “내수가 약하고 대외부분이 큰 우리나라는 궁극적으로 딜을 만들어야한다”고 말했다.
실제 미국의 일방적 관세협상 요구에 강경한 대응 기조를 나타냈던 캐나다와 EU도 입장을 선회한 바 있다.
마크 캐니 캐나다 총리는 올해 3월 총리에 취임한 뒤 첫 연설에서 “캐나다 경제를 약화하려고 시도하는 누군가가 성공하도록 놔두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대미 협상에서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했고 지난 6월 트럼프 대통령이 캐나다의 '디지털 서비스세'(DST)를 트집 잡아 무역 협상을 중단하겠다고 하자 DST를 폐지했다.
결국 캐니 총리는 올해 7월 트럼프 대통령의 영향으로 전 세계 상업 환경이 바뀌었다는 것을 캐나다 국민이 인식할 필요가 있다며 사실상 한 걸음 물러섰다.
스테판 세주르네 유럽연합(EU) 번영·산업전략 수석 부집행위원장도 지난 8월 프랑스 언론 인터뷰에서 EU가 미국에 굴복했다는 지적에 관해 “힘의 균형이 유럽인들에게 유리하지 않았다”며 “EU 집행위의 임무는 갈등의 확대를 피하고 '노딜'을 막는 것이었다”고 강조했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한미 통상협상이 안보 분야 한미 동맹과 연결돼 있다는 점도 문제다. 미국과 관세협상이 틀어졌을 때 25% 관세율 적용에 더해 안보불안을 야기할 가능성도 크다.
홍현익 전 국립외교원장은 26일 SBS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서 “문제는 (미국이 관세를) 25%가 아니라 50%로 또 올릴 수도 있기 때문에 우리가 강하게 나가되 우호관계는 반드시 유지해야 된다”며 “우리는 또 안보 문제가 있어서 일부러 미국한테 척지고 그럴 필요는 전혀 없다”고 짚었다.
홍 전 국립외교원장은 “우리로서는 내가 죽게 생겼는데 어떻게 하냐, 도저히 못하겠다, 이런 식으로 나가야지 미국을 비난하고 국제사회에 나가서 욕하고 이런 거는 전혀 할 필요가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한듯 민주당 지도부에서는 정부에 대한 신뢰 메시지를 강조하고 결의안에 대한 공식적 입장을 내지 않고 있다.
김병기 민주당 원내대표는 전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이재명 정부는 안보와 경제 동맹국으로서 신뢰와 협력의 원칙을 지키면서 국익을 최우선으로 신중하게 대응하고 있다”며 “민주당은 경제주권과 국민의 삶을 지키려는 이재명 정부의 대응과 협상을 적극 지지하고 가능한 모든 지원을 다 하겠다”고 강조했다. 김대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