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미국에서 최근 소형모듈원전(SMR)뿐 아니라 대형 원전 건설까지 급물살을 타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다만 미국 내 원전 공급망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한국과 협력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시각이 나온다.
이에 두산에너빌리티가 SMR 주기기와 대형 원전의 원자로와 증기발생기 등에서 수주 기회가 넓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 두산에너빌리티가 미국에서 SMR과 대형원전 건설이 빨라지면서 수주 기회가 넓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26일 블룸버그와 로이터 등 외신을 보면 미국 전력 단지 개발업체 페르미아메리카(Fermi America, 이하 페르미)는 대형 원전 프로젝트에 필요한 자금 조달을 목적으로 나스닥과 런던 증시 상장을 위한 본격적인 기업공개(IPO) 절차에 들어갔다.
페르미의 공동창업자인 릭 페리(Rick Perry)는 로이터에 "미국 공모를 통해 최대 131억 6천만 달러(약 18조4500억 원)의 기업 가치를 목표로 한다"고 말했다.
페르미는 미국 텍사스주 아마릴로 인근에서 ‘프로젝트 마타도르(Project Matador)’를 추진하고 있다. 대형 원전 4기와 2기가와트(GW) 규모의 SMR, 가스·재생에너지 발전 설비 등 총 11GW 규모의 초대형 전력단지를 개발한다.
프로젝트 마타도르는 총 4단계에 걸쳐 진행된다. 가스와 에너지저장장치에 이은 1GW 규모 대형 원전은 3단계 사업으로 내년 3분기 착공, 2031년 3분기 준공을 목표로 한다. 그 뒤 추가로 최대 5기의 대형 원전과 SMR을 설치한다는 계획이 마련돼 있다.
프로젝트 마타도르는 미국 내에서 가장 공격적인 원전 건설 계획을 가진 것으로 평가된다. 이는 부지와 설비 조달 등 초기 사업 준비가 잘 되어 있는 데다 페르미가 신생업체임에도 경영진들의 정치적 기반이 단단하다는 점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릭 페리는 트럼프 정부 1기 당시 에너지부 장관을 지낸 인물로 에너지 기업 친화 정책을 주도한 경력을 갖고 있다. 페르미의 또다른 공동창업자인 사모펀드 금융인 토비 노이게바우어(Toby Neugebauer)는 미국 정치권에서 공화당 정치자금 기부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들은 프로젝트 마타도르 사업 가운데 원전 캠퍼스 이름을 '도널드 트럼프'로 지어 트럼프 대통령의 집권기에 정책적 보조를 맞추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도 지난 5월 원자력규제위원회(NRC)가 신규 원전 허가를 18개월 이내로 기존의 절반 수준으로 줄인다는 행정명령을 내렸다. 이를 통해 현재 약 100GW인 원전 에너지 용량을 2050년까지 400GW로 확대한다는 목표를 내걸고 우선 2030년까지 미국 내 대형 원전 10기를 착공한다는 계획도 세워뒀다.
특히 페르미는 최근 한국수력원자력 및 삼성물산, 현대건설뿐 아니라 두산에너빌리티와도 원전 개발 수행과 지분 투자 및 기자재 공급 가능성을 포함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프로젝트 마타도르 사업에 대형 원전 주기기뿐 아니라 SMR 기자재 공급까지 준비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 NRC에서 발급한 통합운영허가(COL)가 유지되고 있어 빠른 착공을 기대할 수 있는 원전으로는 넥스테라(NEXTERA)의 자회사 FPL가 추진하는 '터키 포인트 6&7 프로젝트'와 듀크에너지(DUKE ENERGY)의 '윌리엄 스테이츠 리(Willams States Lee) 1&2 프로젝트' 등이 꼽힌다.
이 외에도 웨스팅하우스가 지난 6월 NRC에 4GW 규모의 대형 원전 운영허가 신청을 제출해 심사가 진행되고 있다.
이렇듯 미국에서 대형 원전이 급물살을 타고 있지만 현지 공급망이 원활하지 않아 한국을 비롯한 동맹국과 협력이 중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공급망 솔루션업체 엑시거(EXIGER)의 브랜든 대니얼스 최고경영자(CEO)는 CNBC에 "원전에는 다양한 특수 부품이 필요하지만 대형 원자로 압력 용기 및 이와 관련한 부품이 더 이상 미국에서 제조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대니얼스 CEO는 두산에너빌리티를 예로 들며 "미국 조지아주 보글(Vogtle) 원전에서 들어간 원자로 용기와 증기발생기를 제작했다"고 설명했다.
▲ 미국 조지아주 웨인스보로에 위치한 보글 원전의 모습. 두산에너빌리티가 보글 원전의 원자로 용기와 증기 발생기를 제작했다. <조지아파워>
원전업계에 따르면 두산에너빌리티는 한국형 원전인 AP1400뿐 아니라 웨스팅하우스의 AP1000 모델 주기기를 모두 제작한 경험과 역량을 갖추고 있다.
미국 에너지부(DOE)에서도 정책보고서를 통해 미국의 원전 공급망이 취약해 외국 공급자를 활용할 필요성을 언급한 바 있다. 또 '월드 뉴클리어 뉴스(World Nuclear News)'를 비롯한 전문매체들도 외국 공급업체와 협력이 중요해지고 있다고 보도하면서 원전 역량이 강한 한국 업체와 협력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점을 시사했다.
두산에너빌리티로서는 미국에서 향후 대형원전 수주 기대를 키울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는 셈이다.
증권업계에서는 오는 10월 말 경북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에서 정상회담을 통해 한국과 미국의 원전 협력이 다시 부각될 가능성이 나온다.
문경원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미국에서 밸류체인이 채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대형 원전 시장이 급박하게 개화하면 한미 원전협력에 대한 필요성은 더욱 커진다”며 “대형원전과 SMR 시장의 성장 동력은 꾸준히 구체화되고 있는데 경주 APEC 정상회담을 통해 한미 원전협력이 다시 부각될 가능성이 있다”고 바라봤다.
이뿐 아니라 두산에너빌리티는 SMR에서도 내년부터 수주를 늘릴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된다.
두산에너빌리티는 지난 한 달 동안 미국의 뉴스케일파워 및 엑스에너지와 각각 최대 6기가와트(GW) 규모의 대형 계약을 추진했다. 뉴스케일파워와 엑스에너지가 만드는 SMR은 2030년대 초반부터 단계적으로 운영될 계획인데 5년 이상의 건설 기간을 감안하면 두산에너빌리티가 맡을 기자재는 내년부터 제작된다는 것이다.
이민재 NH투자증권 연구원은 "두산에너빌리티의 현재 생산능력으로 볼 때 총 12GW의 SMR 계약이 진행된다면 5년 치 일감을 확보하게 되는 셈"이라고 분석했다.
이 연구원은 "앞으로 더 진행될 SMR 프로젝트를 감안하면 증설은 불가피하다"며 "두산에너빌리티는 내년까지 증설 관련 세부 계획을 발표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박창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