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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리포트 9월] 관현악곡 볼레로, 인덱스펀드 그리고 ETF의 변심

이지형 부국장  liji@businesspost.co.kr 2025-09-03 08: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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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포스트] 바이올린은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다가도 어느 순간 오케스트라 전체에 홀로 맞서 자기 선율을 낸다. 연주자의 열정과 선율의 격정은 너무 인상적이어서, 미국의 한 문학평론가는 바이올린의 출현에서 ‘근대적 개인’의 탄생을 봤다. 

얼마 전 프랑스 작곡가 모리스 라벨의 관현악곡 ‘볼레로’(1928년)를 들으면서 비슷한 상상을 했다.
 
[데스크리포트 9월] 관현악곡 볼레로, 인덱스펀드 그리고 ETF의 변심
▲ ETF의 전성기다. 최근 국내 증시에서 ETF 거래대금이 전체 유가증권 거래의 절반에 육박했다.<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볼레로는 연주가 지속되는 17분 동안 악기의 수와 음량을 천천히, 쉬지 않고 증폭시킨다. 들릴락 말락 한 플루트·클라리넷 소리에서 시작한 소리가 금관악기와 타악기·현악기를 끌어들이며 절정에 이르는 동안 볼레로는 중단 없는 ‘우상향’을 시연한다. 

볼레로의 우상향은 자본주의의 상징으로 읽히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자본주의 기업의 전략회의는 우상향의 그래프들을 얻기 위한 웅성거림, 몸부림이다. 매출을, 영업이익을, 당기순이익을, 주가를, 시가총액을 전년보다 끌어올려야 한다. 

지난해보다는 올해, 올해보다는 내년의 수치를 더 키워야 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자본의 욕망을 우상향의 그래프가 형상화한다. 가파를수록, 우상향은 아름답다. 

자본주의의 우상향 욕구는 50년 전(1976년), 인덱스펀드(주가지수 연동형 펀드)라는 희대의 발명품을 주식시장에 내놓았다.  

인덱스펀드는 돈이 될 종목들을 찾아 헤매지 않는다. 노심초사하지도 않는다. 그저 주가지수의 흐름에 돈을 맡기기로 작정할 뿐이다.

가장 효과적인 투자 전략은 시장의 평균 수익률을 따르는 것이다. 시장을 이기려 말라, 시장을 통째로 사라……. 

인덱스펀드의 출현과 생존엔 자본주의의 우상향에 대한 굳건한 믿음이 깔렸다.

인덱스펀드의 진화 과정에서 ETF(상장지수펀드)가 탄생했다. 인덱스펀드가 나오고 17년이 지난 1993년의 일이다(한국에선 2002년에 첫 ETF가 나왔다). 

인덱스펀드는 자본주의 신화의 지원을 받지만, 소소한 한계를 지녔다. 실시간 거래가 불가능하다. 환매에 여러 날이 걸려 최종 수익을 예측하기 어렵다. 

ETF도 인덱스펀드처럼 지수를 추종하지만, 주식처럼 실시간으로 사고판다. 움직임이 가볍다.

인덱스펀드의 똑똑한 후예인 ETF가 요즘 세계 주식시장에서 최종적 승리를 거두는 모습이다. 지난 8월 미국 증시에 상장된 ETF는 4300개를 넘겼다. 미국 주식시장에 상장된 기업 수는 4200개다. ETF가 상장 종목 수를 추월했다. 

한국에서도 상장 ETF 수가 지난 달 1000개를 넘겼다. 한국거래소에 상장된 전체 종목 수는 3000개를 밑돈다. 지난달 한때 ETF 거래대금은 전체 유가증권 거래대금의 절반에 육박했다. 

그런데 개인투자자 쪽에서 보면 ETF는 똑똑한 걸 넘어 사악하다. 또는 불안하다. 

원론적 측면에서 인덱스펀드와 ETF의 목표는 같다. 장기 분산 투자를 지향한다. 몸을 날래게 하고, 무대도 늘렸지만, ETF의 원래 취지도 자본주의의 우상향 신화에 제 몸을 맡기는 거다.

그런데 ETF는 다양화를 시도하는 과정에서 변질된다. 초심을 잊는다.

다양한 국가와 산업과 테마에 투자할 수 있게 해준다는 명분은 훌륭하다. 하지만 파행을 부른다. 가령 코비드 정국에서 쏟아진 메타버스 ETF들은 다 어디로 갔나. 상장폐지 됐거나 다른 이름 뒤에 숨었다. 

지금도 수많은 투자자의 애를 태우는 2차전지 ETF는 또 어떤가. 투자금이 일시에 폭발적으로 몰리면서, 몇 개 안 되는 관련 기업의 시총을 지나치게 부풀렸다. 지금까지의 성적만 본다면 거품 조성의 혐의를 지울 수 없다. 

또 다른 쪽에선 거래량이 거의 없는 ‘좀비 ETF’까지 유령처럼 돌아다닌다.

ETF가 언제부터인지 자본주의 우상향의 신화에 대한 믿음을 배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운용 현실을 보면, 장기 분산 투자의 본질과 너무 멀어져 있다. 

진화가 지나쳤는지 자기의 원형인 인덱스펀드와는 다른 길을 가는 중이다. ETF에 돈을 맡기는 투자자들은 자주 갈지자 행보를 보인다. 나타났다 스러지는 갖가지 테마는 투자보다 투기를 자극한다. 개별 종목에 대한 투자가 차라리 신중해 보인다.

ETF 투자에 앞서 라벨의 볼레로를 들으며 자본주의의 우상향 신화에 대한 믿음을 공고히 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그게 주식시장의 대세가 된 ETF도 살고, 개인투자자도 사는 길이다. 

그런데 별로 길지도 않은 볼레로 전곡을 감상하다 보면, 이런저런 사연을 뛰어넘는 불길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자본주의의 우상향 신화는 정말 공고한 걸까. 아름다운 우상향은 영원할까. 

볼레로의 선율은 절정에 이르는 바로 그 순간, 자신을 무너뜨린다. 1초도 안 되는 동안이지만, 격렬한 몰락을 보여준다. 

라벨의 볼레로는 1928년 겨울 파리에서 초연됐다. 이듬해인 1929년 바다 건너 미국에선, 세계를 한참 동안 우울에 빠뜨릴 대공황이 시작됐다. 이지형 금융증권부장(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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