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영상 SK텔레콤 대표이사 사장(가운데)이 7월4일 서울 SK텔레콤 본사 T타워 수펙스홀에서 기자간담회를 진행하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비즈니스포스트] 일상과 관련이 많은 분야를 담당하는 기자들은 친지와 동료 등 주위 사람들로부터 출입처 관련 질문을 많이 받는다. 민원성 질문을 하기도 한다. 기자니까 뭘 많이, 남보다 빨리 알 줄 '잘못' 알고 물어보는 경우가 많다.
통신서비스 담당 기자한테도 마찬가지다.
2000년대 초까지는 "요즘은 어떤 단말기가 좋으냐?", "공짜 단말기를 구할 방법이 없을까?", "아이가 집을 나갔는데, 휴대전화 위치 좀 확인해줄 수 없을까?" 같은 문의가 많았다.
당시는 이동전화 사업자가 5곳이나 되고, 단말기 제조업체도 지금은 사업을 접었거나 사라진 LG전자·팬택·모토롤라·노키아·소니 등까지 포함해 예닐곱 곳에 달했다. 그만큼 마케팅 경쟁이 치열했고, 그 과정에서 새 단말기가 공짜로 뿌려지는 경우도 많았다.
새 단말기를 출시할 때마다 기자들에게 먼저 써보라고 돌리고, 신제품 발표 행사장에 쌓아놓고 나갈 때 하나씩 들고가라고 하기도 했다. 당시는 휴대전화 기능이 단순해 가격이 지금처럼 비싸지는 않았다. 하지만 내 전 직장(한겨레)은 내부 윤리 기준이 워낙 엄격해, 거저 준다고 해도 감히 손을 내밀지 못했다.
이후 인수합병과 사업 구조조정 등으로 이동통신 사업자와 단말기 제조업체가 각각 3개와 2개로 줄며 '공짜 단말기'는 종적을 감췄다. 이른바 '영란법'도 한 몫 했다.
자녀 휴대전화 위치 확인 요청은 서울대 출신 부모에게서 많았다.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 내지 '그 문제를 어떻게 틀릴 수 있냐'는 생각을 가진 부모 밑에서 크다 보니 성적 스트레스가 심했을테고, 당연히 '숨 쉴' 공간을 찾아 가출을 감행하는 사례가 많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만 해도 이동통신사 서버(컴퓨터)에는 접속(로그) 기록을 남기는 장치가 돼 있지 않아 '막걸리 한잔 나누며' 사정을 얘기하면 통했다. 기자들 뿐만 아니라 심부름 업체 직원들도 많이 했다.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개인정보와 사생활 보호 필요성이 강조되면서 법이 개정돼 접속 기록을 반드시 남기도록 했고, 이후에는 불가능해졌다.
그럼 2025년 칠석(8월29일)을 앞둔 요즘에는?
다른 언론사 통신담당 기자들은 모르겠고, 나는 "SK텔레콤이 중도 해지 위약금 면제 기한을 연말까지 연장할까?"란 질문을 많이 받는다.
앞서 방송통신위원회에 딸린 통신분쟁조정위원회(이하 분쟁조정위)가 지난 21일 SK텔레콤에 '해킹 사고에 따른 가입자 이동통신 서비스 해지 시 위약금 면제 기간을 올해 연말까지 연장하고, 유무선 결합상품 가입자에 대해서도 해지 때 위약금 50%를 면제하라'는 직권조정결정을 한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분쟁조정위는 위약금 면제 기간 연장 결정과 관련해선 "고객의 정당한 계약 해지권은 법률상 소멸 사유가 없는 한 그 행사 기간을 제한하거나 소멸시킬 근거가 없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결합상품 위약금 50% 면제 결정에 대해서는 "SK텔레콤이 안전한 통신서비스 제공이라는 계약의 주요 의무를 위반했다는 사실이 확인된 점과 결합상품 해지는 SK텔레콤의 과실에 따른 불가피한 조치"라고 밝혔다.
애플이 오는 9월9일 아이폰 신제품을 공개하겠다고 밝히면서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고 있다. 다른 '속내'가 보이지만, 모른 척 한다.
SK텔레콤은 분쟁조정위 결정 이후 "직권조정결정 내용을 면밀히 검토해 (수락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라고 되뇌왔다. 이 업체 관계자는 비즈니스포스트와 통화에서 "직권조정결정을 수락해도 분쟁조정을 신청한 2명 것만 면제한다"며 "언론의 잘못된 보도로 괜한 기대감을 갖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시민이 궁금해하면, 물어서 써야 하는 게 기자의 숙명이다.
▲ 방송통신위원회에 딸린 통신분쟁조정위원회가 지난 21일 SK텔레콤은 위약금 면제 기한을 연말까지로 연장하라는 직권조정결정을 했다. <연합뉴스>
SK텔레콤 쪽 설명을 종합하면, 이번 직권조정은 방통위에 딸린 통신분쟁조정위 결정이다. 이 업체 관계자는 "방통위 전원회의 심결과 달리 법적 강제력이 없는데, 언론이 방통위 결정인 것처럼 잘못 보도하고 있다"고 투덜댔다.
분쟁조정위 직권조정결정은 전기통신사업법 제45조의6 조항에 따른 것이다.
1항은 '분쟁조정위는 당사자 간에 합의가 이뤄지지 아니한 경우 도는 신청인의 주장이 이유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당사자들의 이익과 그 밖의 모든 사장을 고려하여 신청 취지에 반하지 아니하는 한도에서 분쟁조정위의 의결을 거쳐 직권으로 조정을 갈음하는 결정을 할 수 있다'고 돼 있다.
3항은 '당사자가 직권조정결정서를 송달받은 날로부터 14일 이내에 서면으로 이의를 신청하거나 수락의 의사를 표시하지 아니한 경우에는 직권조정결정을 불수락한 것으로 본다'고 명시돼 있다.
SK텔레콤이 직권조정결정서를 받은 날로부터 14일(이번의 경우 늦어도 9월 둘째주)이 지나도록 수락 의사를 밝히지 않으면 자동으로 결정이 무효화된다는 뜻이다. 신청인이 추가로 민사소송에 나서지 않으면 아무 일도 없었던 게 된다.
설령 SK텔레콤이 수락 의사를 밝혀도, 이번 결정에 따른 위약금 면제 대상은 이번 분쟁조정 신청인으로 제한된다. 우리나라에는 사업자들의 반대로 아직 집단분쟁조정(같은 피해를 당한 모든 사람에게 자동 적용) 제도가 도입돼 있지 않아서다.
다른 SK텔레콤 해지자들이 위약금 면제를 받으려면 각각 따로 분쟁조정 신청을 하거나 민사소송을 제기해야 한다.
다만, SK텔레콤이 가입자 보상을 통한 신뢰 회복 차원에서 지난 4월8일부터 7월14일까지로 잡았던 중도 해지(번호이동 포함) 위약금 면제 기한을 연말까지로 연장하기로 하면 다른 해지자들도 자동으로 혜택을 보게 된다.
분쟁조정위는 위약금 면제 기한 연장과 유무선 결합상품 위약금 면제를 요구하는 분쟁조정 신청이 각각 2건 접수됐다고 밝혔다.
한편, 업계에선 SK텔레콤이 연말쯤 가서 분쟁조정위 결정대로 중도해지 위약금 면제 기간을 연말까지로 연장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한 통신사 관계자는 "SK텔레콤이 충실한 가입자 피해 보상을 통한 신뢰 회복을 앞세웠으니 이번 분쟁조정위 직권조정결정은 물론 앞으로 나올 개인정보분쟁조정위 결정도 거부하기 힘들 것"이라며 "다만, 분쟁조정위 결정을 바로 수락하면 경영진이 배임에 걸릴 수 있다. 밀려서 어쩔 수 없이 수용하는 모습이어야 이사회를 통과하고 주주들의 반발도 줄일 수 있다고 경영진이 판단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른 통신사 관계자는 "연말 결정 뒤 신청을 받아 소급 적용하는 형식으로 가야 번호이동 중도해지 수요가 확산하는 것을 막고, 귀차니즘에 기대 위약금 반환 요청을 줄이는 것도 가능하다고 경영진이 판단할 수 있다"고 짚었다.
국정감사 때 의원들의 위약금 면제 기간 연장 촉구가 이어지고 시민단체와 소비자단체 쪽 요구도 거세지며 SK텔레콤이 좀 더 일찍 위약금 면제 기한 연장 방침을 내놓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미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가 논평을 내어 “분쟁조정위의 SK텔레콤에 대한 직권조정결정은 너무나도 당연한 결정”이라며 “SK텔레콤은 즉각 수락하라”고 촉구한 바 있다.
참여연대 측은 "SK텔레콤이 25종에 달하는 민감한 개인정보를 유출 당한 피해자들에게 기존에 내놓은 한 달치 요금의 50% 감면보다 더 많은 보상액을 지급해야 한다"며 "민관합동조사단 조사결과 이번 사태에서 SK텔레콤의 명백한 과실과 책임이 인정된 만큼, SK텔레콤이 국민 절반을 대상으로 한 끝장 소송전으로 갈 것이 아니라 1위 통신기업, 기간통신사업자로서 역할을 다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SK텔레콤은 공식적으로는 손사채를 친다. 이 업체 관계자는 "해킹 사태에 따른 가입자 대거 이탈로 2분기 실적이 꼬꾸라졌고, 하반기 실적으로 더 안좋을 것으로 예상된다. 추가 보상을 검토할 상황이 못된다"고 우는 소리를 했다.
이로써 오늘도 통신담당 기자로써 시민들이 내준 숙제 하나를 마쳤다. 이제 시민들이 행동할 차례다. 김재섭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