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철 기자 dckim@businesspost.co.kr2025-08-10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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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가 AI 기본법 하위 법령에서 산업 '규제'보다 '진흥'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비즈니스포스트] 'AI 기본법'으로 불리는 '인공지능 발전과 신뢰 기반 조성 등에 관한 기본법' 시행 5개월을 앞두고 하위 법령의 방향을 두고 논의가 구체화되고 있다.
AI 업계와 학계에서 '선 진흥 후 규제' 기조로 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일각에서도 AI 기본법에 담긴 규제를 유예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10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정치권의 움직임을 종합하면 2026년 1월 시행을 앞둔 AI 기본법의 하위법령 마련이 예정보다 한 달 넘게 지연되고 있다.
정부는 지난 1일 AI기본법 시행령과 고시, 가이드라인에 대한 의견을 수렴하는 회의를 개최하려다 연기했다. 하위법령에 대한 내부 조율이 더 필요하다는 판단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민주당에서도 AI 산업을 경제성장의 새로운 동력으로 설정한 이재명 정부의 방침에 발맞춰 AI 기본법의 시행에 앞서 보완 입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특히 정부가 한국을 대표하는 AI 모델을 개발하는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 구축 사업 참여팀 5개를 선정하고 소버린(주권) AI 개발을 시작한 만큼 국내 AI 생태계 조성에 방해가 되는 규제는 최소화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국정기획위원회 경제2분과 위원이기도 한 황정아 민주당 의원은 AI 기본법의 규제조항 시행을 3년 유예하는 AI 기본법 일부 개정안을 대표발의 하기도 했다.
황 의원은 개정안 발의 이유를 두고 “미국은 AI 관련 행정명령 폐기 및 혁신 중심 정책을 추진하고 EU와 일본을 포함한 전세계적 AI 트렌드가 ‘규제’에서 ‘진흥’으로 전환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AI업계는 현행 AI 기본법 속 규제 조항들이 추상적이라 자칫 산업 발전을 저해하는 쪽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바라본다.
AI 기본법 제31조에 규정된 ‘고영향 AI’가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AI 기본법 31조는 고영향 AI를 “사람의 생명·안전·기본권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AI’’로 정의하고 있다. AI 사업자는 '고영향 AI' 이용자에게 사전에 이를 고지해야 하고 고지 의무를 어기거나 시정명령을 위반하면 3천만 원 이하 과태료를 물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AI 기본법을 제정할 때 비교사례로 언급된 유럽연합(EU)의 AI법은 ‘고위험 AI’만 규제한다. 반해 우리는 ‘고영향’으로 규제 대상을 넓혀 특별한 문제가 없는 AI서비스임에도 과도한 규제가 적용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AI는 자율주행, 의료기기, 채용 평가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는데 어떤 AI까지 고영향 AI로 분류할지, 그에 따른 책임 소재는 어떻게 정할지 등이 불분명하다.
박상철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최근 국회에서 열린 ‘AI 시대 한국형 기본법의 길을 묻다’ 토론회에서 “현행 AI 기본법은 고영향 AI로 간주되는 범위가 너무 넓어 사업자의 도전적 개발을 막는다”며 "AI 기본법은 사실상 모든 생성형 AI를 고영향 AI로 간주해 사업자에게 획일적으로 고지·표시 의무를 지게 할 수 있다"고 바라봤다.
AI 사업자를 ‘개발사업자’와 ‘이용사업자’로만 구분하는 것도 적철치 않다는 비판이 나온다.
AI 개발은 단일 기업이 모든 것을 해결하는 방식이 아니라 다양한 주체들이 협력하고 역할을 나누는 복잡한 생태계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개발’과 ‘이용’이라는 두 개의 구분으로는 현실에 맞는 규제를 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어떤 기업은 AI 모델을 만들고 다른 기업은 그 모델을 특정 서비스에 적용하며 또 다른 기업은 서비스에 필요한 데이터를 제공하거나 클라우드 인프라를 지원하는 방식 등으로 역할을 나눠 수행한다.
윤혜선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7월30일 국회에서 열린 '균형잡힌 AI 생태계 조성‘ 정책토론회‘에서 “한국 AI기본법은 사업자의 정의를 과도하게 단순화해서 현실의 이해관계자를 다 고려하지 못하다보니 중간 단계 법적 주체들의 지위와 책임도 불분명하다”며 “기술 현실과 괴리된 규제 체계는 산업계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 배경훈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4일 인천 연수구 송도컨벤시아에서 'APEC 디지털 AI 장관회의' 관련 언론 브리핑을 진행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도 업계의 의견을 종합적으로 수렴한 뒤 산업 진흥에 중점을 둔 유연한 법 체계를 구축한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전해졌다.
배경훈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지난 7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AI 기본법에 관한 질의에 “해당 법을 두고 몇 년간 여러 차례 논의를 해왔고 규제보다는 산업 진흥에 방점을 찍고 있다”고 답변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 소속 이해민 조국혁신당 의원은 비즈니스포스트와 나눈 통화에서 “과기부에서 가져온 안들 중에 규제에 해당되는 내용이 좀 있었는데 법안소위에서 하위 법령 만들 때 규제 쪽으로 가면 안 된다는 의견을 냈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이어 “기본법은 전체적 거버넌스를 다루지만 하위 법령을 만들 때 반드시 입법 취지(인공지능의 건전한 육성)를 살려야한다”며 “지금 여야 모두 AI 산업 진흥을 위해 노력하자는 데에는 이견이 없을 것으로 보고 과기부에서도 하위 법령 방향성을 면밀히 검토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김대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