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예상보다 유럽연합(EU), 일본, 한국 등과 빠르게 관세협상을 타결하면서 단기적으로 미국 경제에 부정적 영향이 미치지 않았다. 하지만 관세협상의 후폭풍은 결국 피할 수 없을 것이란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8월7일 미국 워싱턴D.C.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내셔널 퍼플 하트 데이를 선포하는 선언문에 서명하며 연설하고 있다. <연합뉴스> |
[비즈니스포스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4월2일 세계 각국에 고율의 상호관세를 부과하며 “해방의 날”을 선포하자 이 관세가 미국 경제에 압도적으로 부정적 영향을 몰고 올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됐다.
시장은 즉각 상호관세에 부정적으로 반응해 4월7일부터 미국의 증시, 달러, 국채 모두가 이례적으로 폭락했다. 결국 트럼프는 상호관세가 발효되는 9일에 그 발효를 연기하고는 세계 각국과의 재협상에 들어갔다. 그리고 마감 시한인 지난 8월1일 전에 일본, 유럽연합, 한국 등과 관세협상을 잇달아 타결짓고 거액의 투자와 구매 약속을 받았다.
현재로서는 영국의 10%를 제외하면, 일본·유럽연합·한국의 15%가 거의 최저 수준의 관세이다. 미국 예일대 예산연구소(TBL)가 지난 7월31일 발표한 자료를 보면 7월30일 기준 미국 평균실효관세율은 18.4%로 대공황기인 1933년의 18.75% 이후 가장 높다.
이런 역사적 고율 관세에도 불구하고, 미국 경제의 부정적 영향은 아직 뚜렷하지 않아 경제 전문가 사이에서 논란이 확산하고 있다.
처음에는 ‘트럼프는 언제나 겁먹고 발을 뺀다’는 ‘타코’(TACO, Trump always chickens out) 효과로 치부됐다. 애초 상호관세 발효를 앞두고 시장의 붕괴에 놀라 그 발효를 유예한 것처럼 결국 적당히 꼬리를 내릴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하지만 7월이 지나고 8월이 가까워지면서 오히려 일본과 유럽연합이 찾아와 트럼프의 요구에 굴복하는 모습을 보였다. 고율의 관세가 현실화되는데도 미국 경제가 견조한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 전문가 사이에서는 경제 현실은 복합적 요인들이 함께 작용한 결과인데 그동안 관세 요인 하나만을 너무 과장하는 단순한 경제 모델로 복잡한 경제현실을 바라봤다는 반성의 목소리가 나왔다.
일단 관세 충격을 상쇄하고 증시 등이 역대 신기록을 경신한 것은 인공지능과 그 인프라에 대한 투자붐이 주요 요인으로 뽑힌다. 대형 기술기업들의 인공지능 인프라 투자액이 3500억 달러로 급증했고 중소기업들도 이에 편승하면서 경기 부양 효과 발생했다.
미국에서 수입품은 국내총생산의 11%에 해당한다. 미국 경제는 보건, 교육 등 관세 영향을 크게 받지 않는 여러 서비스 분야의 비중이 훨씬 크다.
고율 관세에서 가장 우려됐던 것이 물가 상승이다. 그런데, 소비자들은 석유값이 크게 떨어지며 물가상승에 시달리지 않는 모습을 보인이다. 미국이 부과할 고율관세는 세계 경제를 약화해 석유값을 내리는 압력으로 작용했고, 떨어진 석유값이 거꾸로 물가인하 효과를 가져온 것이다.
기업들이 고율 관세에 대비해 지난 연말과 연초에 걸쳐 대규모로 미리 물품들을 수입해 둔 점도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이에 더해 기업들은 트럼프의 감세법인 ‘하나의 크고 아름다운 법’으로 2025년에만 1000억 달러 이상의 기업 감세 효과를 제공받았다. 기업들 입장에서는 관세 부담을 소비자에게 전가하지 않고 흡수할 수 있는 여력이 생긴 셈이다.
달러 역시 예상과는 달리 약세를 보여, 미국 입장에서는 수출경쟁력에 도움이 되고 있다. 애초에는 관세율이 2.5%에서 15%로 급등함에 따라 연간 3000억 달러 이상의 관세 수입이 발생하고, 수입도 감소함에 따라 달러 강세가 예상됐다.
하지만 미국 경제의 불확실성을 예상한 외국 투자자들은 달러 자산에 대한 과도한 노출과 의존을 줄이려 했고 이에 달러 약세가 일어났다.
▲ 제이슨 퍼먼 전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 의장. <워싱턴포스트> |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 의장을 지낸 제이슨 퍼먼은 지난 31일 뉴욕타임스에 ‘관세를 발효됐다. 하늘은 무너지지 않았다. 경제학자들은 틀렸나?’라는 기고에서 트럼프의 관세가 예상과는 달리 재앙이 아닌 것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부분적으로 나를 포함한 경제전문가들이 관세 혼란 증후군에 시달리기 때문이다. 우리는 매일 아침마다 관세가 인상될 때마다 불비례적으로 대응하는 우리 자신들을 발견한다. 기업계와 금융시장도 역시 이런 증후군을 겪는다”고 적었다. 관세 효과에 너무 집착해 과잉 반응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퍼먼 전 의장은 “경기침체는 있을 것 같지 않지만, 관세 효과는 이제부터 시작이고 그 심각성은 적지 않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예일대 예산연구소는 트럼프의 관세 정책으로 올래 미국의 물가는 1.8%포인트 더 올릴 것이라고 추산했다. 이는 가구 당 수입이 올래 2400달러 감소하는 것과 같은 효과라고 이 연구소는 계산했다. 단기적으로는 신발과 의류 가격이 각각 40%와 38% 오르고, 장기적으로도 19%와 17%의 인상 효과가 유지될 것으로 내다봤다.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2025년과 2026년에 각각 0.5%포인트 감소에 이어 그 후로도 지속적으로 매년 0.4%포인트 감소를 유발할 전망이다. 2024년 달러 가치 기준으로 연간 1200억 달러(170조 원)만큼 감소하는 것이다.
퍼먼 전 의장은 미국 경제는 이미 둔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11월 국내총생산 성장률은 2.1%으로 예상됐는데, 현재 1.2%이다. 근원 인플레이션은 2.2%로 예상됐는데, 현재 3.0%이다.
그는 현재의 경기 둔화가 내년 말에 끝난다고 해도 미국은 국내총생산에서 계속 약 0.5%포인트의 손실을 볼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는 약 1500억 달러의 효과를 내고 미국의 가구 당 1천 달러를 매년 불태워 버리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국 상무부가 지난달 31일 발표한 개인소비지출 물가와 1일의 노동통계국의 5~7월 비농업부문 신규 고용자 수 발표는 관세 영향이 현실화되고 있음을 보여줬다.
연방준비제도가 통화정책 결정 때 기준으로 삼는 개인소비지출(PCE) 물가지수는 6월에 전년동월 대비 2.6% 올라, 5월의 2.3%에서 0.3%포인트 올랐다. 소비자물가와 같은 흐름이었다. 기업들이 관세 인상 전 수입을 대거 늘려 재고를 쌓아두고 가격 인상을 보류했던 것이 서서히 한계에 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셈이다.
고용 지표는 더 심각했다. 노동부 고용통계국은 1∼4월 사이 월평균 12만5750명 늘었던 비농업부문 신규고용자 수가 5월에 1만9천명 증가(확정치), 6월에 1만4천명 증가(1차 수청치), 7월에 7만3천명 증가(예비치)에 그쳤다고 발표했다. 고용통계국은 애초 5월 증가분을 14만4천명, 6월 증가분을 14만7천 명으로 집계했으나 이번에 대폭 수정했다.
트럼프는 불공정한 통계조작이라며 바이든 행정부가 임명한 에리카 맥엔타퍼 노동통계국장을 즉각 해고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처사다.
트럼프는 1일 반도체에 100%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동안 예고하던 반도체에 관한 부품관세를 밝힌 것인데, 미국에서 반도체를 생산하는 기업의 제품은 면제하겠다고 했다.
현재 미국의 반도체 자급률은 많아도 15%밖에 안된다. 그 중에서도 10나노 이하 첨단 반도체는 거의 0% 수준이다. 결국 당장은 수입할 수밖에 없다.
미국의 첨단 산업들의 반도체 수요를 충족해줄 대만과 한국의 반도체 업체들이 미국에 생산시설을 만든다고 해도 앞으로 3년은 걸린다. 트럼프의 이런 반도체 관세는 결국 미국의 첨단 제품에 들어가는 반도체 가격을 2배로 올릴 것이다. 아니면 적당히 꼬리를 내려야 한다.
트럼프의 관세는 이제 그 효과가 시작되고 있다. 그리고 그 효과는 미국이나 세계 경제에 극도의 불확실성을 자아낼 것이다. 트럼프의 관세에 대한 우려는 결코 과도하지 않다. 정의길/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