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정상회담에는 반도체 관세율 적용 등 무거운 의제가 예정돼 있고 광복절 특별사면을 포함해 이 대통령의 결단을 요구하는 경제, 정치 현안이 쌓여있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6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D.C. 백악관 집무실에서 애플이 미국에 추가로 투자할 것이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6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애플의 미국 내 신규 투자계획을 발표하면서 미국으로 수입되는 모든 반도체에 100% 품목별 관세를 부과할 계획이라고 밝혔다고 로이터통신 등 외신이 전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여름휴가 복귀를 하루 앞두고 나온 트럼프 대통령의 ‘깜짝 발표’로 고민이 더욱 깊어지게 됐다. 자동차와 함께 우리나라의 대미 수출 주력 품목인 반도체 분야에 영향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앞서 우리 정부는 7월31일 타결된 한미 관세 협상에서 반도체와 의약품의 품목별 관세와 관련해 ‘최혜국 대우’를 약속받았다고 밝혔다.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도 이날 SBS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서 “우리나라는 이번 한미 관세협상 타결을 하면서 반도체·바이오 등의 미래 관세에 있어 최혜국 대우를 받기로 했다”며 “15%가 최혜국 세율로 정해진다면 우리나라도 15%를 부과받게 된다”고 말했다.
이에 미국은 유럽연합(EU) 생산 반도체에 15% 품목관세만 부과하도록 합의했기 때문에 우리 기업들도 15%를 적용받을 수 있을 것으로 우리 기업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반도체 100% 관세' 등 반도체 추가 관세를 주장할 가능성도 있어 안심할 수 없게 됐다.
허준영 서강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는 7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우리나라 같은 경우는 반도체를 국내에서 직접 만들어서 미국으로 직접 수출하는 비중은 그렇게 높지 않다”며 “주로 동남아시아 국가들에 중간재를 보낸 뒤 거기서 최종 생산해 미국으로 수출을 한다”고 설명했다.
허 교수는 이어 “그런 측면에서 한국 기업이 생산한 것이면 한국의 반도체 세율 최혜국 대우로 해줄지, 아니면 한국 기업이 만들었는데도 불구하고 베트남 생산이니까 베트남 관세를 적용할지 이런 것들에 대해 사실 미국이 얘기한 바는 없기 때문에 세부 사항들이 나와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은 5일 CNBC 인터뷰에서 다른 국가들이 관세를 낮추는 대신 미국에 투자하는 돈은 '미국이 갚아야 하는 돈'이 아니라 '미국에 주는 돈'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우리 정부는 3500억 달러 대미 투자와 관련해 기업들의 펀드를 조성하는 등 다양한 형태로 투자될 수 있고 투자로 발생한 수익도 미국이 90%를 가져가는 건 아니라고 밝혀왔다.
이렇게 양쪽의 말이 엇갈리는 상황에서 이 대통령은 이르면 오는 8월25일 열릴 것으로 알려진 한미 정상회담에서 우리나라의 3500억 달러 투자 약속에 대한 미국과 '2차 협상'을 벌여야 할 수도 있다.
▲ 이재명 대통령이 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전국 시도지사 간담회에서 대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장인 유정복 인천광역시장의 발언 뒤 박수를 치고 있다. <연합뉴스>
이에 더해 이 대통령은 한미 통상협상에서 다뤄지지 않았던 안보 분야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내밀 '청구서'에 대한 대응책도 마련해야 한다.
미국은 이른바 '한미동맹 현대화'를 정상회담 의제로 올이려 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미동맹 현대화는 주한 미군의 규모 및 역할 변화부터 한국군 역할 확대, 한국의 국방비 증액,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등까지 다양한 쟁점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미국의 동맹현대화 전략을 주도하는 엘브리지 콜비 미국 국방부 정책담당 차관은 6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한국은 북한에 맞선 강력한 방어에서 더 주도적 역할을 기꺼이 맡으려는 것과 국방 지출 면에서 계속 롤모델이 된다”고 적었다.
콜비 차관이 언급한 '대북방어에서 한국의 주도적 역할'은 결국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군사역량을 더 투입해야 하는 만큼 재래식 전력을 활용한 대북방어 분야에서 한국이 더 많은 역할을 맡아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는 자국의 방위비 부담을 줄이는 동시에 우리나라가 미국의 대중국 견제 역할을 돕기 원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우리나라가 미국과 중국 가운데 한 국가를 선택할 필요가 없다는 ‘실용외교’ 노선을 견지해 왔다. 그런데 한미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과 대만 갈등 발생시 한국이 일정한 역할을 해야 한다고 압력을 행사한다면 우리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이 대통령이 고민할 사안은 한미 정상회담에 그치지 않는다. 국내 정치 현안인 광복절 특별사면과 주식 양도세 대주주 기준 등도 이 대통령의 결단을 내려야 할 주요 사안으로 꼽힌다.
특히 광복절 특별사면을 앞두고 문재인 전 대통령이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 사면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대통령실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 대통령의 정치적 부담이 커졌다.
박지원 민주당 의원은 이날 KBC 여의도초대석에 출연해 “문재인 대통령 내외도 조국 전 대표 특별사면에 대해 간곡한 말씀이 있었다”며 “이재명 대통령이 꼭 해주시기 바란다”고 말했다.
이와 별도로 정부가 주식 양도세 대주주 과세 기준을 50억 원에서 10억 원으로 강화한 것을 두고 최근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한 이춘석 의원의 주식 차명거래와 맞물려 주식 투자자들의 여권에 대한 여론이 악화되고 있다.
이 대통령은 휴가 기간에도 노동자 사망사고가 잇달아 발생한 포스코이앤씨 건설 면허 취소 검토를 지시하고 이춘석 의원의 주식 차명거래에 대한 철저한 조사가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내는 등 현안을 계속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만큼 휴가지인 저도에서도 정국 운영에 대한 구상을 이어갔을 가능성이 크다.
김민석 국무총리도 5일 이 대통령을 대신해 국무회의를 주재하며 “대통령께서 한미 정상회담을 포함해 우리 국가와 경제의 틀을 어떻게 잡을지에 대한 큰 전략적 구상에 집중하는 시간을 갖고 계실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대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