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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삼석 모나미 창업주(왼쪽)와 송하경 대표(오른쪽) |
문구업계의 살아있는 역사인 모나미가 부활하고 있다.
모나미는 2분기에 영업이익 10억4900만 원을 기록했다. 1년 전 적자에서 흑자로 전환한 것이다. 지난 1분기에도 영업이익 18억3100만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0%나 늘었다.
모나미는 지난해 위기를 맞았다. 매출이 1676억 원으로 전년보다 36.2% 급락했다. 영업손실 11억 원을 냈다.
모나미는 올해 상반기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약간 줄었지만 영업이익은 대폭 늘어났다. 이는 연간 1200억 원 규모의 매출을 올리던 HP제품 유통을 접고, 문구사업 에 집중한 결과다.
모나미는 지난해 4월까지 HP와 제휴를 맺어 출력 인쇄 서비스를 제공했다. 프린터 관련 소모품인 잉크카트리지와 토너도 독점적으로 공급해 덩치를 키웠다. 그러나 HP 소모품 의 재고가 많아 부실의 원인이 됐다.
모나미의 상반기 실적은 모나미의 발전방향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문구산업은 ‘사양산업’이라는 말을 들으며 고전하고 있다. 저출산 때문에 학생이 감소하고 컴퓨터와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수요층이 급감하고 있다.
더욱이 대형마트들이 시중제품 절반가격의 PB(자체브랜드) 문구상품을 내놓으면서 문구업체들을 위협하고 있다.
그러나 모나미는 올해 상반기에 ‘국민볼펜’ 153볼펜의 한정판과 프리미엄판을 잇달아 내놓으며 소비자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업계 전문가들은 153볼펜의 실적이 매출증가의 유일한 원인은 아니지만 이를 통해 100억 원 이상의 브랜드 홍보효과를 거뒀다고 평가한다.
송하경 모나미 대표는 “다른 분야보다 잘할 수 있는 일에 집중 하겠다”며 “앞으로 50년을 위해 신제품 개발에 전념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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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급화에 성공한 '모나미153ID' |
◆ 한정판 제품 중고가격이 100만 원
모나미는 올해부터 고급화 전략을 추진했는데 소비자들의 반응이 뜨겁다.
송 대표는 지난해 창사 50주년을 맞으면서 고급화 전략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송 대표는 “싸구려 제품이 브랜드를 상징할 수는 없다는 생각에 우선 50주년을 기념해 고급형 제품을 만들어보기로 했다”고 말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모나미는 지난 1월 ‘국민볼펜’으로 불리는 153볼펜의 한정판인 ‘모나미 153리미티드 1.0 블랙’을 내놓았다. 이 제품은 몸체에 메탈 도금을 하는 등 고급모델로 제작됐다. 정가는 2만 원으로 정해졌다.
153리미티드 1.0은 비싼 가격에도 소비자들의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내면서 하루 만에 한정수량 1만 개가 매진됐다. 인터넷 중고시장에서 가격이 100만 원까지 뛰어오르기도 했다.
모나미는 여세를 몰아 지난 5월 153 모델의 프리미엄 제품인 ‘153ID’를 내놓았다. 이 제품은 메탈재질에 레이저 각인 서비스로 이용자가 원하는 문구를 새길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 제품도 사전예약판매를 시작한지 하루 만에 모두 매진돼 한정판의 인기를 이어나갔다.
송하경 대표는 “153리미티드 출시 당시 발매와 동시에 매진되면서 모나미 153의 새로운 모습에 대해 기대하는 소비자들이 많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침체를 겪는 문구류시장에 아날로그에 향수를 느끼는 수요층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사례라고 분석한다.
모나미는 이밖에도 3천~4천 원 하던 크레파스도 1만~3만 원짜리 제품으로 내놓았다. 제품 안에 아이들이 미술활동할 수 있는 아트북을 같이 넣어 프리미엄으로 거듭나게 했다.
이 제품의 첫 주문량은 영업팀이 추정한 1년 목표량을 초과했다.
◆ 터키의 국민 크레파스가 된 왕자파스
모나미는 침체에 빠진 국내시장에만 머무르지 않고 해외시장을 개척해 성장을 이어나가려 한다. 모나미는 전 세계 100여 나라에 문구를 수출하고 있다.
송 대표는 “국내는 점유율이 높아도 뻗어갈 곳이 한정적인데 해외는 그렇지 않다”며 “해외시장 진출에 더욱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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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터키에서 인기 높은 모나미의 '왕자파스 |
모나미는 이미 ‘왕자파스’로 터키의 크레파스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왕자파스는 터키에서 시장점유율 1위로 실질적으로 터키의 ‘국민 크레파스’다. 점유율도 지난해 70%를 넘기며 점점 높아지고 있다.
모나미 관계자는 “터키는 술탄(이슬람의 왕)에 대한 향수가 있는데 국민들이 선망하는 왕자의 이미지와 크레파스가 잘 맞아 예상하지 못한 큰 인기를 얻었다”고 말했다.
모나미는 태국시장에서 특히 점유율을 높이려 한다. 태국 문구류시장은 연간 10%씩 성장하고 있다. 2010년 기준 태국 전체 문구류 및 사무기기 시장규모는 1500억 바트(5조 원)에 이른다.
모나미는 이미 20년 전 태국에 진출해 현지에서 공장을 가동하고 있다. 태국에서 모나미 볼펜의 인기는 꽤 높다.
송 대표는 “독일제품이 1㎜ 볼을 쓰는데 153볼펜은 0.7㎜나 0.5㎜로 얇다”며 “태국어가 두꺼운 볼로 쓰기 굉장히 어려워 0.5㎜가 불티나게 팔렸다”고 말했다.
모나미는 매출의 30%를 수출이 차지하고 있는데 이 비중을 더욱 늘리려고 한다. 송 대표는 “올해부터 수출을 늘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 교황에게 볼펜을 헌정하다
모나미는 유명인을 활용해 제품을 홍보하고 있다.
모나미는 지난 14일 한국을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특별 제작한 볼펜 ‘153 Fisherman’을 헌정했다. 이 볼펜은 로마 교황청의 바티칸 박물관(Musei Vatican)에 보관되어 전시된다.
모나미는 이 볼펜을 제작하면서 모든 공정을 일일이 수작업으로 진행했다. 몸체는 순은으로 제작한 뒤 백금 도금으로 마감처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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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헌정한 '모나미153Fisherman' |
또 그물로 물고기를 낚는 어부의 모습을 새겼다. 요한복음 21장 11절 “베드로가 예수님이 지시한 곳에서 153마리의 물고기를 잡았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않았다”는 성경구절에서 이름을 따왔기 때문이다.
또 미디어와 연예인을 활용한 마케팅도 펼치고 있다.
모나미는 지난 24일부터 방영한 OCN 드라마 '리셋(Reset)'과 협업을 진행했다. 드라마에서 모나미의 신제품 '153 ID Smoky'는 최면의 대가인 주인공 차우진(천정명 역)의 최면도구로 나온다.
모나미는 “이 볼펜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주인공의 정체성을 표현해 숯이 타고 남은 재의 색상으로 제작했다”고 밝혔다.
이밖에도 모나미는 학생들이 많이 사용하는 문구류의 특성상 이들을 겨냥한 행사도 열고 있다.
모나미는 왕자파스가 사랑을 받는 터키에서 매년 두 번씩 왕자파스 사생대회를 열어 홍보에 활용한다.
송 대표는 “우리가 보유하고 있는 기술을 활용해 시장을 키우려 한다”며 “이를 위해 직접 펜으로 한자 한자 기록하는 글짓기 대회를 준비중”이라고 말했다.
◆ “다른 분야에 눈돌리지 않겠다”
모나미는 다양한 고객의 요구에 맞춰 제품을 만들어오고 있다.
송 대표는 “볼펜이 잘 나갈 때야 한 가지 모델을 몇 백만 자루씩 만들었지만 다품종 소량으로 생산방식이 바뀌면서 소비자의 필요와 요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말한다.
모나미는 기업과 협업해 맞춤형 제품을 만들고 있다.
모나미는 현대자동차와 협력해 ‘스킬라이트’라는 펜을 만들었다. 이 펜은 자동차 도색 전 마지막으로 불량을 검사하는 데 사용된다. 물을 뿌리면 감쪽같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또 인형 눈을 칠하는 펜도 만들었다. 이는 테디베어를 만드는 고객의 요구에 따른 것이다. 이 고객은 이 제품으로 인형 생산과정에서 인건비를 상당히 줄인 것으로 알려졌다.
유아층을 위해 안전성을 높인 제품도 내놓고 있다.
모나미는 올해 천연소재를 사용해 안전성을 높인 크레파스, 수채물감, 수채색연필 등을 출시했다. 특히 ‘오일 크레파스'는 벌집에서 추출한 밀랍과 올리브오일 등 천연재료만으로 만들었다.
송 대표는 “시장 크기가 작아질 때 점유율을 높이면 된다”며 “다른 분야에 눈 돌릴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 50년 문구의 역사 모나미
모나미는 1960년 회화구류를 생산하는 광신화학공업에서 시작했다.
송삼석 모나미 창업주 겸 회장은 1960년 광신화학공업을 세운 후 ‘왕자파스’를 출시했는데 학생들에게 인기를 얻었다. 왕자파스의 인기는 현재 터키까지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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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삼석 모나미 회장 |
송 회장은 1962년 서울 국제산업박람회에서 볼펜을 처음 보고 감탄했다. 그는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볼펜시장의 90%를 점유하던 오토볼펜에서 유성잉크제조기술을 습득했다.
이후 송 회장은 1963년 5월 1일 국내 최초 볼펜인 ‘모나미 153’을 출시했다. 모나미는 프랑스어로 ‘내 친구’란 뜻이다.
153이라는 숫자는 송 회장이 직접 지었다. 이는 ‘베드로가 하나님이 지시한 곳에서 153마리의 고기를 잡았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않았다’는 성경구절대로 많은 성과를 거두라는 기원을 담고 있다. 또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갑오’(아홉, 1+5+3=9)를 만드는 숫자라는 의미를 담았다.
송 회장은 모나미 153볼펜이 큰 인기를 끌면서 회사 이름보다 제품 이름을 더 기억하는 사람이 많아지자 67년 사명을 광신화학에서 모나미로 바꿨다.
송 회장은 1993년 장남인 송하경 대표이사에게 경영권을 물려줬다. 송 대표는 그뒤 지금까지 모나미를 경영하고 있다.
모나미 153 볼펜은 50년 동안 전 세계에 약 36억 자루가 팔렸다. 이를 일렬로 늘어놓으면 지구를 12바퀴나 돌 수 있는 양이다. 지금도 매월 300만 자루 이상 팔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