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인선 기자 insun@businesspost.co.kr2025-07-25 16: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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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포스트]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관세 부과에 따른 수익성 악화에도 미국 시장에서 판매 점유율 확대 전략을 밀어붙인다.
5월부터 시작된 미국 자동차 관세 부과로 2분기 영업이익 감소분이 1조6천억 원(현대차 약 8300억 원, 기아 약 7800억 원)이 넘는 상황에서도 당분간 현지 차량 판매가격을 인상하지 않기로 했다.
▲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미국 관세 부과로 영업이익이 감소하는 것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올 하반기에도 미국 시장에서 판매 가격을 인상하지 않으며 공격적 판매 확대에 나설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사진은 정 회장이 3월26일 미국 조지아주 엘라벨에서 열린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아메리카(HMGMA) 준공식에서 연설하는 모습. <연합뉴스>
정 회장이 관세 부과에 따라 차량 가격을 올려 수익을 늘리는 것보다는 가격 경쟁력을 유지해 판매량을 더 늘리는 방향을 택한 것이다.
정 회장은 차량 가격 인상보다는 재료비, 가공비, 생산효율성 등을 통한 원가 절감으로 수익성을 최대한 방어하는 동시에 관세 부과를 계기로 미국 시장에서 오히려 점유율을 더 빠르게 늘리는 전략을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25일 관련 업계 취재를 종합하면 정 회장이 하반기 미국 시장에서 점유율 확대를 최우선 순위에 놓는 전략을 취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지난 5월 초부터 미국이 수입 자동차에 25% 관세 부과를 시작한 이후, 다른 경쟁사들이 차값을 잇달아 인상한 데 비해 현대차그룹은 가격을 동결해왔다. 이에 따라 그룹의 미국 판매량은 뚜렷한 증가 추세를 보였다.
2분기 현대차 미국 판매량은 도매 기준 3.3%, 소매 기준 10.3% 증가했다. 1분기 미국 소매 판매가 2.0% 증가한 것과 비교하면, 2분기 가격 동결 효과로 판매 증가율이 5배나 높아진 셈이다.
시장 점유율에서도 눈에 띄는 성과를 보였다.
현대차그룹은 상반기 기준 미국 점유율 11.0%로 4위에 올랐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0.7%포인트 증가했다. 현대차그룹이 미국 시장에서 점유율 11%를 기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상반기 미국 점유율 순위는 제너럴모터스(GM)가 17.7%로 1위, 도요타 15.3%로 2위, 포드가 13.7%로 3위에 올랐다.
점유율 순위 1위부터 10위 기업 가운데 전년 동기 대비 시장 점유율이 가장 크게 늘어난 것은 GM으로 1.5%포인트가 상승했다. 그 다음이 0.7%포인트를 늘린 현대차그룹이다. 현대차그룹은 올 상반기 3위 포드와 점유율 차이도 1년 전에 비해 0.27%포인트 차로 좁혔다.
미국 자동차에서 시장 점유율을 늘리는 것은 쉽지 않다. 현대차그룹이 미국에서 처음으로 시장 점유율 두 자릿수를 기록한 것은 2022년이다. 미국 진출 이후 35년 만에 10.6%를 기록했다.
도요타가 미국 진출 이후 45년 만에 두 자릿수 점유율을 기록한 것과 비교하면 10년 빠른 것이다.
시장 점유율을 끌어올리기 쉽지 않은 상황에서 가격 동결이 점유율 확대 효과로 확실히 이어지자, 정 회장이 승부수를 띄운 것으로 분석된다.
▲ 미국 조지아주 서배너에 위치한 현대차그룹 전기차 전용공장(HMGMA)에서 3월26일 노동자가 차량 조립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 <현대차그룹>
업계에서는 그동안 현대차그룹이 미국 관세 영향을 버티지 못하고 가격 인상에 나설 것이라는 분석이 쏟아졌지만, 3분기에도 가격을 동결할 것이란 전망에 힘이 실리고 있다.
김진석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일부 자동차 업체들의 가격 인상으로 미국 자동차 산업은 금융위기와 코로나19 이후 점유율이 변동하는 구간에 진입할 것”이라며 “현대차그룹의 미국 시장 점유율이 우상향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기아도 올 하반기 미국 시장 점유율 목표를 공격적으로 잡았다. 김승준 기아 재경본부장은 이날 열린 2분기 실적 콘퍼런스콜에서 “하반기에 소매 판매를 7% 정도 늘리고, 시장 점유율은 앞자리를 바꿔 6%대로 올라설 것”이라고 밝혔다.
상반기 현대차그룹 미국 시장 점유율 11% 가운데 기아의 점유율은 5.1%를 차지했다. 기아가 하반기에 목표대로 점유율을 6% 수준으로 끌어올린다면 현대차그룹 시장 점유율은 12%까지 뛰게 된다.
현대차는 2분기 미국 관세 영향으로 영업이익이 8282억 원이나 줄었지만, 미국 판매 가격 인상에 여전히 선을 긋고 있다.
이경조 현대차 기획재경본부장은 지난 24일 열린 2분기 실적 콘퍼런스 콜에서 "시장 점유율을 방어하는 선에서 손익을 최대한 유지하도록 할 것"이라며 "시장에서 주도적으로 가격 인상에 나서기보다는 시장 상황을 면밀히 검토해 정하겠다"고 말했다.
가격 인상 결정 요인을 자동차 관세에 맞추기보다 경쟁사 상황을 살피며 정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현대차그룹 안팎에서도 현대차와 기아가 미국 관세 부담을 현지 소비자에 전가하지 않겠다는 기조를 가지고 있다는 관측을 내놓는다.
다만 관세로 인한 그룹의 분기 영업손실이 1조6천억 원이 넘는 상황이기 때문에 재료비, 가공비, 생산효율성 등 원가 절감과 현지 생산 확대 등으로 수익성 방어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이 본부장은 “생산효율성 향상과 가공비 개선 등을 통한 원가 절감은 가동한지 20년 된 앨라배마 공장 노하우를 조지아주 메타플랜트아메리카(HMGMA)에 이식함으로써 3분기부터 효과가 날 것으로 생각한다”며 “현재 부품 소싱 다변화를 위한 태스크포스(TF)도 가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윤인선 기자